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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별 Dec 21. 2020

홍대는 못 갔어도 홍대병은 조기졸업생

몇 년 전,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혁오가 나왔을 때, 몇몇 팬들이 ‘아, 혁오 나만 알고 싶었는데…….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몇몇만 아는 진짜 좋은 밴드였으면 좋겠다’라고 적은 여러 댓글이 캡처되어 이미지로 떠돌았던 적이 있다. 모 인터뷰에서 그런 댓글이 있더라는 인터뷰어의 말에 오혁은 “우릴 굶겨 죽일 심산인가” 하며 웃음으로 반응했다. 그리고는 무대에서 “안녕하세요, 나만 알고 싶은 밴드 혁오입니다.”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상황을 꼬집는 듯하면서도 웃음으로 승화시킨, 정말 위트 있는 인사말이 아닐 수 없다.

tvN <콩트 앤더 시티>에서는 아마도 이때 일을 기반으로 한 듯한 콩트를 방영했다. 장도연이 <무한도전>에 나온 혁오 밴드를 보면서 “뭐야, 혁오가 왜 저기 나와? <위잉위잉> 알아요? 그거 나만 아는 노래인데! 당신들 다 혁오 알아요?” 하며 발작을 일으켜 쓰러지는 장면이다.

그렇다. 그는 ‘홍대병 말기 환자’인 것이다.


그때 나는 혁오를 둘러싼 일련의 이야기를 보며 차마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문득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겪은 일이 생각났다. 친구들이 힙합 이야기를 하는데, 한 친구가 “힙합보다 인디 노래가 훨씬 좋아. 그치, OO야?”라며 어딘지 뿌듯한 얼굴로 내게 동의를 구해온 것이다. 나는 갑작스러운 저격(?)에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하며 “아니, 뭐, 힙합도 좋고…… 다 좋지…….” 하고는 대충 말끝을 흐렸다.

사실 그때 그 친구는 날 참 좋아했던 친구라, 아마 다른 아이들은 잘 모르는 ‘인디 음악’을 매개로 공통점을 나누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다만 그런 것을 알면서도 내가 당황했던 이유는 첫째, 힙합 이야기를 하는 다른 친구들에게 뜬금없이 인디 밴드 이야기를 꺼내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 그때까지도 은은한 ‘홍대병’을 앓고 있던 나는 ‘다른 사람 눈으로 보면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것을 그제야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요새 시쳇말로 ‘홍대병’이라고 하는 그것을 중학교 시절 아주 호되게 겪은 참이었다. 그때는 그런 성향을 딱 꼬집어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을 뿐이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홍대병 성향이 조금 옅어지긴 했지만,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힙합보다 인디가 좋아!' 일이 있은 후 나는 약 3~4년을 거하게도 앓았던 홍대병에서 비로소 탈출할 수 있었다. 그 친구야말로 나를 반면교사로 각성시켜 홍대병에서 꺼내 준, 은인 아닌 은인인 것이다!


시간이 흘러 홍대병이라는 단어가 생기고 처음 그것을 접했을 때, 번뜩 든 생각은 이런 거였다. ‘이야, 중학교 시절의 나를 저것보다 더 완벽하게 표현하는 단어는 없다!’

