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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Mar 28. 2023

오십 프로 세일이라고?

엄마 일기


베트남, 캄보디아 여행을 앞두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나야, 내일 바빠?"

"왜..."

"아니, 내일 시간 되면 같이 그 롯데 그 뭐더라 거기 한번 가보자고."

"롯데 뭐? 롯데 백화점? 아웃렛?"

"아니, 있잖아. 그 롯데.... 롯데 뭐더라?"

엄마는 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답답해하고, 나는 시장 본 장바구니가 무거워 전화를 얼른 끊고 싶었다.

"그 있잖아... 여행 가기 전에 사람들 막 가는 데.. 그 ... 롯데..."

"아... 면세점?"

"그래, 맞다! 면세점! 아 왜 그게 생각이 안 나지? 하하하하"

나도 웃음이 터졌다. 두 손에 가득한 장바구니도 잊은 채 웃고 만다. 무슨 가족오락관 퀴즈도 아니고 매번 엄마와의 대화에는 이런 위트와 퀴즈에 대한 준비 마음이 필요하다. 엄마가 가고 싶어 하는, 해외여행 전에 모두가 들른다는 면세점엘 함께 가기로 기분 좋게 약속했다. 요즘 사람들은 여행 전에 면세점에 가지 않고 모두 집에서 컴퓨터 앞에서 주문한다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의 목적은 여행의 기분이니까.



엄마랑 함께 백화점에 간 일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우린 함께 쇼핑을 할 만큼 서로 다정한 존재도 아닐뿐 더라 우리의 필요재는 백화점이 아니라 아웃렛에 더 친근히 구비되어 있다. 조 여사는 딸과 함께 가는 면세점 쇼핑을 그냥 나들이처럼 즐기는 것 같다. 엄마의 기대와는 다르게 면세점은 휑했다. 한창 여행을 많이 다닐 때의 그 복잡하고 활기 넘치는 면세점의 모습이 아닌 것에 엄마는 놀라는 눈치다.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된 것과 현재의 비싼 환율을 고려해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엄마가 노리는 쇼핑 아이템은 설화수 화장품 세트였다. 눈매가 예쁜 젊은 점원이 친절히 응대해 주었다. 한 개를 구매하면 얼마이고, 얼마 이상 구매하면 2만 원 쿠폰이 나오고, 또다시 한 개 더 구입하면 할인율이 더 높아진다는 친절하지만 난해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조 여사의 얼굴은 이미 이해를 하지 않고 싶은 표정이다. 귀 기울여 찬찬히 판매의 미스터리한 규칙을 이해한 후 조 여사에게 설명했다. 살수록 더 싸지는 원리이긴 하지만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 가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슬그머니 그냥 필요한 것만 사라고 점원 몰래 눈치를 줬지만 엄마는 그 할인율의 올가미에 단단히 걸려 있는 듯했다. 결국 스킨 세트에 에센스 그리고 콤팩트도 무려 두 개가 세트인 듀오를 구입하고서야 그 매장을 나올 수 있었다.

"지나야, 저 딱분 나 죽을 때까지 쓰면 딱 맞겠다. 유효기간도 긴데 죽을 때까지 쓰지 뭐..."

"그러게. 엄마가 딱분 얼마나 바른다고. 너무 많이 산 것 같네."

"아냐 죽을 때까지 쓰고 혹시 그전에 엄마가 죽거든 엄마 죽은 얼굴에 떡칠해 줘. 예쁘게!"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호탕하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나도 덩달아 웃는다. 그러다 눈물이 찔끔 흘렀다.

"엄마, 그런 소리 하지 마. 슬프게. 끝까지 다 써도 엄마 안 죽어! 그때 또 사러 오자. 면세점에!"

엄마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흐흐흐 웃기만 한다. 



엄마의 쇼핑 아이템을 다 사고도 우린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구경을 했다. 중년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일본 브랜드 가방이 눈에 띄었다. 엄마는 곁눈질로 쓰윽 보더니 별로라는 표정이다. 나는 슬쩍 들어서 스타일을 보여주며 생각보다 아주 가볍다며 엄마에게 건네 보였다. 엄마는 한번 들어 보더니 왜 이렇게 가볍냐며 갑자기 태도가 바뀐다. 성당 갈 때 들면 딱 좋겠다며 이리저리 들어본다. 나는 점원에게 가격을 물었다. 이번엔 나이 지긋한 점원이 점잖게 말했다.

"제일 작은 사이즈가 오십구만 원요."

저 멀리 다른 가방을 보고 있던 엄마가 고개를 획 돌리며 내게 물었다.

"응? 오십 프로 세일을 한다고?"

나는 다시 웃음이 터졌다. 

"엄마, 오십 프로 세일이 아니고 오십구만 원!"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건  엄마의 주 특기다. 점잖은 직원이 고개를 돌렸다. 아마 몰래 웃었을게다. 오십 프로 세일이 아니라는 말에 엄마는 입을 삐죽거리며 다음에 일본에 가서 사 오면 싸겠다며 내 손을 끌고 나온다. 일본 여행을 가더라도 엄마 돈으로는 사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잘 알지만 그래그래 맞장구를 치며 나도 못 이기는 척 나왔다. 



결국 두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우리의 쇼핑은 끝났다. 지하 식품매장 코너에 앉아 두유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고 우리의 쇼핑에 대한 총평을 나눈다. 엄마의 요지는 너무 비싸다는 거다. 바지 하나 사입으려고 해도 몇 십만 원씩이니 후줄근해도 더 싼 데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엄마 의견에 미친 물가라며 나도 과격한 맞장구를 쳤지만 엄마를 보는 마음은 개운치가 못하다. 언제나 가격표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돌려가며 살아온 엄마의 인생이 팔십 년이 된 것이다. 이제는 그냥 오십구만 원짜리 가방을 하나 사서 써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엄마는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한다. 그 가방을 그냥 사줄 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왔다. 



엄마는 처음 먹어본 두유 아이스크림이 꼬시고 맛나다고 했다. 그리고 천 가방이 가볍고 편하다고 얼른 집에 저녁 하러 가자고 한다. 오늘 하루가 시트콤 같기도 하고 또 그리울 것 같아 엄마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조 여사의 기분이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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