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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유 Apr 11. 2023

아름답고 낯선 도시에서 만나자. 근데 우리, 친구지?

겨울의 파리에서 생각한다. 너와 내가 친구가 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얼마전, 조금 난감한 일이 생겼다.


언제 봐도 유쾌한 에너지를 주는 친구와 서로의 바쁜 일정을 맞춰서 근 1년만에 만나기로 한 날이 있었다. 하필 바로 그 날, 지인의 어머니 장례식이 있다는 소식을 직전에 듣게 된 것이다. 장례소식은 개인적으로 온 연락이 아닌, 이메일 주소록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돌린 mass email을 통해 전해졌다. 두어번 만났긴 했지만 사사건건 내 모든 말과 행동에 토를 달고 지적을 하는 모습에 질려 힘주어 그를 ‘친구’가 아닌 ‘지인’의 자리로 밀어넣은 것이 일년 전. 그 후로 이렇다할 접점이 없다가 받은 소식이니 더욱 난감했다. 경조사이지만 (최소한 현재로써는) 확실하게 거리를 두고 싶은 ’지인’이지 않은가.


결국 요지는 두가지 요청이 있을때 내 시간을 ‘누구’에게 할애할 것인가이었다.


친구와 지인, 그리고 그보다 더 소원한 관계인 타인까지.

이 셋의 사이에는 보일듯 말듯하지만 확실한 경계선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경계선에는 커다란 문이 달려있어 오늘의 친구가 내일에는 지인이 될 수도, 혹은 오늘의 타인이 내일에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2월 중순에 다녀온 파리 여행기가 밀린 숙제처럼 계속 마음에 남아있었던 차였다.

중학교때 만나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연락을 하고 지낸 ‘친구들’ 두명과 같이였던 일주일의 시간.


내가 굳이 기록하지 않아도 다른 블로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파리 여행자들을 위한 정보는 뒤로하고 ‘친구’의 관점에서 기억이 더 흐릿해지기 전에 그 일주일간의 시간을 풀어보려고 한다.  


여행을 마치고 토론토로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단숨에 써내려갔던 일주일치의 일기의 내용을 많이 더해 2023년 딱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고 씻고 밥을 먹으면서 ‘친구’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유독 많이 해보게 된 시간이었다. ‘친구’라는 것은 결국 죽을때까지 아리송하고 까다로운 인간관계를 대체하기도 하는 말.



그렇게 2023년 2월, 파리에서 찾은 친구의 조건 세가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R - 나 - B

파리에서 만난 R B는 중학교 3학년때 만났다. 같은 아파트의 같은 동, 심지어 같은 라인에 살아 밤하늘 별이 보이는 아파트 계단에 나란히 앉아 새벽이 오도록 수다를 떨곤 했던 B. 비슷한 시기에 한국을 떠나 유학생활을 시작한 덕에 서럽고 외로운 시간들을 방과후 msn메신저로 매일매일  풀어냈던 R.


R의 남편이 파리에 있는 학교로 1년의 연수를 가게 되었고 그에 따라 R과 그녀의 어린 딸도 같이 떠나게 되었는데, 자신이 파리에 머무는 시간동안 놀러오라고 한 오픈 인비테이션을 나와 B가 덜커덕 접수해버린 것이었다.


10대와 서른살이 넘어 만나는 ‘친구’라는 단어는 그 묵직함이 매우 판이하다.


같은 동네, 같은 반이라는 조건만 있다면 10대의 친구만들기는 신속하고 쉽게 이루어진다. 같은 연예인을 좋아한다면 금상첨화. B와 R, 나는 당시 가요대상 시상식을 휩쓸었던 아이돌 그룹에 푹 빠져 매일매일 빠순이로써의 정보를 주고받았다. 라이벌구도가 강했던 당시의 가요계에서 우리는 마치 전쟁터의 전우와 같은 끈끈함을 나누는 것 같았다. 일주일에 다섯번,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 매일 보는 사이. 더군다나 끊이지 않는 대화의 소재. ‘친구’를 만들기에 최적화된 조건이었다.


이 조건은 30대에는 통하지 않는다. 10대의 에너지는 시뻘건 불덩이와 같아 좋아하는 것의 한 구석만 닮아도 다른 모든 것들은 다 태워버리고도 남는다. 그 에너지가 풀썩 꺾인 지금,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감내할 수 있는 퓨즈는 어느새 제법 짧아져버렸다. 더해진 책임감의 무게와 반비례하는 시간과 체력의 총 질량. 그 위에 더욱더 확연하게 나타나는 타고난 개인 고유의 색채가 더해지니 자연스레 친구의 울타리는 정리되고 또 좁아진다.


