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나라를 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에 삼수로 도전하는 이유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나. 아마 서른아홉과 마흔 사이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아. ‘작가’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 시점이. 아니, ‘작가’라는 거창한 타이틀보다 ‘쓰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을 먹었지.(물론 그러다 ‘작가’가 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M! 요즘은 ‘크리에이터 전성시대’잖아. 누구나 자기 SNS에 글을 쓰는 작가고, 자기 유튜브에 영상을 찍어 올리는 ‘1인 방송국’이고. 누구나 하는 크리에이터 나도 한번 돼보고 싶었어. 남의 콘텐츠만 소비하는 수동적인 삶 말고 내 것을 만들어 보여주는 생산자의 삶을 살아보고 싶었어. 잘은 모르겠어. 마흔이 돼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 몸속의 ‘관종’ 세포가 ‘마흔’이라는 타이밍을 핑계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인지. 아무튼 나이 앞자리가 ‘3’에서 ‘4’로 바뀌던 어느 날이었던 것은 분명해.
마케팅 전문가들은 이런 조언을 많이 해. ‘팔리는 글’을 쓰라고. 독자들에게 뭔가를 줘야 한대. 정보를 주거나 재미를 주거나 영감을 주거나. 이해는 되는데 실천은 다른 문제더라고. 팔리는 글을 쓰려면 ‘하고 싶은 말’ 보다 ‘듣고 싶은 말’을 쓰라는데 나는 자꾸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싶은 거야. 나는 ‘재미주의자’라기 보다 ‘의미주의자’거든. 나도 알아. 재미있어야 잘 팔린다는 걸. 근데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한 진지’ 했단 말이지. 사람은 참 안 바뀌더라. 그리고 신기하게도 글에는 그 사람 ‘스타일’이 그대로 나타나. 그래서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고들 말하나 봐. ‘팔리는 글 vs 안 팔리는 글’, ‘듣고 싶은 말 vs 하고 싶은 말’의 화두를 고민하던 중에 이런 문장을 만났어.
“형, 이번 소설은 계속 내 뜻대로 써보고 싶어”
“그러니까 안 팔리는 글을 쓰고야 말겠다 이거지?”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의 대사야. 유명 소설 작가였던 주인공이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번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글을 쓰겠다며 매니저에게 폭탄선언을 한 거야. 그 글이 안 팔리더라도 말이지.
지인 중에 작가로 데뷔를 했는데 첫 책을 출간하기도 전에 2쇄를 찍으며 베스트셀러의 기록을 세운 K 작가가 있어. 출간 기념 온라인 북이 토크에서 K 작가가 했던 말이 기억나.
“쓰고 싶은 내용을 책으로 내고 싶어서 먼저 팔리는 책을 썼어요”
K 작가의 말을 듣는데 ‘시카고 타자기’ 속 베스트셀러 작가의 얼굴이 겹쳐 보이더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은 모든 크리에이터들의 공통적인 목표인가 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말’도 세상을 바꿀 ‘선한 영향력’도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가치가 있는 법인거지.
나는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 도전이 이번으로 세 번째야. 매번 떨어지는데 또 도전하는 이유가 뭘까? ‘듣고 싶은 말’보다 ‘하고 싶은 말’을 고집하면서.
내 나이는 올해 4학년 3반이야. 나이 앞자리가 ‘3’에서 ‘4’로 바뀐 것이 나한테는 ‘혁명’같은 일이었어. 30대는 어떻게든 청년이라 우겨볼 수 있었는데 40대는 그냥 ‘아저씨’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결심했지. 40대는 30대와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고. 뭔가 더 숙련되고 성취감 있는 그런 느낌. 근데 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 지난 거야. 등골이 오싹했어. 눈 떠보니 마흔이었는데... 눈 깜짝하니 마흔 셋이라니... 이렇게 눈만 껌벅껌벅하다가 어느새 오십이 되겠더라고. 그래서 또 결심했지. ‘마흔’에 대해 글을 써보기로. 주변을 돌아봤을 때 대다수의 마흔들은 ‘재미와 의미’를 잃고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경우가 많았어. 찾아보고 싶었어. 마흔의 ‘의미와 재미’는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M! 물론 내가 너 같은 마흔들이 잃어버린 ‘재미와 의미’를 찾아줄 수는 없야. 하지만 내가 잃어버린 ‘의미와 재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마흔들이 자신의 ‘재미와 의미’를 찾는 일에 작은 실마리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용기를 내보기로 했어.
M! 나는 글쓰기로 나라를 구할 생각은 없어. 물론 그런 글쓰기 실력을 갖고 있지도 않고. 나는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뿐이야. 내가 구할 수 있는 건 ’나라‘가 아니라 ’나‘라는 한 사람 뿐이거든. 마흔의 재미와 의미를 잃고 방황하고 있는 미혹한 ’나‘라는 한 사람. 그리고 운이 좋다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두 번째 스물‘을 힘겹게 보내고 있는 어떤 ’한 사람‘.
어렸을 때 대통령 선거를 보면 궁금한 게 있었어. 떨어질 게 분명한데도 열 손가락으로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출마를 하더라고. 이해가 되지 않았어. 나이가 들어 알게 됐지. 누구나 대통령이 되려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떤 사람은 차기 선거를 위한 스펙을 쌓으려고 출마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얼굴을 알려서 자신의 사업에 활용하려고 출마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지지율 3위를 기록하며 캐스팅 보트의 지위를 얻어서 지지율 1,2위에게 정치적 제안을 하기도 하고. 한 마디로 현재의 도전은 ’당장‘이 아니라 ’다음(NEXT)'을 내다본 행동들이었던 거야.
M! 글쓰기도 대통령 선거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어느 유명 작가의 말처럼 ‘당장’은 초고가 ‘쓰레기’지만 편집과 퇴고를 거쳐 ‘(그) 다음’에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지. 내가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도 ‘당장’보다는 ‘다음’을 바라보기 때문이야. ‘당장’의 도전들이 모여 ‘다음’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고.
내 글이 ‘당장’은 아니지만 ‘다음’에는 너에게 그리고 흔들리는 마흔들에게 닿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