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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소의뿔 Feb 05. 2024

'사과'하기 전에 꼭 짚어야 할 3가지

사과할 행동을 한 사람과 사과를 받을 사람

'쎄 보인다.'

평생을 들어온 말이다.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그런대로, 또 말을 하면 또 그런대로 뭘 어떻게 해도 '쎄 보인다'라고 하니 어쩌겠나, 그냥 생긴 대로 산다는 생각으로 그런 표현에 별로 자극받지 않는다. 어쩌다 누군가에게 듣게 되면 속으로 생각한다. '빙고~, OO님, 지극히 정상적인 분이군요!'


최근 아주 묘한 감정을 느낀 경험이 있다. 어느 교육 과정에서 말 한 번 섞지 않은 분들, 처음 보는 분들과 그룹으로 활동을 함께 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가 오가고 A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서 인사하지 않아요. 제가 세 보이나 봐요.' 나는 이 말이 너무 반가웠다. 그래서 바로 이렇게 받았다. '어머나, 저도요!' 기다렸다는 듯이 A님은 바로 이렇게 넘겨주셨다. '그래, 어제저녁 세션에서 쎄 보였어요.'


'쎈' 이미지를 확산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숨어 지내다, 전날 저녁 전체 모임에서 질문을 하나 했는데, 아뿔싸. '쎈' 이미지가 노출되었다. '아, 네, 그런 이야기 많이 들어요. 하하하' 나는 여느 때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 휘리릭~ 그 순간을 넘겼다.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 뒤편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A가 조용히 다가왔다. '아까 미안했어요. 내가 괜한 말을 했어요.'라며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아, 네네,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가라앉는 진흙을 휘저어 물이 혼탁해진 것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았던 생각과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마음을 어지럽혔다. 뭐지?


'사과' 상황에서 설정된 관계에 대한 당황스러움이었다. 받은 사람은 자극을 자극이라 인식하지 않고 자극을 준 사람은 그 자극이 자극이라 인식하는 상황. 사과를 주는 또는 받은 순간, 한 편은 '당한 사람'이 되고, 다른 한 편은 '준 사람'이 된다. 바로 이 지점. 사과는 누구를 기준으로 해야 하는가? 자극을 준 사람? 자극을 받은 사람?


나는 사과하는 데, 상대는 왜 나에 대해 미안함 마음을 갖느냐며 어리둥절해하는 상황이 있다. 또는 상대는 사과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나는 꼭 사과를 받아야겠다 벼르는 상황도 있다. 이들 어떤 상황도 서로에 대해 미묘한 감정적 반응이 일어난다. 누군가에게는 사과도 할 줄 모르는 무례한 사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극이 될 줄을 알면서도 자기 맘대로 행동하고는 사과하면 그만 인 무례한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사과를 요청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런데 사과하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다. 책「분노 죄책감 수치심」에서는 사과 전에 짚어야 가지를 정리하고 있다. 우선, 자극을 사람인 액터 actor자신의 행동을 자극으로 받은 또는 받았다고 짐작되는 사람인 리시버 receiver와 함께 '자극 행동'에 명확하게 이야기 나누도록 한다. 리시버가 액터의 말이나 행동에 의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자극'으로 인식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NVC로 사과하기

· 1단계: 상대방의 말을 공감으로 듣는다. 당신의 말이나 행동이 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진정으로 받아들인다.
· 2단계: 상대방의 표현을 듣고 나면, 당신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해했을 때 당신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표현한다.
· 3단계: 당신이 해를 끼치는 행동을 했을 때 어떤 욕구를 충족하려고 했는지를 표현한다. 그 행동의 결과를 알게 된 지금이라면 다른 행동을 선택하겠지만, 그 행동을 했을 때 무엇이 당신을 움직이게 했는지를 표현한다.

출처: 리브 라르손, 분노 죄책감 수치심, 98쪽


두 번째 짚어야 할 것은 리시버가 받은 자극에 대해 인식한 것을 표현하고 그 자극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들었을 때 액터에게 떠오른 생각, 느낌, 감정을 알아차리고 리시버에게 표현하는 것이다. 또 다른 것은 액터는 자신의 행동이 어떤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기대했던 결과를 짚어 표현하는 것이다.


사과를 요청하는 경우도 이 세 가지에 대해 명확하게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리시버가 자신을 리시버로 인식하는 경우, 상대가 액터라는 것을 알게 하는 작업 없이 바로 사과 요청 돌직구를 날린다면 그 관계는 불 보듯 뻔하다. 사과가 진짜 사과가 되려면, 사과를 할 사람과 사과를 받을 사람 모두 '상황'에 대해 함께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저 사람이 왜 나에게 사과를 하지?' 또는 '저 사람은 왜 나에게 사과를 하지 않지?'라며 서로를 오해하게 된다.

NVC로 사과하기의 세 요소가 포함되지 않은 사과는 유감스럽게도 '상황을 수습하고 벗어나려는' 시도로 보일 수 있다.
(출처: 리브 라르손, 분노 죄책감 수치심, 97쪽)    



이 세 가지를 내 이야기에 적용해 보자면. A가 어떻게 사과했더라면 좋았을까? '미안해요'라는 말을 먼저 전하기보다 내가 나를 리시버로 인식하는지를 확인했다면 더 좋았을까? 다음에 대해 서로 이야기했더라면 단순한 상황 수습이 아닌 진정한 사과가 될 수 있었을까? 1) A의 말에 대해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 즉 자극을 받았는지, 2) A가 그 언행을 한 것은 어떤 의도(욕구)였는지, 3) A가 액터로 자신을 인식하면서 어떤 느낌, 감정, 생각을 느꼈는지, 4) 그리고 '사과'를 통해 어떤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었는지.


참, 긴 과정이다. 안 그래도 멋쩍으니 짧게 '미안해.'라고 툭 말하면 될 것을 이렇게 까지 자기표현이 필요할까? 구구절절 이야기 하면서 사과해야 할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과정이 없기 때문에 '소통'이 부족하다고, '대화'가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아닐지. 소통에서 중요한 원칙은 효율성이 아니다. 각자가 분한 자기표현의 기회(시간)를 가졌는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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