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르몽드 Jul 16. 2023

10. 이번만 실례할게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친구들아, 여기서 만나자


사람을 좋아한다. 고등학생부 터였던 거 같다. 다행히도 상대방이 경계심을 가질만한 첫인상이 아니라 새 학기가 되면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다가가는 노력도 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웃게 하고 싶었다. 개그우먼을 해야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광대가 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뿌듯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의 사진첩엔 세상에 공개하지 못할 나의 엽사(엽기 사진)가 많다. 결혼식에서 뿌릴 거라고 귀여운 협박을 하는 고마운 친구들. (반어법이다)


사람에게 관심도 많다. 눈썰미가 좋은 편이라 지인들의 변화를 쉽게 포착하고 한국인, 외국인 할 거 없이 여행지에서 한번 본 사람을 잘 기억한다. 기회가 되면 두 번째 마주쳤을 때 "A 장소에 계셨죠? 봤어요!"라며 아는 체를 하기도 한다. 주변을 예민하게 살펴보기 싫은 사람을 볼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동아리를 하며 서로 감정이 뒤틀려버린 친구라던가, 나에게 '지덕체'를 갖췄다며 성희롱을 한 알바 사장이라던가...


여기까지는 '양'의 영역이다. 하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은 음의 영역에서 여러 부작용을 생성하기도 하는데, 그중 하나는 '항상 웃기'다. 지인을 만나면 과거에 진하게 남은 추억, 연애 근황, 요즘 트렌드 등 웃음이 난무하는 대화를 나누곤 한다. 그러나 빠질 수 없는 '고민' 이야기.


사람들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고 그들에게 감정적인 지지를 주고 싶어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애정 섞인 말을 한다. 그러던 중 나의 철학을 가지게 된 일화가 있었다. 그 친구와는 20대의 뜨거운 시기를 함께 보내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일주일에 2번 이상 만날 정도로 에너지를 많이 쏟았는데,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친구의 감정쓰레기통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언제부턴가 우리 둘 사이엔 웃음보다 친구의 고민과 공감해 주려고 애쓰는 나만 남아있었다. 만나서도, 카카오톡 대화창에도 부정적인 기운이 가득했다. 계속되다 보니 친구의 고민인지 내 고민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당시 나 또한 긴 취준 생활로 인해 지쳐있었다. 하지만 힘든 사람에게 '나 힘들어. 들어줘'라고 하는 건 친구가 아니라는 이상한 생각이 있었다. 상대에게 또 하나의 짐을 주는 일. 그래서 나의 부정적인 감정은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 친구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에 한 번 겨우 보는 사이가 되었다.


그때부터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고민이 있으면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거나 맥주 한잔에 날려버리던 나였는데, 생각할 거리가 있으면 혼자 있기를 자처했다. 


'지금 친구들을 만나면 부정적인 기운만 남기고 올 거야'


사람을 그렇게도 좋아하는 나였지만 사람 만나는 횟수를 줄였다. 즐거운 자리에 우울감을 뿌리고 싶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평소와 다른 나를 밖으로 끌어내려했지만 나는 응하지 않았다. 모든 게 해결되고, 사람들을 웃게 할 수 있을 때, 마음의 여유가 생길 때 사람을 만나고자 했다. 물론 사람들은 이러한 이유를 몰랐고 본인에게 소홀해졌다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에 고민이 깊어졌다. 사람을 쉽게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인생이란 하나의 고민을 해결하면 다른 고민이 얼씨구나! 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시간의 연속이다. 하지만 나는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내가 행복하면 사람들을 만나야지', '고민이 없을 때 만나야지'라는 생각으로 고독 안에 갇혀 살았다.


그러다 최근, 빠질 수 없는 모임 하나가 생겼다. 소송, 가족 일 등 무거운 고민이 많았지만 오랜만에 치장을 하고 약속에 나갔다. 그날,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항상 웃지 않아도 되네'

'사람들에게 아주 잠깐 기대도 되겠구나'


항상 사람을 웃기는 내가 아닌, 지금 고민을 말하며 같이 욕도 하고 그러다 인생까지 논하는 자리였다. 중간중간 각자의 주종으로 짠~ 도 하고.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 나인걸 오랜만에 마주한 자리였다. 그들과 공통 고민이 있어서 자리가 가볍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전 글에서 사람은 악인가, 선인가로 열변을 토했지만,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사람을 좋아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젠 사람들을 웃겨주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한다. 타인에게 나의 고민을 해결해 달라고 호소하는 게 아닌 내가 이런 일을 겪고 있고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정도의 대화랄까.


갑자기 내가 변했다며 떠날 사람은 어쩔 수 없다. 


'발랄했던 르몽드 어디 갔어?'

'너도 세상에 찌들었구나'


지금까지 말을 안 한 거예요. 저도 고민이 있습니다. 이 글을 보는 내 지인들에게 부탁한다. 내가 고민 얘기할 때 약간의 공감만 해주라.


"네가 요즘 그런 일을 겪고 있구나"

"다 잘 될 거야"


너 T야?라는 말만 안 나오게...

어색해도 좀만 참아줘. 앞으로 많이 웃겨줄게.

저를 조금만 다독여주세요. 친구님들.


이번만 실례할게.

매거진의 이전글 09.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