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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Sep 12. 2023

12000원과 20년

아버지 사업을 정리하는 일 중 큰 일은 사무실을 정리하는 것이며

또 한 축의 일은 사업을 정리하는 일이다.


후자는 서류를 준비해서 변호사에게 주면  되지만

(물론 서류 준비하는 과정이 복잡하다)

전자는 내가 직접 하나하나 챙겨야 한다.


비교적 쉬워 보이는 생수 렌털을 동생에게 맡겼는데

동생과 생수 사장님과의 커뮤니케이션 미스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여기저기 전화해 봤지만

도저히 답이 없어

그분께 다시 한번 전화를 했다.


저 혹시 북창동  xx 빌딩 몇 호 사무실 아시나요?

저희 아버지신데 아버지 사무실에서 사장님 스티커를 발견하고 전화드려요

며칠 전에 여동생이 전화드렸다고 하던데 아니라고 하셨다고 


사장은 한참 생각하고는 

아! 시청이라고 해서 제가 아닌 줄 알고 말씀드렸네요

그거 제 기계 맞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쓰려지셔서 정산하고 기계를 회수해가셔야 할 거 같은데

영수증 처리해 주시면 보내드릴게요


두 달에 한번 정도 드셨어요

많이는 안 드셨고

12000원 정도인데 그냥 두세요

저 20년 넘게 거래했어요.


낯선 생수 아저씨였는데

20년 넘게 거래하셨다는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분이 우리 아버지의 소중한 지인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가 사무실을 북창동에서 공덕으로 다시 북창동으로 이동할 때도

함께 하셨던 모양이다.


그 순간 

아버지의 벗을 만난 양

눈물이 차올랐다.

나도 모르게 엉엉 울었다.


생수 사장님은 쾌차하실 거라면서

울지 말라고 위로해 주셨다.

제가 그래도 결제를 해드려야 하는데요

했더니 쓰러지셨는데 내가 그걸 어찌 받냐며 한사코 거부하셨다.


그분께서는 오늘 12000원이 아니라

지친 나에게 120만 원의 호의를 베풀어주셨다.


20년 넘게 한 사람과 거래한 나의 우직한 아버지

그리고 그분과 함께 20년 넘게 한 일을 매진한 그 사장님을 뵈며

가슴 뭉클한 정과 변함없는 한결같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충성스럽지 않은 단골을 잃은 사장님의

세심한 배려에

생각지 못한 따듯한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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