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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운 May 04. 2023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들이 사랑스러운 이유

NINE PORTRAITES, Katherine Ace

나는 여자들을 좋아한다. 특히 중년 여성. 세명 이상이 모이면 불가사의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캐서린 에이스의 <NINE PORTRAITES> 그림은 제목 그대로 아홉 명의 여성 화가들이 모여있다. 한눈에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녀들의 옷에는 물감이 묻어있다. 한바탕 흥나는 작업을 마친 모양이다.


    화가는 잘 모르지만 흥나는 중년 여성들을 본 적이 있다. 한겨울 1월, 오후 두 시 수영장이었다.


    수영 강습 회원 대부분은 내 인생의 절반쯤을 더 살았을 것 같은, 혹은 내 엄마정도로 보이는 중년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은 꼼꼼히 샤워를 하고 핑크 꽃무늬, 파란 물결무늬, 보라 도트 무늬… 취향대로 수영복을 갈아입고 수영장 물속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수영이었지만 내게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알록달록한 그녀들보다는 잘할 거라는.

    얼마 안 가 '근거 없는' 자신감을 헉헉대며 증명하고 말았다. 숨이 턱끝까지 찼고 몇 번이나 물도 먹었다. 그러곤 물밖에서 숨을 고르며 눈으로 그녀들을 찾아보았다. 태평양에서 돌고래를 본 듯 눈동자커졌다. 그녀들은 오리발을 차고 우아하게 접영을 하고 있었다. 일정한 속도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그녀들에게 한눈에 반했다. 그녀들은 강습 중간중간 차례로 내게 "처음인데 잘하네, 금방 하겠어."라며 기운 나는 칭찬도 해주었다.


    강습이 끝나고도 나는 그녀들을 훔쳐봤다. 수영복 물기를 꼭 짜서 가방에 담았고, 드라이를 하고 머리카락을 주웠고, 얼굴 로션을 바르고 수건으로 화장대를 쓱 닦았다. 그녀들이 지나간 자리는 깔끔함만 남았다.


    그녀들은 목소리도 큼지막해서 다같이 닭갈비를 먹으러 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중 누군가는 딸이 와서, 또 다른 누군가는 아들이 와서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아들, 이란 낱말에 "아들 아무 소용없어. 특히 장가가고 나면!"이란 말을 누군가 했다. 나는 남편 생각이 나서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들이 만들어 놓은 웃음바다(탈의실)를 뒤로한 채 문을 닫고 나왔다.


    아마 그녀들이 수영장 전신 거울 앞에 서 있는 모습도 <NINE PORTRAITES>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고 유쾌한 에너지를 잔뜩 뿜는 중년 여성들,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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