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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트 May 17. 2023

멜트는 장비를 가리지 않는다.

장비병 완치를 위한 극약처방

기술의 발전과 보편화


 90년대생인 나는 아날로그가 디지털이 되는 과정을 겪으며 자랐다. 엄마는 공책과 타자기에서 window 98의 한컴으로 넘어가며 책을 썼다. 집에는 유선전화기, 삐삐, 무거운 애니콜 휴대폰가 공존했다. 그러다 스마트폰이 등장했고, 이제는 AI가 창작까지 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상대적으로 제품들의 가격은 낮아진다. 과거엔 기업에서나 쓸법한 고성능 컴퓨터를 모두 한 대씩 들고 다니고, 방송국이나 스튜디오에서 쓰이던 장비를 1인 크리에이터들이 사용한다. 그리고 이런 흐름을 주도하는 선두에는 언제나 애플이 있어왔다.


 애플이 처음 등장한 뒤부터 그들의 1순위 타깃시장은 언제나 ‘개인’이었다. 스티브잡스는 PC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했다.

 “우리는 인간이 스스로 잠재력을 더 넓히고 더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일을 대신할 수 있는 21세기의 자전거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이 걸어서 1㎞를 이동하는 데 에너지가 약 75㎉ 필요하지만, 자전거를 이용하면 5분의 1(15㎉)밖에 들지 않았다. 자전거의 효율성은 말과 자동차, 헬리콥터보다 높았다. 스티브잡스는 잠재력 있고 창의적인 개인들이 그 도구를 마음껏 활용하길 바랐다. 방과 후 아이폰을 꺼내 틱톡 영상을 찍고 있는 초등학생들을 스티브잡스가 본다면 상당히 뿌듯해할지도 모른다.



21세기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나 자신을 포함해, 음악과 영상을 만들며 알게 된 창작자들의 공통된 관심사는 '장비'이다. 입문자용 장비와 전문가용 하이엔드 장비 간의 가격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처음엔 막귀, 막눈이라 몰랐던 성능차이를 점차 체감하게 되고 결국 비싼 장비에 투자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느 순간 장비에 매몰되어 실력보다 장비의 수준을 높이는데 급급한 사람들도 있다. 사실 과거에는 그 장비 자체가 경쟁력이 되기도 했다. '과거'라고 국한시킨 이유는 PC나 스마트폰과 같이 그 성능면에서 간극이 점차 줄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성능에서만이 아닌 기술(skill)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AI가 상용화되며 이런 경향은 더 심해졌다. 전문적인 기술과 좋은 장비가 있어야만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던 시대는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다.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의 진짜 의미


이쯤 되니 도구(tool)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도구는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 것들을 말한다. 그 말인 즉, ‘목표’와 그것을 달성하려는 ‘의지’가 도구보다 먼저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망치는 못질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목수가 의지를 갖고 휘두를 때야 도구가 된다. 그 이전까지 망치는 그저 무거운 쇠가 달린 막대일 뿐이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의 반박처럼 ‘장인일수록 더 좋은 도구를 쓴다’는 말이 한 때 유행처럼 퍼지기도 했는데 이는 본전 말도이다. 장인의 진짜 도구는 바로 그의 장인정신이기 때문이다. 그 장인정신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도구가 탄생한다. 마지막으로 '장인일수록 더 좋은 도구를 쓴다'는 말을 이렇게 반박하고 싶다.

'장인의 기준은 도구가 아니다'



삶이라는 도구


 우리는 도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실체가 있는 물건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교육, 관계, 운동, 말, 습관 등 무형의 개념도 도구로 확장할 수 있다. 어떨 땐 ‘도구의 소유’ 그 자체가 도구로서 작동하기도 한다. 요컨대 목적과 의지만 있다면 '삶의 모든 것'이 도구라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브랜드가 좋고 어떤 모델이 좋다고 정답을 내릴 필요가 없다. 누군가에게는 애플이나 나이크의 제품을 쓴다는 것 자체가 최고의 도구일 수도 있다. 반대로, 목적을 위해 작동만 한다면 어떤 도구던 가리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도구들이 내게 어떻게 작동하는지만 알고 있다면 내가 쓰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그 도구가 내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른다면 다른 사람의 기준(리뷰, 평가, 추천)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것들은 자신에게 있어 결코 정답이 아니다.)


 모두는 각자 자신만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 부, 명예, 영향력, 인기, 안정 등.

삶 자체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지만 그 형태는 모두 각자 다르다. 어떤 이는 모자란, 어떤 이는 풍족한 환경 속에서 태어나지만 어찌 됐든 그 삶이라는 것은 나의 유일한 도구이다. 오직 목적과 그걸 달성할 의지가 있다면 삶이라는 도구가 어떤 것이던 상관없다. 어떤 모양이던, 얼마나 느리던, 남들의 기준은 정답이 아니니 말이다. 나의 도구, 나의 삶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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