서로 알고 지낸 사이가 길었다고 그 인연이 훌륭하다고 말 할수는 없다. 평생을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하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계속 찾을만한 ‘가치’가 없다면 그저 예전에 알게 된 사람으로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구의 조건 하나. 그의 등고선과 나의 등고선은 닮아있나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맨(Daniel Kahneman) 은 유명한 그의 저서 Thinking, Fast and Slow (한국어 번역본: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의 사고방식에는 두가지 시스템이 있다고 설명한다. 무의식적이고 즉흥적이며 감정적인 시스템1. 느리고 신중하며 논리적인 시스템2. 모든 인간의 의지력은 정해진 총량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그렇기에 제한적인 의지력을 잘 쓰기 위해서 우리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에너지소모가 적은 시스템1에 의지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시스템1과 시스템2가 완전히 분리되어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내가 ‘의식적’으로 선택하며 추구하는 가치들, 삶의 방향들을 의지적인 노력으로 오랜 시간 공을 들이다 보면(시스템1) 에너지소모를 줄이기 위해 ‘무의식적’인 습관으로 굳어 내 감정표현의 발판(시스템2)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교적 가볍고 즉흥적인 시스템2는 우리의 깊숙한 가치들과 사유들을 비추는 가감없는 거울이 될 수 있다.


낯선 도시에서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만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나와는 영 어색한 곳에서 긴장을 계속 유지한채로 있다보면 우리의 다듬어지지 않은 시스템1가 그 어느때보다 강하게 발현되기 마련이다.  


에스컬레이터가 없어 힘겹게 짐을 이고 지면서 공항에서 파리 도심으로 가는 길. 파리 지하철역의 특징인 타일들.
하루에도 몇번씩 건넜던 센느강

R은 똑똑하고 친화력높은 골든리트리버를 닮았다. 밝고 사람을 좋아한다. 얼굴에 발랄한 감정이 가감없이 드러나면서도 타인을 향한 배려심이 강해 상대방이 누구이던 무례하게 대하는 법이 없다.


대학시절과 그 후에도 태평양을 건너 내가 있는 쪽으로 여행을 온 B와는 달리 R이랑은 중학교 이후로 얼굴을 보고 시간을 나눈 시간들이 짧았다. 학교 졸업후 직업의 전선으로 뛰어들면서 우리 둘은 당장 내 앞에 펼쳐진 숙제들을 하루하루 해치우는 일들에 분주해졌고 그러다보니 새해나 크리스마스, 서로의 생일 같은 이유가 있는 날에만 카톡 메세지를 주고 받는 ‘어색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색할 것 같은 사이’로 오랜 시간을 지내게 된 것.


저녁 늦게 파리 도착예정이었던 B와는 달리, 나는 밤비행기로 이른 아침 파리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유심을 바꿔 끼우자마자 R이 당부한대로 가장 먼저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큰 캐리어를 들고 공항전철로 또 시내전철로 파리 도심에 가는 내내 그녀는 계속 내게 어디 역을 지나고 있는지 물었다. 이른 아침부터 너를 기다리고 있다고. 얼른 보고 싶어서 남편까지 데리고 아예 내 숙소 앞으로 와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숙소에 거칠게 짐만 내팽겨쳐 놓고 부랴부랴 뛰어나갔던 그 짧은 찰나 - 이제서야 솔직히 털어놓자면, ‘긴 시간이 지났는데, 게다가 둘만 만나는 것은 엄청 오랫만인데 어색하면 어쩌려나’라는 고민이 찰나의 순간이지만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던 것 같기도 하다.


슬로우모션처럼 눈앞에 그려지는 여전히 생생한 그 순간.

파리의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숙소를 나와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틀자, 좁은 길목 위 네이비색 니트를 입고 에코백을 맨 작은 몸집의 어느 여자가 서있었다. 반쯤 빗겨선 모습으로 조심조심 주변을 살펴보던 형상. 손을 번쩍 들어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소프라노 고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며 한달음에 내달려왔던 보고싶었던 나의 오랜 친구.


여행 비수기였다는데에도 루브르 앞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았다. 피라미드 앞 통로는 줄이 항상 기니 피하도록 하자.


루브르 박물관앞에 있는 카페의 끝자리에 누텔라 크레페와 크로크무슈를 시키고 앉았다. 음식이 서빙되자마자 R은 접시를 자신의 앞으로 당겨 내가 먹기 편하도록 크레페와 빵을 작은 사이즈로 꼼꼼히 잘랐다.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이야기의 보따리가 순식간에 터져나왔다.






나는 사람의 인생은 여러모로 등고선과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태백산맥. 북미 서부의 안데스산맥과 로키산맥. 유럽 중부의 알프스 산맥. 이 산맥위에 솟아오른 산들은 우연으로 아무렇게나 삐죽삐죽 나온 것들이 아니다. 모양은 각기 다른 봉우리들이 여럿 있을지언정, 거시적으로는 결국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도상에 이러한 산맥들은 여러개의 등고선으로 표현된다.


