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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of SNU Jan 22. 2022

서울대학교 한 청소노동자의 삶을 묻다.

제3편 “아직 일할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이 행복해요”

깨끗하면 제 기분도 너무 좋아요. 일한 것 자체가 너무 좋아요. 아직 일할 수 있는 나이라는 것도 행복하고, 학생들 얼굴보고 일하면 너무 행복해요.

Q. 그러면 지금 일하는 장소는 어떻게 되시나요?

A. 지금 B단과대 C동 모든 층을 다합니다. 4개층과 외곽까지 모두 하고 있어요.


Q. 계단이 엄청 깨끗하던데?

A. 계단이 너무 더러워서 제가 혼자서 한 달 가까이 작업했어요. 모두 수작업으로 닦아서 일했구요. 복도도 해야 하는데 기계를 아직 안 사주셔요. 행정실에 요청했는데 아직이네요. 복도는 혼자서 못하고 기계, 약품, 깎아내야 해서 최하 3~4명 필요해요. 작업을 해야 해서 기계를 사달라고 했어요. 그러고는 제가 친구들 불러서 밥 한 번 사주고, 왁스 작업만 제가 하고, 기계 작업은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 업무가 제 자리이기도 하고, 깨끗하면 제 기분도 너무 좋아요. 일하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아요. 아직 일할 수 있는 나이라는 것도 행복하고, 학생들 얼굴보고 일하면 너무 행복해요. A단과대에서 일할 때도 그렇고 여기도 선생님들이 인사도 잘하고 해서 너무 예뻐요. 그게 너무 재밌고 좋아요. A단과대 있을 때 학생들이 정말 많은데 아침이면 제가 책상을 모두 닦아요. 제가 제 층 7~8개 강의실, 세미나실까지 10개 정도 매일 닦았어요. 책상은 먼지가 붙으면 안되는게 학생들이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가는 건데, 쌓이면 안될 것 같았어요. 저는 화장실을 중요시해요. 감염이 될 수 있고, 맨몸으로 앉는 데가 화장실이라 매일같이 소독해요. 거울같은 것에도 얼룩 없게 하려고 하고요. 얼룩 같은 게 없을 수 있지만, 그래도 매일 닦으려고 해요. 몸으로도 들어가는 것도 있고, 깨끗한 곳 가면 사람 심리가 깨끗하게 하고 싶어하기도 하고, 제가 깨끗해지는 거 보면 정말 기분도 좋고요.

학교에서 하는 청소는 솔직히 말해서 가정에서 하는 청소와는 달라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은 직업이라 기술같은 것도 다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술이란 게 왁스 작업이나 기계도 돌릴 줄 알아야 해요. 제가 필요할 때 다 할 줄 알아야 해요. 쉽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다 배웠어요. 처음에는 저도 할 줄 몰랐지만, 이걸 제 직업으로 삼은 이상 다 할 줄 알아야겠다 싶더라고요. 하면 되더라고요.


Q. 직업이나 일에 대해 자부심, 사명감을 가지시는 것 같은데, 일이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A. 삶에요? 정말 중요하죠.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제 삶에 도움이 되고, 딴 데 가서도 벌 수는 있지만, 학교라는 곳에 한 일원이 돼서, 특히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일원이 돼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너무 행복해요. 도움이 안되나? (웃음) 저는 주변 친구들한테 다 자랑하고, 가족들 모두 알아요. 내 이 직업이 저는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Q. 말씀해주시는 것 들어보니 정말 너무 감사하고, 많은 학생들이 이런 수고를 모를 텐데, 계속 해 주신다는 게 돈을 떠나 마음이 너무 감사해요!

A. 아니에요. 학생들도 다 저 알아요. A단과대 교수님, 학생들이 제 얼굴 많이 알고요. B단과대 오니까 조금 분위기가 다르긴 해요. B단과대는 조금 삭막했어요. 그래도 제가 먼저 다가갔어요. 여기 B단과대는 자고 가는 학생들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걸레를 쓴다고 하면 마음대로 가져가서 쓰라고 하고, 창틀 같은 데도 학생들이 몰라서 못 닦으면 제가 먼저 닦아준다고 말하고 그랬어요. 이게 제 전문이고 학생들은 공부가 전문이니까 당연히 모를 거 아니에요. (웃음)

학생들이 처음에는 수줍어하다가 제가 먼저 인사하고, 밖에 물건같은 것도 내놓으면 제가 먼저 필요한 거 다 정리해준다고 했어요. 엊그제도 학생들이 빗자루로 치우려고 하길래, 제가 먼저 이거 제가 전문가고 이런 일 하는 사람이라고 가만히 두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학생들이 많이 부드러워졌어요. 그래서 재밌는 것 같아요.


Q. 퇴근하시고 집에 쉬실 때, TV같은 것 보시나요?

A. 저는 퇴근하고 TV도 보지만 정년하고 나서 뭐할지 생각해요. 저는 서울말고 시골에서 살고 싶어요. 저는 우리 아저씨 고향이 거제도인데 집터가 거기 있어서 거기서 살려구요. 이번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어요. 나중에 나이 들어 쓰려고요. 시골에서는 같은 마을에 나이 든 사람이 많잖아요. 할머니들 심부름 하고, 병원 모시고도 가고, 간병인 역할도 하고. 정년 하면 68~9살 정도 되는데, 할 수 있겠죠? 시골 가서 살 적에, 바닷가 쪽이니까 노느니 그런 것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아니면, 저는 조금 가만히 있지를 못해서, 산에 밭도 하고, 거제도 산에 죽순이 많이 나는데, 4월에서 5월 초까지 나서 봄에는 죽순 캐고, 그 다음에 또 다른 작물을 키우면 좋아요. 조그마하게 블루베리 같은 것 5년 정도 공부했는데, 사과, 대추랑 해서 여름에는 다른 작물이랑 하면 1년이 알차잖아요. 낚시도 가고, 그렇게 살고 싶어요. 서울에서는 그게 어려울 것 같아서요. 그리고 지금까지 서울에서 부대끼면서 살았는데 죽을 때는 안식을 좀 찾아야죠.


Q. 마지막으로 대학생인 저희에게 인생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은?

A. 누구나 기본을 지키고 사는게 어려워요. 평범하게 산다는 게 엄청 힘들어요. 평범하게 산다는 게 말은 평범하게인데, 아무 굴곡없이,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굴곡이 한번씩 오잖아요. 부부로 살면서 둘이 같이 사는 건데, 요즘 분들은 각자 간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저는 종착역을 향해 같이 가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살면서 ‘같이’라는 생각을 요즘 분들은 안하더라고요. 나는 살면서 남편 삶이나 내 삶이 같다라고 생각하고 살았거든요. 요즘 분들은 너는 너 나는 나라고 생각하던데, 그런 건 안 좋은 것 같아요. 요즘 말을 너무 함부로 해요. 저도 말을 이쁘게 성격상 못하는데, 부부간에 죽을 때까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은 건드리지 말고, 후벼 파면 안돼요. 서로 존중해줬으면 좋겠어요.   



조금은 어색한 듯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무르익어 생생한 장면들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모호한 인상 속에 남아있던 ‘노동자’의 삶은 우리 혹은 우리의 부모님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형태로 존재합니다. 어떠한 삶을 살았고, 어떠한 궤적을 통해 지금의 모습에 다다르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노동자’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평범한 그들의 일상이 존재합니다. 

담담하면서도 당당하게 나눠 주신 말씀 속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그녀의 인생이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 한 청소노동자의 삶을 물어보다’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야기의 끝에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한 사람의 소망과 꿈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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