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던 날들
친구도 가족도 없이 오롯이 혼자였던 후쿠오카에서의 생활은 자유와 낭만이 넘쳤다. 매일매일이 특별한 것 하나 없는 나날이었음에도 그때의 나는 분명 반짝거리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꽤 많은 사람들이 혼자서는 무언갈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지금이야 혼영, 혼밥, 혼술이라는 단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들리지만 내가 후쿠오카에 살기 시작한 6년 전에는 더더욱 그랬다. 물론 나 또한 누군가와 함께할 때 나누는 행복의 크기도,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의 안락함도 안다.
그러나 그때는 여행이 아닌 첫 해외생활이기도 했고, 독립을 해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게 나에게 자극을 준 걸까? 왜인지 후쿠오카에서 혼자 살 때의 나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100% 나를 위해 움직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의 나는 아날로그 신봉자로 흔한 인스타그램의 아이디도 없었고 블로그를 할 때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기에 내가 하는 모든 평범한 것들이 매우 자유롭고 낭만적이었다.
하루는 9시가 넘은 늦은 저녁에 혼자서 집 근처의 작은 바에 간 적이 있다. 인테리어는 전체적으로 톤 다운이 돼 세련된 느낌의 바였는데 아드님이 요리와 술을 만들고 어머님이 서빙을 하는 곳이었다.
바를 가본 적이 없던 나는 뭘 마셔야 할지 몰라서 어머님께 칵테일에 대해 물어보니 카시스 오렌지를 추천해 주셨다. 처음으로 마셔본 카시스 오렌지는 상큼하고 달콤했다.
기분이 좋아서 한 다섯 잔 정도를 내리 마셨는데 달콤한 술이라 그런지 하나도 취한 느낌이 안 들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결제를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집에 갔는데, 정신을 차렸을 때는 길에서 신나게 에이핑크의 노래를 부르는 나를 발견했다.
아무래도 안 취했다고 생각한 건 나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돌이켜보면 조용한 골목길에 울려 퍼진 내 노랫소리가 부끄럽기보다는 용케 일본에서 신고 안 당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날씨가 좋고 시간이 나는 날에는 전철을 타고 텐빠이잔 (天拝山, 해발 257.4m)에 가서 등산을 했다.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30분 정도 걸리는 낮은 산이라 부담이 없었다. 그냥 천천히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만으로도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일본은 보통 공터 같은 공원이 많은데, 일부러 밤에 사람이 많은 초록초록한 예쁜 공원을 돗자리를 들고 찾아가기도 했다. 노트북도 가져가서 돗자리 펴고 누워서 타코야키를 먹으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봤었다. 정해인이 자전거 타고 지나가면서 손예진에게 다가가는 장면을 보며 혼자 좋다고 소리를 지르고 좋아했었는데 아직도 그 공원에서 느낀 공기나 분위기가 기억에 생생하다.
너무 소소했지만 아직까지도 나에게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많다. 하늘이 가까운 베란다에서 빨래를 탁탁 털어 너는 기분은 끝내줬다. 후쿠오카는 자전거 타기가 정말 좋아서 어딜 가도 자전거를 이용했는데 아침에 학생들이 학교 가는 길을 달릴 때는 일본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매일 같이 낮에는 파란 하늘을 보고 밤에는 눈부시게 밝은 달을 구경했다. 가끔은 아이스크림이랑 팩소주(일본술) 하나 사서 밤에 놀이터에 가서 달을 보며 혼술을 하기도 했다. 처음 후쿠오카로 이사 갔을 때부터 집 바로 뒤에 있던 나카강을 너무 좋아해서 나카강을 따라 산책도 자주 하고, 거의 매일 집 근처 다리에 가서 해지는 걸 봤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후쿠오카에서 나 혼자 살던 그 시절. 그래서 내가 어디에 살아도 내 마음은 아직도 후쿠오카에 남아 있다.
아래는 매일 집 근처 다리에서 나카강을 바라볼 때 찍은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