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만능주의(2)
인공지능 붐이 일면서 중학교에도 강력한 바람이 불고 있다. 다양한 교육용 앱이나 소프트웨어가 생산되고, GPT나 클로드, 제미나이와 같은 LLM 생성형 인공지능을 수업과 평가, 학교 행정업무에 도입하려는 시도도 많다. 교육부는 2023년 2월 모두를 위한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미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더믹으로 강제된 온라인-오프라인 블렌디드 러닝을 맛보아서였는지, 인공지능을 포함하여 다양한 에듀테크를 교육에 활용한다는 인식과 정책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듯하다. 태블릿 PC가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쥐어지고, 에듀테크를 적용한 수업, 평가 등 교사 연수가 있다는 공문이 학교의 전자문서함에 넘쳐흐르고 있다. 특히, 과거와는 다르게 기업과 연계하여 찍어내리는 듯 반 강제적으로 진행되는 연수 방식은 위화감이 들 정도다.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2028년 종이 책을 없애려는 AI 디지털 교과서 개발과 도입이 그 거대한 흐름의 정점에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 글은 거부할 수 없는 우리나라 교육환경의 변화에 대한 개인적인 우려다. 지난 9월 초 같은 지역 몇몇 영어교사들이 꾸린 학습공동체에서 발표한 내용을 기반으로 썼다. 중등학교 영어교사이다 보니 공교육 하에서 영어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려 한다. 영어 이외의 다른 교과, 혹은 학교 행정, 학교와 사회 전반의 변화에 관한 좀 더 넓고 깊은 이야기는 이미 다른 누군가가 훨씬 훌륭히 했으리라 여기며, 또한 앞으로 해주길 기대한다.
테크놀로지를 교육에 접목한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한다. 이미 1960년대부터 컴퓨터를 교육에 활용하기 위한 시도가 있어 왔다. 1984년 교육심리학자 블룸은 95프로의 학생이 90프로 이상을 성취할 수 있는 완전학습 모형을 주장하면서 컴퓨터 학습을 활용한 개인지도를 실현할 수 있는 교수법을 제안했다. 2000년 대 초반 MOOC(Massive Online Open Course, 대규모 온라인 공개강좌)이 처음 등장했을 때 세상이 뒤집어질 거라는 확신에 찬 목소리도 있었다. 종이 시험에서 학습자의 반응을 기반으로 문제를 제시하는 컴퓨터 적응 시험(Computer-Adaptive Test)을 토플이 도입하는 등 학습 평가에서의 컴퓨터 사용도 확대되었다.
우리나라도 아마 1990년대와 2000년 초부터였을 것이다.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필자도 교실에 티브이나 OHP가 설치되고, 어두컴컴한 교실에서 투명한 셀로판지에 적힌 수업 내용을 필기했던 경험이 있다. 대학 시절 컴퓨터를 활용한 멀티미디어 영어교육 수업을 들으며 원시적인 음성 분석 및 발음 교정 프로그램을 체험하기도 하였다. 2010년 대 초반 처음 서게 된 교탁 안에는 두터운 모니터가 박혀 있고 서랍에는 키보드와 마우스, 바닥에는 큼직한 본체가 서 있었다. 하얀 스크린 위로 빔프로젝터에서 쏘아진 흐릿한 모니터 화면을 통해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나 한글 문서를 띄워 수업했다.