10년 넘게 지난 일임에도 여전히 내 입으로 말하긴 정말 창피하고 부끄럽지만, 그것은 명백한 ‘우월감’이었다. 남들이 모르는 흙 속의 진주를 나만 안다는 우월감, 내가 듣는 음악은 특별하다는 우월감. 어쩌면 대중음악과 비교하며 수준을 따졌는지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또 말을 흐리게 된다. ‘따졌는지도 모르고’가 아니라 확실히 ‘따졌다!’ 글을 쓰는 지금도 손이 떨릴 만큼 부끄러운 내 흑역사 중 하나라 자꾸 숨기게 된다. 모쪼록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조선 펑크, 넓게는 인디 음악에 대한 애정이 당연히 기반을 받치고 있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음악만큼이나 그 우월감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것이다. ‘나만 아는 밴드’가 유명해지면 내 것을 빼앗긴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그럴 때 뮤지션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무대 위나 모니터 뒤, 이어폰 너머에만 있는 ‘NPC’ 같은 존재가 된다. 그들 돈을 벌어야만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어련히 알아서 버티며 좋은 음악을 내놓을 가상 인물처럼 생각하게 된다. 가난은 그들이 마땅히 버텨야 할 꿈의 조건이며, 때때로 그들의 가난 낭만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그런 소수의 뜻 모를 우월감을 위해 그들은 화려한 무대 아래에서 꿈을 접을 것인가, 조금이라도 더 유지해 볼 것인가 고민한다.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한 후 받는 공연비를 레이블, 멤버들과 나누고 나면 겨우 맥주 한잔할 수 있는 돈이 남는다고 했던 모 밴드 멤버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이다. 우월감을 가질 게 없어서 음악을 가지고, 참 나. 말없이, 소문 없이 사라지는 수많은 밴드를 지켜봐 온 지금은 ‘제발 그들이 더 유명해졌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나의 그 얄팍한 우월감 뒤에서 그들은 배를 곯거나 투잡, 쓰리잡을 뛰며 고생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이래로 더욱 그렇다. 좋아하는 걸 남들과 나누면서 왜 경쟁심리를 가져야 하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욱 유명해져서 조금이라도 마음고생을 덜고 음악을 하게 되는 걸 왜 마음 깊이 기뻐할 수 없었는지. 지난 내가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 그까짓 우월감이 뭐라고.


작년, 세이브 더 펑크락(SAVE THE PUNK ROCK) 공연에서 레이지본의 준다이가 공연 첫인사 대신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오늘 그냥 진짜 재밌게 놀아요. 다치지 말고, 정말 재밌게 놀다 가요!” 옆머리를 전부 밀고 삐죽삐죽하게 세운 분홍색 탈색 머리, 화려한 하와이안 프린팅의 셔츠. 길에서 만났으면 지레 겁먹었을 법한 차림을 한 그가 티 없이 해맑은 얼굴로 “그저 재밌게 놀자”고 여러 번 이야기하는 모습이 왜인지 아주 순수해 보였다.

희소성이, 또 우월감이 대체 뭐가 중요한가. 그저 재밌게 놀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을.

돈이 없어서 음반을 못 냈던, 녹음을 잘못했는데 재녹음할 돈이 없어서 그대로 음반을 내야 했던, 관객이 없는 텅 빈 공연장에서 노래했다던 밴드들. 그들이 이제 더 넓은 판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큰 무대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다.


기왕 레이지본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오늘의 글과 주제가 잘 맞는 「노래하고 싶었어」의 가사 일부를 적어 본다. 사랑하는 펑크록 밴드들이, 아니, 모든 인디 밴드들이 “노래하고 싶었다”고 씁쓸하게 웃으며 꿈을 접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꿈을 가진 사람들이 현실로 인해 꿈을 접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 난 떠나버렸지, 그냥 꿈은 꿈으로 남겨둔 채

지칠 대로 지쳐 버린 내 마음을 거기 두고 떠나네

하나둘씩 다 버리고 떠나는 순간

흥얼거리며 나온 멜로디에 난 웃고 말았네


이제는 남들처럼 매일을 살아가고

내일도 다음날도 불안해질 필요 없고

단 한 줄의 노랫말을 완성하려고

수많은 밤들을 지새울 필요도 없는데


난 노래하고 싶었어, 노래하고 싶었어


어제와 같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던 길

빨라지기 시작한 발걸음은 엉뚱한 곳으로

난 소릴 지르며 달려가고 있었네

망가진 얼굴로 웃으며 범벅이 되어버린 난

노래하고 있었네


노래하고 싶었어

노래하고 싶었어


- 「노래하고 싶었어」, 레이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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