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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행에 대한 어떤 것(1)

첫째 날, 함평

지난주 휴일, 엄마 고향 가까이에 있는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뵈러 간 김에 근처 여행을 했다. 돌이켜보니 엄마와의 여행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3박 4일 일정이었고, '처음 하루 이틀이야 좋겠지만 나중엔 좀 힘들어지겠군'이라고 걱정했던 나의 예상은 귀신같이 들어맞았다. 출발할 땐 하하호호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내려갔는데, 올라오는 차 안에선 둘 다 별 말을 하지 않게 됐다.  부모님과의 여행이란 다 이런 걸까? 그래도 좋은 풍경도 보고, 합법적으로 맛있는 것도 먹고(중요) 해서 전체적으로 즐거운 여행이었다.


#엄마도 처음이야


이번 여행엔 엄마의 차로 이동했다. 나는 운전면허가 없고, 그래서 여행 내내 엄마가 운전을 해야 했다.(이런 식으로 쓰니 정말 능력 없는 불효자 같군,,,그게 맞지만,,)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충주였나? 여튼 충청도를 지나는데 차 바닥의 무언가가 도로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미세한 오르막길을 지나거나 위아래로 흔들릴 때마다 소리 나는 정도가 심해져서 급히 갓길에 차를 세웠다. 몸을 굽혀 차 아래쪽을 보니 직사각형의 덮개 부분이 차 바닥에서 떨어져 땅에 닿은 상태였다. 엄마나 나나 차알못이라 급히 자동차 보험(?) 회사에 전화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견인차가 왔다.


오늘의 생활 꿀팁! 고속도로에서 내 위치를 알려줘야 할 땐 길가 가드레일에 있는 작은 숫자판을 찾으면 된다.(200m마다 설치되어 있음)


렉카 같은 차를 생각했는데 트럭 같은 큰 견인차가 왔다. 기사님이 우리 차를 견인차 위에 태우고 엄마와 나는 트럭 좌석에 타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견인트럭을 처음 타게 된 것이 신기해서 차에 오르기 전에 엄마에게 "헐! 엄마, 나 이런 차 처음 타 봐!"했더니 엄마는 바로 "나도"라고 말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4일이나 지났는데도 엄마의 저 말이 왜인지 기억에 남는다. 저 대답을 듣고 나서 내가 여전히 '엄마는 뭐든지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도 견인트럭에 처음 타 봤구나, 엄마도 처음인 게 있구나. 당연한 사실이고, 자라면서는 더 당연한 사실이었는데도 저 대답을 들었을 땐 예상하지 못한 답을 들었을 때와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의 엄마는 아직 처음인 것들이 많아서 보고 싶은 것이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은 사람이다. 나는 엄마가 낳은 첫 번째 자식이고, 나로 인해 엄마는 엄마가 됐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이 여러 가지 감정이 든다. 엄마도 나도 이 세상이 처음이다.

 

차 수리는 떨어진 플라스틱 껍데기를 떼어내는 것으로 아주 간단히 해결됐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외삼촌은 "그것은 마치 장갑을 낀 것과 안 낀 것의 차이와 같다"며 "장갑 안 낀다고 죽지 않잖아~"라고 찰떡같이 비유했다.  

수리비는 만원이었다. 앗! 수리비 신발보다 싸다!


#정리란 무엇인가


간단한 수리였지만, 어쨌든 시간이 지체되었기에 함평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져 있었다. 간단하게 밥을 먹기로 하고 함평의 유명지인 육회비빔밥 골목(?)의 목포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걍 비빔밥 맛이었는데, 개인적으로 함께 나온 선짓국 많이 비리지 않아서 무척 맛있었다(엄마도 매우 동의함).


하지만 상추 겉절이는 너무 짜서 하나 먹고 말았다.


첫날은 이모네 집에서 자기로 했다. 이모네 집은 전형적인 시골집으로, 집 옆에 작은 차고 같은 곳이 있고, 마당엔 자갈이 깔려 있다. 개+강아지가 일곱 마리 정도 있는데, 그중 다섯 마리는 아주 성격이 사나워 동네 할머니들을 물었던 죄로 케이지에 갇혀 있고, 나머지 두 마리만 마당에 풀어져 있다. 사실 그 두 마리도 살가운 성격이 아닌데, 살짝 다가갔더니 바로 내 발목을 물었다. 상처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마당 앞쪽엔 소를 기르던 축사가 있는데, 현재는 그냥 창고고 소들은 다른 곳에서 키운다고 한다.

 

뭐 시골집들이야 다들 그렇다지만, 이모네 집은 상당히 너저분한 편이다. 평상복, 작업복, 전자 기계, 공구, 가구, 아기용품, 그릇, 이불, 요, 베개, 종이들, 빨랫감들 등등이 곳곳에 널부러져 있는데 거실의 경우는 물건이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Aㅏ멘

이런 이유로 엄마는 이모네 집을 크게 좋아하진 않지만, 나는 별 생각이 없다.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집이 이모네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익숙한 풍경이다.(엄마는 벌써 잊었는지도 모른다)


인간 자체가 게으르단 이유를 제외하고, 정리를 못하는 이유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수납공간이 모자라거나 또는 물건이 너무 많거나. 이모네 집은 이 두 가지 조건을 아주 완벽하게 갖추고 있기에 막강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난 결과일 뿐이다. +여기에 가난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로, 아까워서 도저히 버릴 용기가 나지 않게 된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전체적인 상황이 아주 나아져서 지금의 나는 어느 정도 정리정돈을 할 수 있게 됐다. 예전 집에 살 땐 누굴 집에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정리할 생각은 없었지만, 창피하다는 생각은 했기 때문이다. 이사 오기 전에 아예 작정하고 몇 주에 걸쳐 많은 물건을 버렸고, 이사하면서 조금의 물건을 잃어버리기도 해서(포장이사 개놈들아) 짐이 아주 적어졌다.


십 년 넘게 쌓인 것들을 정리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추억의 물건은 당연하고 어쩐지 미래에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물건들을 버리기 위해선 큰 결심이 필요했다. 당시엔 좀 괴로웠는데, 지금은 '버리지 말걸' 후회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 잃어버린 것들 빼고.(포장이사 개놈들아!!!!!)


그래서 이젠 무언갈 정리할 때 버리는 것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말은 이렇게 해도, 여전히 도저히 정말로 못 버리겠는 것들도 있지만)


문제는 물건보다 어려운 마음의 미련인데, 이건 참 버리기가 어렵다. 누군가는 기회비용을 생각하라지만, 나는 그다지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라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할 때가 많고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 어영부영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선택 없는 신중함은 아무런 변화도 만들지 못한다. 알아, 안다고. 아는데도 모르겠으니 문제다. 인생은 이사가 아니잖아요.


어쨌든 나와 엄마는 안방에서 여행 첫날을 마무리했다. 그래도 방 안에 물건이 많아서인지(?) 춥진 않았다. 가로등이 듬성듬성 있는 동네여서 불을 끄니 커튼을 치지 않았는데도 깊이 잠들 수 있을 만큼 캄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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