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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갱 Jun 30. 2020

공부를 한다는 것

공부 방법이나 시험에 임하는 전략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다른 글을 써보겠지만, 그래도 주제가 주제인 만큼 간략히 한 꼭지 써보고 넘어가자면…


앞에서 잠시 말했듯이 중학교에 입학한 초반에 나는 그저 성실히 오랜 시간 열심히 공부를 하면 성적이 오르는 줄 알고, 말 그대로 한 손에 펜을 잡고 잠에 못 이겨 책상에 쓰러질 때까지 새벽 한 시고 두시고 ‘버티며’ 공부를 했었다. 불을 꺼주러 오셨던 부모님이 딸내미가 책상에 시체처럼 쓰러져있는 걸 보시고는 깜짝 놀라게 해 드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오빠 방에서는 불이 훨씬 일찍 꺼지고도 나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나은 성적표가 나오는 미치고 팔짝 뛸 현상이 계속되었더란다.


둘 다 내가 낳았는데 왜 다른거냐......?


내 공부를 대신해줄 수도 없어 애만 끓이시던 부모님이 (그냥 얘가 IQ가 더 낮은가 이런 가정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나보다도 먼저, 두 인간의 공부 방식 비교분석에 나서셨는데, 차이점에는 대략 이런 것들이 있었다.

1.      나의 목표는 항상 100점, 우리 오빠의 목표는 98점

2.      나는 한 과목 공부량이 끝날 때까지 안되는 걸 붙잡고 있다가 그게 되면 다음 과목으로 넘어간 반면, 우리 오빠는 매일 비슷한 시간을 비슷한 시간대에 과목별로 할당해놓고 그 시간이 넘어가면 일단 다음 과목으로 넘어간다

3.      나는 공부를 잘하기 위해 공부를 했고, 우리 오빠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해 공부했다

이 밖에도 자잘한 차이점들이 있었지만 일단 이런 것들이 생각나는데 저 세 가지가 공부와 성적에 미치는 영향은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지대했다.


일단 목표 점수. 이건 학업을 떠나 회사일을 하면서도 많이 느끼는 부분인데, 사람이 완벽을 목표로 하는 경우와 완벽에 ‘가까운’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 그 결과치에는 사실상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반면,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아무리 완벽(시험의 경우 100점)을 목표로 한다 해도, 사람이란 실수를 하게 마련이고, 시험문제 자체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 그 날의 컨디션, 시험 감독관, 옆 친구 등등 셀 수 없는 요인에 의해 결과가 완벽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 결과는 어차피 98점에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완벽 자체가 목표가 될 경우, 그다지 출제 가능성이 많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교과서의 내용이나 강의 내용까지 혹시 이게 나오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공부하고 외우느라 오히려 중요한 부분에 충분한 주의를 기하지 못해 소탐대실이 되는 수가 생긴다. 그리고 전반적인 공부의 효율성이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 마음속 목표를 무엇으로 정하는지에 따라 얼마나 ‘스마트’하게 공부하고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지가 갈리게 된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그러나 불충분하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쪼개 쓰느냐가 관건이다.


둘째 공부의 순서와 시간 배분. 뇌도 결국은 인간 신체의 한 부분인지라 일종의 학습 또는 버릇이 생긴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는데 (적어도 우리 집의 경우에는) 잘 맞아떨어졌다. 예를 들어 매일 같은 시간에 언어영역 공부를 하고 그다음 정해진 시간에 수리영역 공부를 하고 하면, 각자 과목에 해당하는 뇌의 파트들이 아 지금은 내가 일할 때가 되었구나 하고, 큰 저항이나 적응시간이 필요 없이 바로 공부에 투입된다는 생각이다. 또 매일매일 안 풀리는 문제가 풀릴 때까지 붙잡고 있다 보면, 한 걸음 떨어져서 봤을 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과목이나 주제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써서 정작 필요한 만큼의 시간을 보다 중요한 과목에 못 쓰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우리 오빠는 안 되는 문제는 십 분이면 십분 시간을 정해놓고 파보다가 안되면 일단 넘기고 나중에 자투리 시간에 다시 보던가 (아님 말던가)하는 방법을 택했다. 사람의 뇌는 이상해서 그 당시 마구 파도 전혀 모르겠던 것이 조금 지나 다시 보면 술술 풀리기도 하고 말이다. 실제로 나는 수능을 한 달 앞두고부터는 정확히 언어영역 시험시간에는 언어영역 공부를, 수리영역 시험시간에는 수리영역 공부를 했다.


셋째가 좀 흥미로운데, 공부를 하는 것이 결국 공부를 잘하기 위한 것인지 시험을 잘 보고 성적을 잘 받기 위한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둘이 완전히 따로 떨어져 생각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어서 공부를 전혀 못하는데 시험을 잘 보게 될리는 없지만, 얼핏 같은 것으로 보이는 이 두 목표는 사실 꽤나 다른 성질의 것이다. 학기 내내 물어보는 질문에 모두 답을 잘하고 교과서의 내용을 눈 감고도 외우는데, 결국 중요한 시험 때마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omr카드를 밀려 써서, 간이 콩알만 해서 시험을 못 보면 말짱 도루묵이다. (적어도 입시의 목적으로는 말이다) 우리 모두 이런 친구들을 하나쯤은 알고 있지 않은가! 현실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시험을 잘 보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실제로 입시 공부의 목적은 ‘시험을 잘 보는 것’ 이어야 한다. 목표가 시험이 되면 공부 외의 요인들까지도 내가 관리해야 할 목표가 된다. 예를 들어 (대입을 기준으로) 다른 어떤 날도 아닌 수능날 당일의 컨디션이 최고가 되게 하는 것, 고등학교 초반에는 지금 당장의 성적은 포기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적 올리는데 시간이 걸리는 과목들에 먼저 집중하는 것, 단기 암기가 되는 과목들은 마지막까지 미뤄두는 것 듯, 보다 ‘전략적’인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수능 한 달 전부터는 매일 8시간씩 충분히 잠을 자고, 공부보다도 체력관리에 더 집중하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균형 잡힌 영양소를 섭취하고, 시험 전날 시험장소의 각종 상황 (난로의 위치, 의자의 모양, 책상 높이, 화장실까지의 거리) 등등을 매의 눈으로 관찰하고 했던 것은 공부 내용을 하나라도 뇌에 더 넣는 것과는 상관없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한’ 내 나름의 전략과 계획들이었고, 실제 내 뇌에 들어있는 지식의 양만큼 나의 수능시험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이었다.

계단 끝까지 가려면 튼튼한 다리도 중요하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


글이 쓸데없이 생각보다 길어졌지만, 아무튼 요약하자면 내가 오빠한테 배운 것은, 확률을 따져 선택과 집중을 하고 실제 중요한 목표에 집중할 것, 그럼으로써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법이었던 것이다. (써놓고 보니 인생을 살면서도 중요한 덕목인 거 같아 오빠에게 감사해야 하나 싶으나 머...... 굳이......)  다행히도 이런 공부 방식은 대물림이 되어서, 오빠가 가르친 나도, 내가 가르친 사촌동생들도 각자 목표한 대학에 갔다.


그러나 물론, 이게 이야기의 해피엔딩, happily ever after, 공주님과 왕자님이 행복하게 살았대요 였다면 좋겠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입시가 아니라 그 이후의 이야기. 계속 이야기를 진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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