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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숲 Apr 13. 2024

자기만의 방


 이랑의 음반을 재생한다. 이 가난을 보라며 울부짖는 ‘늑대가 나타났다’가 나오기 시작하니 마음 한구석이 진정이 된다. 그저 하루 쉬는 날을 또 어쩌지 못하며 시간을 보내고 잠드는 것조차 언제 해야 하는지 모른 채 방황하다 고민을 하다 음악을 틀었다. 머릿속에 텍스트가 또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나의 방 창문은 하늘이 정말 시원하게 보인다. 19살에 이사 온 이 집은 내가 처음으로 나의 방을 가졌다는 것에 의미가 컸다. 이사 오던 시기에 혼자 독립해서 살던 큰언니가 마침 회사를 그만두고 영국으로 유학 갈 결심을 했고 언니가 쓰던 책상, 침대 등을 나에게 물려주기로 했었다. 그래서 나의 방은 이사 온 첫날에 텅 비어 있었다. 아무 가구가 없는 공간에서 스탠드 하나와 이불을 깔고 잤는데 기분이 아주 좋았다. 나는 새로운 공간을 좋아한다. 이제 앞으로 나의 집이 될 그 첫날에 잠드는 느낌을. 다섯 식구는 이사를 자주 다녔고 개인 공간을 갖는 건 꿈꾸기 어려웠는데 어느덧 내가 혼자 방에서 잠들고 있지 않은가. 어떤 이사의 순간보다 좋았던 기억이다. 그리고 언니의 가구로 내 방이 채워지고 제법 방 다운 나의 방이 대단해 보였다. 나는 이 방에서 고3을 보냈다. 그리고 지독하게 가위에 눌리기도 했다. 밤에 오디오로 음악을 들으며 누워 있는 시간도 많았다.


  이 방은 큰언니가 유학에서 돌아온 후, 세 자매가 함께 쓰기 위해 침대 두 개를 붙여서 잠자는 방으로만 기능했다가 옷방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침실로 바뀌었다. 침대 두 개를 붙여 넣었던 그때부터 작은언니와 나는 방 하나는 옷 방으로 하나는 침실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방을 혼자 쓰던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는데 작년에 작은언니가 독립을 하였고 나는 다시 방을 혼자 쓰게 되었다.

 

 막내의 시간은 오묘하다. 경제적 여유가 당연히 뒤처질 수밖에 없고 나의 취향이 확립되기 전에 누군가의 취향으로 가득한 공간이 나의 방이 되어 있다. 처음 이사 와서 큰언니가 쓰던 가구들로 채워졌던 것처럼, 작은언니가 샀던 책상, 큰언니 부부가 샀던 침대 프레임 등… 누군가가 필요해서 샀던 것들로 채워져 있다. 이 방에 어떤 가구도 내가 사지 않았고, 내가 고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스럽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온전히 나만의 취향으로 가득한 공간을 자꾸 꿈꾸게 된다. 텅 비어 있는 곳에서 나의 취향을 하나둘씩 채워나간다는 것. 이왕이면 오래 쓸 수 있는 것들로 채우고 싶은 마음으로. 나는 언제든 이 방을 떠날 마음을 지니고 있다. 내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 나처럼 보이는 이 방을 떠나면 이 방은 또 어떻게 변하게 될까.


 침대에 드러누워 이랑의 음반을 재생하고 창밖을 보니 반짝이는 무언가가 하늘을 지나간다.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었고 비행기를 따라 시선을 옮기고 나니 주변에 반짝이는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별이 잘 보이는 날이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이 동네는 별이 아주 잘 보이는 곳이었는데 이곳도 많이 변했다. 예전만큼 별이 잘 보이진 않는다. 별을 보기 위해 침대 맡에 놓여있는 책상 위에 앉았다. 별을 구경하고 구경하다가 방안으로 시선을 옮겼다. 갑자기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언젠가 떠날 이 공간을 미친 듯이 사랑한다는 감정이 솟았다. 독립된 나의 세계를. 이 방안에 나의 시간이 스며들어 있고 나와 관련한 사람들의 시간이 남아있다. 언젠가 떠날 것이고, 마지막에는 흔적조차 남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머무르는 지금 더 많은 시간을 채우자고, 가득 말이다.


 잠들지 않은 자동차들의 시간이 시끄럽다.

창밖을 보면서 모두가 잠이 드는 시간이었으면, 모두가 불을 끄고 잠이 들어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자연히 반짝이는 것들만 빛나고 있으면 좋겠다고, 이랑의 음반이 다 재생되면, 우리 그냥 다 같이 죽어버리자고 말하는 환란의 세대가 끝나면 나도 그만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시끄러우니 창문은 닫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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