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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몽드 Jul 14. 2023

09.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저 동거해요

아련한 눈빛

시작은 불순했다.


5년 간 같이 살던 룸메가 서울 생활을 포기하고 고향에 내려간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곤 룸메가 떠난다는 아쉬움보다 걱정이 앞섰다.


'혼자 살 수 있을까...?'


그렇게 내 곁을 채워줄 존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친구의 지인 가게 앞에 살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며 친구는 사진을 보냈다. 고양이 가방을 급하게 구매해서 한걸음에 달려갔다. 차 경적소리, 사람들의 대화소리, 담배 냄새 등에 노출된 아기고양이는 구석에서 작은 몸을 떨고 있었다. 크림색도 황토색도 아닌 오묘한 빛깔을 뽐내고 있는 작은 아이를 조심스레 들어 가방에 담고 곧바로 24시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으로 가는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작은 아이가 실린 가방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깨달았다.


'나 이제 얘를 지켜야 해'


아이는 1kg도 안 되는 무게에 사타구니에 작은 피부병이 있었다. 한 달 정도 경과를 지켜보는 것이 필요했고 심장사상충 약을 목덜미에 바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생각해 보면 집으로 데려온 그 순간까지도 고양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아이는 현관문에 들어서 가방 지퍼를 열자마자 집안 가장 으슥한 곳으로 숨었다. 한숨 돌리며 나의 염원을 담아 '지구'란 이름을 붙였다. (필자에게는 오랫동안 세계일주라는 꿈이 있다.) 그렇게 지구와 동거가 시작되었다.


지구는 작은 척추를 하늘로 끌어올리며 나를 볼 때마다 경계했다. 하지만 집사의 성격을 빼닮은 걸까. 우린 생각보다 빨리 친해졌고, 각방을 쓰던 사이에서 한 침대를 쓰는 사이까지 발전했다. 아주 깨발랄한 것이 장난감만 보면 짧은 털을 휘날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체감상 체공시간 2초. 육상부에 들어가도 될 정도다.


지구는 간식만 있으면 천재냥이 되기도 한다. 손, 뽀뽀, 점프, 기다려, 돌아, 코(손가락에 코를 갖다 대는 고급 기술) 등 무려 6가지의 개인기를 갖고 있다. 악습도 있는데 그건 온전히 내 탓이다. 지구가 어릴 때 손으로 자주 놀아줘서 놀고 싶으면 손을 물어버린다. 그럴 때마다 송곳니를 보며 '이렇게 뾰족할 필요가 있나...' 원망한다.


병원에서 온갖 예민함 드러내는 중


지구와 함께 산지 3년 차가 되었다. 최근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엘 갔는데, 글쎄 듣지도 보지도 못한 하악질을 했다. 생각보다 검진이 오래 걸려 2-3시간 정도 병원에 머물렀는데, 간수치가 약간 높아서 약을 처방받은 것 빼고는 건강했다. 엄마가 지구 병원비를 보고는 "인간도 그 돈주고 안 하는데~"라고 말해서 다른 말로 돌렸다. (내 새낀데...)


3년 동안 지구와 같이 산 소감과 깨달은 점은 첫 번째, 고양이 키우기 쉽지 않다. 두 번째, 고양이도 외로움을 타는 동물이다. 세 번째, 역시 동물이 최고다. 스스로 예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고민과 받는 상처가 많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내 곁을 지켜주는 지구가 있고, 늦게 집에 가도 두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현관 앞에 나와주는 지구가 있어서 고맙다.


반려동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채로 오직 집에 홀로 남겨질 나를 위해 지구를 데려왔지만, 얕았던 생각을 반성하고 지금은 지구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려한다. 지구야, 누나 잘하고 있어?


볼 때마다 자는 모습에 경탄. 허리 안 아파?

그나저나

주접, 이렇게 떠는 거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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