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요약) 다시는 이름이 긴 세미나에 가지 말자
유튜브와 넷플릭스.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동영상 플랫폼이다. 요샌 브이로그 보는 데 재미를 붙여서 ‘이럴 거면 넷플을 해지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튜브를 많이 보지만, 엄마가 집에서 넷플릭스를 아주 잘 이용하고 있기에 해지하진 않고 있다.
재밌는 건, “아니 뭐 이런 거에 돈을 써?!!?!?!?!?”라는 반응이었던 엄마가 어느 순간 시도 때도 없이 넷플릭스의 드라마 시리즈나 영화를 보더니 이젠 “왤케 볼게 없니~”수준에 다다랐다는 점. 팟캐스트 때도 그렇고 나는 이미 익숙하게 사용하던 것들을 몰랐던 엄마가 어느새 나보다 더 잘 누리고 있는 것을 보면 뭐랄까 아주 뿌듯하다.
여하턴, 나 같은 그지도 넷플릭스ㅇㅔ 돈을 내고 있으니(유튜브 레드는 안함,,, 진짜 그지라,,,) 요즘 동년배덜,,, 중 많은 사람이 비슷한 왓차나 티빙 같은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그 중에서도 와따는 넷플릭스일텐데, 강려크한 미제의 매력과 힘에 국내 콘텐츠 사업자나 비슷한 동영상 플랫폼들은똥꼬가 타들어 갈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기술로 고객분석도 해고, 신선한 콘텐츠도 만들어 봤다. 그리고 이젠 힘을 합쳐 통합까지 했다. SKT의 ‘옥수수’와 지상파3사의 ‘푹’을 통합한 OTT 서비스 ‘웨이브(WAVVE)’가 18일부터 서비스를 개시했다. CJ ENM과 JTBC도 티빙 기반의 OTT 서비스를 내놓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관련기사: [한국일보] 웨이브 출범에 CJ ENM-JTBC ‘OTT 동맹’… 방송시장 재편 급물살)
웨이브 출범 당일에 ‘OTT 등장에 따른 국내 콘텐츠 산업 진단 및 정책방안’ 세미나가 열렸다. 이름만큼이나 지루했고, 아주 별로였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별로였냐면, 세미나 개회사였나 여튼 어떤 높은 아조씨가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는데, 세미나가 끝나고 저 말을 다시 보니 딱 150% 정도로 저 말과 정반대인 자리였다는 느낌이었다.
나 같은 허접이 허접하다고 느낄 정도였는데, 새삼 ‘왜?’에 대해 고민해봤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전혀 생산적인 논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성공한 이유가 여러 가지지만, 기본적으로 ‘고객 중심’, ‘기술’, ‘오리지널 콘텐츠’ 요 세가지는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세미나에서도 다들 이제 우리나라 미디어 산업도 저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근데 정작 웨이브 측이 발언 첫판부터 “유튜브의 파워가 너무 세다, 이젠 방송의 공정성과 공공성, 사회적 책임을 지상파 방송에 물을 것이냐, 유튜브에 물어야 할 수도 있다”는 둥 “넷플릭스나 유튜브가 대한민국의 방송 규제에 배제된 상태에서, 즉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둥의 징징거림을 듣는데 뭐지 싶은 거다.
윗 말이 틀리다는 게 아니다. 아주 맞다. 맞는 말인데, 유튜브나 넷플릭스 아니었으면 계속 맘대로 방송 제작하고 유통했을 사람을 입에서 저 징징댐이 나오는 게 웃기다는 것. 법 테두리 안에서 깡패짓한 건 괜찮은 건가? 방송 제작 외주 오지게 돌리고, 단가 후려치면서, 그렇다고 양질이 방송 서비스를 제공했던 것도 아니면서.(참고로 난 유튜브나 넷플릭스 보기 오만년 전부터 티비 안 봤음. 왜냐? 재미없고 구리니까.)
아니 그래, 반대로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우리나라 안 들어왔어도 지금 하는 것처럼 했을런지? 외부의 침략으로 경쟁 구도에 있던 내부 구성원들이 힘을 합치긴 쉽다. 근데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나? 넷플릭스가 적이라면, 그럼 왓챠플레이는 아군이에요?
이런 와중에 ‘토종’이니 ‘미디어 제국주의’ ‘기울어진 운동장’이니 어쩌구 하니까 더 싫은 거다. 다양하고 신선한 콘텐츠를 제작, 발굴해야 하는 본인들의 경쟁력은 스스로 다 깍아내먹고 뭔 이제와서 뭔 쌉소리야?
물론 이딴 식으로 맥락없이 비난하는 내게 “너는 얼마나 잘났냐, 그럼 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아냐?”라고 물으면 당연히 모른다. 그걸 알면 내가 웨이브 대표 했지. 근데 OTT서비스는 기존 전통 방송 서비스의 보완재 역할이라면서요.(아직까지 ‘OTT 서비스가 전통 미디어 산업 퇴화의 영향을 미치는가’를 증명할만한 실증적인 인과관계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까지 내가 느낀 웨이브는 TV의 보완재가 아니라 그냥 TV로 볼 수 있는 걸 모바일로 보게만 만든 느낌이다.
영화와 음악까지 때려넣었어? 이미 유튜브 뮤직이나 다른 음악 스트리밍 하던 사람들이 과연 기존에 자기가 이용하던 서비스를 해지하고 웨이브로 통째로 갈아탈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왜 베이직에 영화 따로 음악 따로 묶이는 것이며 또 왜 베이직이랑만 묶인 것인가?(저작권 때문인가…)
OTT가 기존 방송에 보완재라는 건, 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것이지 시청 방식을 변화시키자는 말이 아니니까, 이는 또 다시 오리지널 콘텐츠의 제작과도 연결될 것이다. 어쨌든 국내 OTT서비스에서 인기가 많은 콘텐츠는 결국 로컬 콘텐츠였기 때문이다.(출처: 국내 주요 OTT서비스의 동영상콘텐츠 제공 및 이용현황 분석,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그런데 이런 의미에서 보면 또 국내 콘텐츠와의 관계가 더 깊은 웨이브가 아예 폭삭 망한다고만 보긴 힘들다. 2023년까지 3000억 투자하겠다고도 했고, 해외 진출도 하겠다고 했고(이런 류의 전략은 항상 나오지만 성공하는 건 보기 힘든데, 왤까?) 넷플릭스가 히ㅡ트를 쳤다 하지만 아직은 밀레니얼 위주고 통신사 결합, 실시간 중계, 국내 콘텐츠를 선호하는 다른 연령층은 웨이브에 잘 안착할 거다.
조국의 미디어산업이 나가야 할 방향까지 조목조목 말하고 싶었지만, 전혀 논리 없는 글이 됐다. 사실 그냥 처음부터 개노잼 세미나, 토종 어쩌구 기울어진 어쩌구 핑계대는 말들을 까는 게 목적이었다. 지가 공부 안 해놓고 공부 잘 하는 애가 전학와서 등수가 밀리는데 전학생이 와서 공부를 못하게 됐다고 핑계대는 모습 같아 보여서 꼴배기 싫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 문제가 뭐고, 어떤 부분에서 나의 상황에 맞게 최적화할까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던 알찬 시간이었다.
한줄요약) 다시는 이름이 긴 세미나에 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