코로나 시기, 구글 워크스페이스나 마이크로소프트 팀즈, EBS 온라인클래스 등의 학습관리시스템(Learning Management System, LMS)을 활용하여 출석과 과제 업로드가 이루어졌다. 줌, 웨벡스, 구글 미트 등의 화상 회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 진행되었다. 개인적으로 그 당시부터 온라인 수업은 오프라인 수업을 넘어설 수 없다 여겼다. 실제 학교의 교육활동을 온라인으로 그대로 옮기려는 교육부 이하 많은 학교의 시도는 크나큰 오판이라 생각했다. OECD에서도 평가하였듯이 다른 나라에 비해 IT 강국인 우리나라는 코로나 시국에도 학습 결손이 적었다는 점은 다행스러웠으나, 실제 현장에서 볼 수 있는 벌어진 학습 격차, 특히 기초학력이 무너져 버린 교실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더믹 여파가 잦아들 무렵, 인공지능 붐과 함께 에듀테크(EduTech, 영어로는 보통 에드테크 EdTech라는 용어를 쓰는 듯하다)에 대한 관심이 교육당국과 일선학교, 학교 밖 사교육 현장 등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멀티미디어를 교육에 접목했던 과거와 마찬가지였다. 인공지능이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우리나라 교육계에 산적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만병통치약(panacea)이라는 믿음이 등장했다. 인간의 본능일까. 학생들이 새로운 교수법과 기술에 흥미를 느끼고 단기적으로 동기가 높아지는 현상을 새것 편향(novelty bias)이라 한다. 현직 교사나 강사, 교육행정가들에게도 이런 편향이 있는 듯했다.
이런 편향과 신뢰는 인공지능이 가진 매력적인 강점 때문일 것이다. 멀티미디어 활용 교육에서도 언급되었던 특징들이었으나, 거대언어모델 인공지능을 활용한 교육은 이를 크게 확장시켰다. 첫 번째 강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생산성이다. 수천억, 수조 개의 문서로 학습한 거대언어모델은 질문이나 명령(프롬프트) 하나만 입력하더라도 짧은 시간에 굉장히 길고 상당히 신뢰로운 답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수많은 논문을 입력하여 이를 요약하거나 분석하게 명령하면 수 초 내로 훌륭하게 이를 수행한다. 학생에게 가르칠 문법이나 표현을 위한 예문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순식간에 수십, 수백 개의 문장을 생성해 낸다. 거꾸로 학생이 활동한 결과물에 대해 피드백을 제공하라고 한다면, 내용과 표현, 완성도 등에 관해 풍성한 답변을 얻을 수도 있다.
엄청난 생산성은 두 번째 강점으로 연결된다. 최적화를 통한 효율성 증대이다. 챗GPT를 활용하는 판교의 많은 엔지니어들이 생성현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것이 똑똑한 비서 세네 명을 둔 것과 비슷하다 평한다. 학교 수업에 적용하자면, 순식간에 학습자료를 생성하고, 학생들의 결과물에 피드백을 제공하면, 교사와 학생은 단순한 이해 점검을 넘어선 활동을 추구할 수 있다. 또한, 학생 역시 학습 과정에서 단순 정보 검색을 시작으로, 글쓰기, 요약, 글 분석 등의 과업을 수행할 수 있다. 즉, 교수학습의 효율을 크게 늘릴 수 있다. 또한, 업무 효율화를 통해 교사가 행정 업무에 소비하는 시간도 극적으로 줄여준다.
셋째, 엄청난 인내심을 지녔다. 인공지능이 감정이 있다니, 상당히 모순적인 표현이지만, 실제 학생들은 이 점을 큰 강점이라 여긴다. 영어교육을 예로 들자면, 학생의 의사소통 향상에서 상호작용(interaction)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교사와 학생이 일 대 다수인 교실 현장에서는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상호작용의 기회를 제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사람과 비슷하게 말하고/쓰고 소통할 수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 챗봇을 활용한다면, 교실에서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학생이 틀린 표현이나 문법을 사용할 때, 혹은 이해가 늦어 여러 번 같은 질문을 할 때. 인공지능은 귀찮거나 짜증 내지 않고 언제까지나 친절하게 반응할 수 있다. 실제 챗봇을 활용한 수업 후 인터뷰한 학생의 많은 수가 인공지능의 인내심이 인상 깊었다 답했다.
