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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 Jul 05. 2020

수능이 끝나고 난 후

아무튼 그렇게 나의 끈덕진 엉덩이 파워와 오빠의 전략과 부모님의 서포트와 등등 모든 것이 합쳐진 고등학교 시절이 지나가고, 1998년 11월의 어느 날 수능을 보았다. 그해도 물론 수능날은 예외 없이 엄청 추웠다.


지금도 마지막 과목 감독관이 쓸데없이 말이 많아 집중을 하기 힘들었던 기억, 모든 것을 쏟아부은 시험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며 머리에 바람이 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 시험 본 학교의 교문 앞에서 하루 종일 벌벌 떨며 같이 정신을 모아 응원해주신 (다행히 문에 엿을 붙이시지 까지는 않으셨지만) 엄마를 찾아 만난 기억. 푸르스름하게 날이 검어진 가운데 수능 응시표는 (가지고 오면 할인해주는 데가 많다길래) 손에 꼭 쥔 채로 집에 돌아온 기억이 난다.


이걸로 드디어 끝! 인줄 알았지.


온 가족이 함께 중국음식을 (무려 무슨 요리였던 것 같다) 시켜놓고 EBS의 정답풀이를 한 문제 한 문제 확인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야 그렇다 치고 나머지 가족들은 무슨 재미로 그걸 봤지?


첫 과목이었던 언어영역에 실수가 없었던 것을 확인하고 ‘그래 될 수도 있겠다’ 안도를 하며 나머지 과목을 채점한 후 드디어 눈이 떠질 때까지 잠이란 걸 자보았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예상 성적을 적어내고 했던 것 같긴 하다.


그 이후 고3에게 학교란 모두들 알다시피, 학생이 학교를  안 갈 순 없어서 또 학교 측에서도 학생을 안 오라고 할 수는 없어서 가긴 했지만, 수업이라고는 무슨 화장품 회사에서 나온 선전용 강의를 듣고 립스틱 샘플 같은걸 받아오곤 한다거나 하는 수준이었던 것 같다. 그때 유행을 한다는 이유로 딱히 되게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동네 미장원에서 앞머리에 빨간색 브리찌라는 것도 해보았다. 지금 그 시절 사진은....... 냥 안 보는 편이 마음에 편하다. 고 3 때 몸무게가 지금보다 6킬로 정도가 더 나갔었으니, 오빠가 살짝 붉은 줄을 그은 돼지 같다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난다.


아무튼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논술이니 인터뷰니 하는 (지금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렇게 많이 중요하지 않았던) 과정들을 거치고, 드디어 합격자 발표날.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나 혼자 집에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냥 혼자 스스로 전화 ARS 확인을 했었던 거 같다.


합.격.입.니.다. 보다는 길었던 것도 같지만 비슷하게 기계적이고 간단한 기계의 목소리로 확인을 하고. (그리고 그 이후 세 번 정도를 더 들어보고), 굳이 서울대 대운동장에 가서 이름을 확인하고 사진을 찍고.


고생 끝, 행복 시작! 인줄 알았지.


그 당시 생겼던 기적 몇 가지---

1. 고 3 내내 나를 괴롭혔던 왼쪽 발의 물집(병원을 가도 원인도 없고 온갖 민간요법을 동원해도 고칠 수 없었던, 그래서 내내 나를 쩔뚝거리고 걷게 만들었던)은 진. 짜. 거짓말 안 하고 수능이 끝나고 며칠 지나 싹 사라졌더란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도 스트레스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안다)


2. 대학생이 되면 꼭 그래야 했던 것처럼 술을 배웠다. 99학번부터 슬슬 핸드폰이 생기던 시절이었는데, 입학전 과 예비모임에서 딸내미가 술을 마시고 무려 저녁8시에 귀가하자 부모님이 삼성 애니콜을 사주셨었다......지금 생각하면 저녁 8시에 집에 들어가는게 기적.


3. 갑자기 동네에 나는 모르는데 나를 아는 아줌마들이 많이 생겼다. 왠지 모를 따뜻한 시선들. 아 그러니 생각나는 일화 하나. 우리집 일층에 강아지 목끈을 안 묶고 풀어놓아 매번 여러사람 식겁하게 만드는 집이 있었다. 강아지는 귀여웠지만 사람을 보면 반갑다고 달려드는데다가 발톱을 제대로 깎아주지 않아서 주민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낸 것이 여러번 이었다. 그 집 강아지가 어느날 고3 최고 예민하던 때에 귀가하는 내 다리를 긁어 상처를 내 놓아서 우리 엄마가 항의를 한 일이 있었는데, 그 아줌마가 합격 결과가 나올때쯤 반쯤 빈정거리는 얼굴로 '그래서 어느 학교가 됬니?' 라고 묻길래 '서울대요'라고 쏘아준 일은 아직도 유치하게도 속이 시원하다.


니 잘못은 아니야......


새터라는 것을 가고, 하늘 같은 98학번 선배들을 만나고 (지금 생각하면 스무살 꼬마들), 게임을 배우고, 평생 듣도 보도 못한 민중가요들을 배우고, 마임을 배우래서 배우고, 수강신청을 하고, 대학생이라면 입어야 한다는 카키 바지에 닥터 마틴 신발과 루카스 백팩을 사고 (응답하라!!!).


그렇게 99년 삼월의 어느 날부터 그토록 꿈에 바라던 서울대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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