지도상에 고도 및 기복을 표시하기 위하여 그려지는 등고선의 특징은 이러하다:


   

점이 아닌, 여러개의 점이 연결된 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같은 선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동일한 range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아침에 눈 뜰때부터 잠들때까지 셀 수 없는 메세지와 선택들이 쏟아지는 오늘날의 사회,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기준와 루틴을 가지고 선택을 한다. 그러한 작은 선택들은 때로는 각각의 random한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내가 가는 길을 만들고 운명 또한 결정한다.



루브르만 보더라도 파리는 방문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우리, 질서는 지키도록 해요.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R은 계속 한국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해외에 여행이 아닌, 다시 살게 된 기회가 이번에 찾아온 것. 누군가가 그어놓은 선 안에서 서로를 비교하고 복닥거리며 경쟁하는 한국의 문화 안에서 오랫동안 있다보니 거기에서 잃게되는 여러 소중한 것들을 잊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한 한국 문화는 빠른 변화라는 분명한 장점이 있지만 개개인의 개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단점 또한 분명하다면서.


한국에 비해 여러모로 느린 파리에 있다보니 (이건 북미도 마찬가지) 답답한 면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장점은 각자의 속도를 인정해준다는 것. 어느 꽃은 여름에 흐드러지게 개화하지만 겨울에 가장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도 있는 것 처럼, 한 틀에 모두를 담는 것이 아닌, 개개인의 색깔과 계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인정하며 도와준다는 것.


“아이를 키워보니 더욱 더 알겠어. 한국에서는 자꾸 사람들이 본인이 가진 좋은 것들은 뒤로 숨기고선 내가 뭘 가졌는지만 캐내려고 해. 나는 그렇고 재고 빼는 게 싫어서 필요한 사람이다 싶으면, 다 알려주거든. 재미있는게 내가 솔직히 얘기해줘도 그 사람들은 잘 믿지도 않아.”


“어우, 나도 그런거 싫어. 무슨 파이 나눠먹기하는 것 처럼 생각이 굳은 사람들은 자기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썩어 문드러지더라도 절대 놓으려고 하지 않으면서 남이 가진 것들은 그렇게 탐을 내더라. 마치 내가 잘되면 본인들은 잘되는 게 아닌 것 처럼 말야.”


우리는 비슷한 것에 성을 냈다. 속된 말로 ‘빡치는’ 포인트가 겹치는 순간이었다. 생김새도 하는 일도 현재의 가정 환경도 다 달랐지만 생각해보니 R과 나, 우리는 타인에게 갖는 질투심이 적은 반면 묵묵히 내가 맡은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윤리적, 정서적공감대에서 비슷한 range를 가지고 있었다.






본인이 아끼는 사람들이라면 좋은 것들을 기꺼이 내어주는 R의 성향은 파리에 있는 내내 이곳 저곳에서 작지만 확실한 꽃을 피웠다. 쇼핑을 좋아하는 B에게 원하는 매장과 백화점들을 같이 가주고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다는 말에 파리 시내에서 유일하게 아아를 취급한다는 카페를 찾아 대령했다. 중고서점과 잘한 문구류를 좋아하는 내게 R은 유명한 서점과 카페를 데려가주고 선물이야,라며 예쁜 노트를 내 가방안에 꾹 넣어주었다. 많은 배려를 해주고 으면서도 절대 튀게 하는 법이 없었다.


‘좋은 사람’이라고 불려지고 싶다고 하기엔 내 안에 있는 많은 가시들을 잘 알아서, 제법 어릴때부터 나는 ‘썩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꿨던 것다. 이 또한 그렇게 만만찮은 목표는 아니기에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들을 열심히 훔치듯이 가져와서는 부지런히 내 안에 심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산스럽지 않으면서 편안한 R의 유들하면서도 단단한 배려는 여행이 끝나도록 은은한 향수처럼 오랫동안 기억이 났다. 10대에도 그리고 지금 30대에도 변하지 않은 그녀의 장점이었다.



지디가 갔단다. 그래서 맛있겠지 싶어서 찾아간 우동집. 지디 입맛은 평범한가봐. 맛은 그냥 그랬거든요.


분명 내가 고마웠다고 말하면 ‘뭐래~’라면서 손을 휙휙 내저어보일 R이, 한발짝 한발짝 꾹꾹 내딛어 그려낸 등고선은 달보드레했던 것 같다. 내 등고선은 어떤 모양으로 다른 이들에게 비춰지고 있을까. 그녀의 것처럼 당차면서도 수더분한 언덕배기가 곳곳에 심어져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일기에 꾹꾹 적었다.  


그래서 30대, 지금의 나이에서 다시 써보는 친구의 조건 첫번째.



등고선이 닮은 사람인가.


그리고 내가 닮고싶은 아치를 가진 사람인가.




(글이 예상보다 길어지네요. 다음편으로 이어서 써보겠습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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