마지막 강점으로, 이 모든 강점을 합쳐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2023년 교육부에서는 <모두를 위한 맞춤 교육의 실현,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을 내놓았다. 뒤이어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간한 <AI 기반 맞춤형 교육의 현황과 과제> 연구보고서의 제목과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AI를 포함한 에듀테크를 활용하여 학생 개인의 성향과 수준 등에 맞춰 학습과제와 평가를 제시하고 실시할 수 있는 교실을 만들고자 하였다. 특히 한국교육개발원의 연구보고서에는 'AI가 갖고 있는 데이터 기반의 적응성과 동작의 자율성,' '학습행동을 데이터화' 등 매력적인 표현들이 많다.
이 중 학습과 평가는 AI의 활용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영역으로, AI에 기반을 둔 첨단의 기술을 활용해 학생의 학습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이를 분석해 적절한 학습 콘텐츠를 제공하거나, 자동화된 평가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교수・학습 측면의 이러한 지원을 통해 교사는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과업을 AI에 맡김으로써 여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으며(High-Tech), 이를 학생의 정서적 지원 등 보다 나은 교육활동 수행을 위해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High-Touch). (한국교육개발원, 2023, 3쪽)
학습자가 태블릿이나 컴퓨터 등을 학습할 때, 학습자가 어떤 부분을 터치하고, 어떤 문제는 어떻게 응답했으며, 어떤 페이지는 어느 정도 시간을 들였는지 등의 데이터로그를 기계학습 알고리듬을 통해 분석, 진단, 분류하여 각 개인의 특성에 맞춘 학습과제를 제공한다. 현재, 프로토타입이 나오고 2025학년도에 초등 3, 4학년, 중고등 1학년을 대상으로 수학, 정보, 영어 교과에 도입되는 AI 디지털교과서에 탑재될 계획도 있다-실현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이를 통해, 같은 교실에 있지만 각자 자신의 특성과 흥미, 수준과 능력에 맞춰 AI가 제공하는 다른 과제를 다른 화면 속에서 배운다는 수업 장면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제시한다.
에듀테크, 특히 인공지능을 수업에 도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위와 같은 강점을 부각하며 이런 기술을 통해 학생 개개인의 학습이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미 1990년 대와 2000년 대 멀티미디어와 온라인 연결 기술(인터넷)을 교육에 도입하고자 한 이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믿음이다. 표면적으로 이는 기술을 통해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로 보인다. 기술만능주의(또는 테크노크라시 technocracy)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기술에 대한 믿음 아래에는 기술을 도입한 교실에서의 학습, 또는 개별 학습으로 교육이 해결하고자 하는 교육적 문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교육만능주의적인 믿음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멀티미디어 기술과 인터넷, 다양한 소프트웨어의 도입 등 교실 장면을 극적으로 바꿀 것이라 여겼던 많은 에듀테크들은 그 기대만큼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위에서 강점으로 언급된 인공지능의 특징에는 거대한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개인적인 편견 때문인지, 정말 그런 빈틈이 있어서 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필자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수업 역시도 기대했던 이상적인 교실을 만들어 내지는 못할 것이라 여긴다. 다음 글에서는 AI 등을 활용한 에듀테크가 가진 허상에 대해, 특히 영어교육을 중심으로 지적하려 한다.
<참고문헌>
교육부. (2023). 모두를 위한 맞춤 교육의 실현,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 교육부.
교육부. (2023년09월18일. 공교육과 기술이 함께 발전하는 교육 정보 기술(에듀테크) 시대 열린다. [보도자료]. 교육부. https://www.moe.go.kr/boardCnts/viewRenew.do?boardID=294&lev=0&statusYN=W&s=moe&m=020402&opType=N&boardSeq=96398
저스틴 라이시. (2021). 언택트 교육의 미래. 안기순 옮김. 문예출판사.
한정윤, 손찬희, 황은희, 김은영, 장혜승, 정혜주, 박효진, 허선영, 최대영. (2023). AI 기반 맞춤형 교육의 현황과 과제. 연구보고 RR 2023-12. 한국교육개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