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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짜글쟁이 Nov 23. 2023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제육볶음과 양배추 덮밥, 그리고 우울증

얼마 전 글쓰기 수업 하나를 등록했다. 반년을 넘도록 떠날 마음이 없는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여러 시도 중 하나였다. 매일 아침 일어나 일상을 헤쳐나가는 일이 다소 벅차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두 번의 수업을 들었다. 세 번째 수업부터는 직접 쓴 글을 발표도 하고 합평도 한다고 하기에 나도 글을 써보기로 했다.


 주제는 좋아하는 것 쓰기였다. 며칠을 고민해 봤지만 좋아하는 것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좋아하다’ 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사전을 찾아보니 '좋아하다'는 동사이고, 다음과 같은 뜻이 있었다.

: 1) 어떤 일이나 사물 따위에 대하여 좋은 느낌을 가지다, 2) 특정한 음식 따위를 특별히 잘 먹거나 마시다, 3) 특정한 운동이나 놀이, 행동 따위를 즐겁게 하거나 하고 싶어 하다. 뜻을 알고 나니 내가 좋아하는 것을 떠올릴 수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좋아하는 것’에 이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모든 근심 걱정을 지워줄 행복 이상의 어떤 대상이 ‘좋아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의미를 알고 나니 좋아하는 것이 꽤 많이 떠올랐다. 요리, 야구, 편지쓰기, 강아지, 여행, 조카, 쿠키, 모시 송편 등.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요리하기다.


 요리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요리할 때는 온전히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 또 각기 다른 재료들이 모여 새로운 맛을 낸다는 사실이 매력적이다. 만들어 본 요리는 탄탄면, 카레라이스와 짜장, 고추장 제육과 두부까스. 양배추덮밥, 된장찌개, 갈비찜, 떡볶이 그리고 고기만두와 부추전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요리에 도전하기를 즐긴다. 재료 준비부터 손질, 요리가 완성된 후의 뒷정리까지 모든 과정이 진심으로 행복하다. 제일 자신 있는 요리는 고추장 제육과 양배추 덮밥이다. 돼지 뒷다리살에 고추장과 양파, 다진 마늘, 간장 등을 넣고 버무린 다음, 식용유를 두른 팬에 볶으면 완성이다. 이렇게 완성된 나의 고추장 제육은 입맛 까다로운 둘째 언니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특별한 비법이 있지만, 비밀로 남겨두겠다.


 그다음 필살기는 양배추 덮밥이다. 양배추 덮밥은 아주 간단해, 손님을 대접할 때 만들기 좋은 메뉴다. 양배추를 서걱서걱 썰어서 식초 물에 담가 깨끗이 씻은 다음 물기를 제거한다.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양배추를 수북이 올리고 볶아준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불을 너무 세게 올리지 않는 것이다. 자칫 양배추가 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 양배추를 볶아주면 숨이 죽는다. 숨이 빠진 양배추에 된장을 물에 풀어 부어준 다음 살짝 더 볶다가, 양배추 가운데에 작은 홈을 파주고 그 위에 달걀 하나를 톡-! 까준다. 이제 프라이팬 뚜껑을 덮고 달걀이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예쁜 그릇에 밥을 적당히 담아서 계란이 올라간 양배추 볶음을 밥 위에 올려주면 완성! 참기름과 깨를 살짝 뿌려 비벼 먹으면 천상의 맛이다. 이 양배추 덮밥을 먹어본 사람은 짜장 맛이 도는 이 오묘한 요리를 잊지 못한다.


 누군가 내 요리를 다시 먹고 싶다고 할 때 정말 뿌듯함을 느낀다. 요리는 나에게 행복 그 이상의 따뜻함을 가져다준다. 종종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손수 만든 요리를 먹이는 일 만큼 보람차고 복된 일도 드물다. 우울증과 함께 사는 일은 꽤 괴롭지만, 또 좋아하는 요리가 있어 견딜 만하다. 혹시 우울증도 내 요리가 맛있어 떠나지 못하는 걸까? 그렇다면 당분간은 요리를 줄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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