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도 '발화점'이 있사옵니다.

by 오늘도 생각남
맵 내관,
어느 때보다 ‘글쓰기’가 중요한 시대인 것 같소.
그런데 글쓰기가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소.
‘글’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 비밀을 찾아보시오.”


전하, 아래옵기 황송하오나 저의 경험을 통해 어떻게 글이 탄생하는지 설명드리겠사옵니다. 대신들이 모여 아내들 뒷담화를 하던 중이었사옵니다. 모두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자리를 올킬시킨 S 대신의 한 마디가 있었사옵니다.


“우리 부인은 파이터요. 항상 한 손으로는 링을 잡고 있소. 프로레슬링 경기장에서 당장이라도 (나를) 공격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선수처럼"


모두 엄지를 치켜세우며 그 자리가 정리됐사옵니다.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사옵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화가 난 파이터가 눈을 부라리면서 아차 하면 덤벼들 것처럼 한 손으로 링을 잡고 있는 모습 말이옵니다. 몇 가지 단어들이 연상되었사옵니다. 예민, 신경질, 파이터, 부부관계, 우리 부인은 약과.


전하, 글이란 무릇 ‘생각의 표현’이옵니다. 그렇다면 ‘글은 어디서 오는가’란 질문은 ‘생각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으로 치환할 수 있사옵니다. 생각의 시작점은 ‘외부 자극’이옵니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 사회적인 이슈, 자연현상, 인간 근원의 물음 등 나를 흔들어 놓는 모든 것들이 ‘외부 자극’에 해당하옵니다. 책의 한 구절, 너튜브 영상, SNS의 콘텐츠들도 모두 사람의 말과 행동의 변형으로 볼 수 있사옵니다.

외부 자극이 오면 ‘감정’이 일어나옵니다. 긍정적 감정(+감정) 일 수 있고, 부정적 감정(-감정) 일 수 있사옵니다. 감정은 ‘희로애락’으로 분류할 수도 있사옵니다. 이때 기쁠 희(喜)와 즐거울 락(樂)‘ + 감정에, 화날 노(怒)와 슬플 애(哀)는 –감정에 해당하옵니다.


생각이나 글은 짜낼 때보다 넘쳐날 때 잘 나오게 되옵니다. (희) 너무 좋은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노) 화가 치밀어 올라 어딘가 막 쏟아붓고 싶을 때, (애) 마음이 간질간질, 발가락이 꼼지락꼼지락 하며 침대에 누워 이불 킥을 하고 싶을 정도로 하트가 솟아오를 때, (락) 이보다 좋을 수 없을 정도의 궁극의 즐거움을 경험했을 때가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사옵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잘 ‘포착’해내는 것이옵니다. S 대신의 부인 이야기가 여기서 시사점을 주옵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은 S 대신의 부인이 가진 ‘예민함’을 갖고 있어야 하옵니다. 초원 위의 먹잇감을 노려보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표범처럼 항상 ‘감정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야 하옵니다. 하루 종일 낚시터에 앉아 낚싯대가 '딸깍'하고 움직이기를 기다렸다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순식간에 낚아 올리는 ‘민첩함’도 필요하옵니다.

무엇이든 잡아채야 하고 건져내야 하옵니다. 요리(글쓰기)는 그다음이옵니다. 건져낸 먹잇감이 주요 요리는 되지 못하더라도 입맛을 돋우는 부수적인 역할을 할 수 있사옵니다. 한 토막의 생각이 글 전체는 되지 못하더라도 한 문단 또는 한 문장에 자리를 틀어 씬 스틸러로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말이옵니다.


그래서 항상 ‘감정 안테나’를 잘 세워놓고 있어야 하옵니다. 감정 안테나에서 생각이나 감정을 감지할 수 있는 주파수는 ‘발화점’에 비유할 수도 있사옵니다. 불이 날 때 발화되는 온도가 있듯이 감정이 일어날 때도 발화되는 ‘감정의 온도’가 있사옵니다. 감정이 감응하는 온도를 ‘글의 발화점’으로 정의할 수도 있사옵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글(감정)의 발화점’을 낮춰놓어야 하옵니다.


명문가인 ‘김훈’ 작가의 ‘연필로 쓰기’라는 책의 목차에는 이런 문장들이 있사옵니다.


“연필은 나의 삽이다”

“지우개는 나의 망설임이다”


김훈 작가는 글을 쓸 때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기로 유명하옵니다.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쓰는 것을 고수하고 있사옵니다. 저의 뇌피셜을 말씀드려보겠사옵니다. 김훈 작가는 여느 때처럼 원고지에 연필을 꾹꾹 눌러 가며 한 글자 한 글자 글을 쓰고 있었을 것이옵니다. 한참 동안 연필을 잡고 있던 손가락 아파서 글쓰기를 중단하고 손가락을 바라봤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깨달음이 왔을 것이옵니다.


‘일터 노동자들의 도구처럼 연필은 내 노동의 도구이구나’


그리고 옆에 놓여있던 지우개의 의미를 생각해봤을 것이옵니다.


‘글을 수정할 때 사용하는 지우개는 단순히 글씨를 지우는 도구가 아니라 내 생각을 고칠 것인지 말 것인지 치열한 고민을 담은 내 마음이구나’


이런 생각의 조각들이 흩어지기 전에 부랴부랴 메모지를 찾아 그 단상들을 휘갈겨 적었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퇴고와 퇴고를 거쳐 ‘삽’과 ‘망설임’이라는 단어가 탄생했을 것이옵니다.


전하, 글을 이렇게 찾아오는 것이옵니다.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 외부의 크고 작은 모든 자극들이 생각의 시작점이고 글의 발화점이옵니다.


일상에서 감정의 안테나를 잘 세워놓고 글의 발화점을 최대한 낮추면서 외부의 자극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글쓰기의 시작이라 할 수 있사옵니다. 이때, 메모도 중요하옵니다. 작은 생각의 부스러기들을 절대 함부로 흘려보내지 말고 그때 끄때 잘 기록해두는 습관도 필요하옵니다.


“허허허, 맵 내관에게 한 수 배웠소.
S 대신 불러다가
파이터 부인의 이야기도 좀 더 듣고 싶구려.
다음에는 그렇게 시작한 글을
어떻게 전개해 나가야 하는지,
생각의 부스러기들을 모아
어떻게 글을 만들 수 있는지를
알아봐 주도록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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