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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나 Apr 15. 2024

왜 하필 나예요?

아파야만 하는 게

  기저 질환 없이 어느 날 갑자기 혈액내과 질환으로 진단을 받고 중환자실로 온 환자가 있었다. 푸근하고 선한 인상의 50대 남자 환자. 여러 내과 질환 중에서도 가장 치료도 고되고 완치도 힘든 혈액내과의 환자들은 온다는 소식만으로도 간호사들에게 먹먹함과 때론 공포까지 주곤 했다. 서로 막막함 속에 만났지만 환자분은 처음 도착해서부터 며칠 간의 힘든 중환자실 생활 중에도 얼굴을 찌푸린 적이 없었다. 섬망 섞인 고함소리와 응급 상황에서 의료진들이 내지르는 소리들로 24시간 어수선한 환경에서는 아픈 곳이 없는 사람도 금방 지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상만큼이나 사람 좋게 매사 ‘허허’, 주사를 여러 번 찔러 여러 가지 피검사를 나가야 한다 설명드려도 ‘허허, 필요하신 대로 하세요.’ 하고 되려 지친 간호사들에게도 힘이 되어주고는 했다. 사실 중환자실에서 중환자들, 그들 모두의 사연을 각각 다 이해하고 환자를 만나 보기는 어렵다. 환자의 과거가 치료의 밑바탕이므로 어느 정도 파악하고 환자를 보기는 하지만, 그네들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가에 대해서는 깊이 들여다볼 시간도, 여력도 없다.



  그토록 잘 웃던 환자에게 어느 날 동료 간호사와 함께 퇴근하기 전에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여기서 지내시기 힘드시죠?”

하고 말을 건넸는데 그 웃음 짓고 있던 눈 끝에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이내 결국 쏟아져 내렸다.

  "난 정말 여태까지 나쁜 짓 안 하고 착하게만 살았는데……."

이어질 '왜 이렇게 큰 병을 얻어서 고생해야 하나요'라는 말이 내뱉어지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로 표현이 되지 않았다. 질병이란 게 어느 누구에게 선고되기 전 기다릴 시간을 주고 찾아오며, 악한 자와 선한 자를 구분하여 찾아오는가. 나쁘게 산 자에게도 오지 말아야 하는 것이 병과 그로 인한 고통인 것을. 며칠 동안 같이 중환자실에서 지내면서, 일생을 구김 없이 늘 고운 마음으로 살았을 것이 느껴졌던 이 환자의 안타까운 사연과 그 심정에 뭐라 위로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인과에 맞지 않는 응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모든 사람들의 인생. 나 혹은 내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날 수 있는 이 무서운 일들이 내 옆에서는 매일매일 펼쳐지고 있다. 그들의 모든 애절하고 안타까운 과거 끝에 내가 하는 일들이 끝맺음이 아니라 끊어졌던 끈을 매듭지어 살리는 일이길 바라며 눈물보다는 노련한 손을 뻗쳤다.



환자는 결국 며칠 후 급작스럽게 상태가 악화되어 기관삽관 후 인공호흡기 치료, 투석(CRRT) 등 모든 치료를 끝까지 다 받았음에도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웃음 가득했던 얼굴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를 사랑하는 가족들의 배웅 속에서 감은 눈은 한없이 평온했다.





내게로 오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증상이 가볍지 않다. 병동에서 혈압이나 맥박 등이 불안정해져서 집중 관찰을 위해 오시는 분부터 갑자기 심장이 뛰지 않아 응급으로 오는 경우, 상태가 점차 악화되어 임종이 임박하신 분까지 증상이 중한 환자만 선별되어 오기 때문이다. 3차 대학병원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단순한 아픔이 아닐 텐데, 그중에 더 위급하신 분들만 계시다 보니 안타까운 상황을 많이 볼 수밖에 없다. 


가끔 내가 환자 침대에 누워있는 상상을 하면, 아무것도 없는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나와 비슷한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나일까'하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보인다. 운이 나쁘다는 말로 나 자신을 위로할까? 사소한 요인들을 하나씩 따져가며 분석하면 수긍이 될까? 호전되어 나가더라도 여기서의 아픔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작은 사건이 아니다. 신체적으로도 비가역적 손상을 가져올 수 있지만 마음과 정신에 디뎠다 이후 인생 전체에 공기처럼 퍼지고 스며들기도 한다. 매 순간 날카롭게 서 있거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기만을 바라는 환자를 보면 나를 비롯한 많은 간호사들은 잡히기 어려운 그 감정들을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만지작거린다. 당장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곁에 갈 때마다 다른 이야깃거리를 한 마디씩 건네거나 퇴근할 땐 친구처럼 명랑하게 손을 흔들며, 웃지 않을 것 같아도 시시한 농담이라도 시도해본다.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기억일 수도 있는 이곳을, 이미 왔지만 나아서 갈 수 있는 곳으로 빚는 일은 약을 주고 치료 기계를 적용시키는 것보다 어렵다. 그걸 함께 해내고 회복 과정에 박차를 가하는 환자들을 보의료진들은 누구랄 것 없이 한 마음으로 환자에게 감사를 건넨다.


  "이겨내줘서 고마워요."


가끔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간호사라고 설명하면서 중환자실에 들어오기라도 해 본 적이 있느냐 물으면 질색하면서 말도 안 된다고 대답했던 분들이 있다. 아마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대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일이 있겠냐고 되물으신다면, 중환자실에는 고령이나 오랜 지병으로 오시는 분도 많지만 갓 태어난 아기나 평범한 일상생활 중에 오시는 분도 있기 때문에 '중환자실 경험이 말도 안 된다는 건 누구에게도 장담할 수 없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당연히 걸리지 않으면 좋겠고 걸리지 않아야겠지만, 누가 알 수 있을까? 건강이란 아파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 같겠지만 사실은 당연하지 않아서 가장 감사할 일이다. 나와 조금 맞지 않아도, 다른 부분이 있어도 그저 내 가족과 친구들이 무탈하게 옆에 있어만 주는 것으로도 큰 행복이다. 함께하는 이 소중한 순간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걸 병원을 나서며 매일 새긴다. 또 병원에서 내게 맡겨진 환자들이 선하든 악하든 건강하게 이곳을 나가길, 나의 건강한 손길이 길게 뻗쳐져 환자들에게 좀 더 나은 미래를 선사할 수 있길 염원하고 또 염원한다.         


-201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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