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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지컬스타 Dec 23. 2019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그윈플렌에서 조커로..웃음잔혹사


영화 조커

조커 캐릭터가 영화 <The Man Who Laughs>(1928)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특히나 2019년 영화 조커 (Joker)에서 나오는 캐릭터의 발전과정을 보면서 소설이나 뮤지컬 웃는남자의 희망을 빼앗긴 상황과 그 전개 과정이 매우 비슷하다고 느꼈으며, 요즘 같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세상을 어떻게 견뎌(?) 낼 것인가 다시한번 나를 돌아보게 하였다.


이번에 영화관에서 만난 뮤지컬 웃는남자(The Man Who Laughs)의 공연실황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특히 나무위의천사(Angels in the tree) 같은 넘버를 부르는 두 남녀의 모습과 박강현씨의 훌륭한 비율과 연기는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물론 "고요한 죽음" 넘버같이 매우 우울한(연출은 압권이다) 배경또한 다수 있으며 해피엔딩이라고 볼 순 없지만...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넘버와 배우들에 취해 있는 순간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다. 이게 과연 지옥과도 같은 현실 속에서 정 반대되는 표정을 가진, 그것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어버린 사람의 모습일까? 하고.


간혹 주위에 "이상한"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경우는 대부분 "다른 짓"는 것을 먼저 생각할 수 있지만, "안 하는 짓"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바로 우리 내면에 억제되어 하지 않는 행동들, 사회의 구성원으로써는 해서는 안되는 행동들 바로 그런 행동들을 개의치 않고 하는 사람들 말이다. 오히려 정 반대의 사고를 가진 경우에는 "천재" 또는 "별종"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물로 영화 조커에서 처럼 극적인 반대의 행동, 예를 들면 모두가 웃는 상황에서 혼자 얼굴에서 웃음기를 없애는 그런 사람들이라면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뮤지컬 웃는남자에서도 그윈플렌의 현실과 동떨어진 웃음과 그의 천진함에서 조시아나는 이상한 경외감 같은 것을 느꼈을 꺼라는 생각이 든다.


뮤지컬 웃는남자

우선 뮤지컬 웃는남자의 "웃음"에 대해 알아보자. "세상에! 어찌 이런일이!" 라고 하기에는 전체적으로 너무나 아름답고, 그 분노에서 웃음을 발견하는 역설적인 효과는 조금 무뎠던것 같다. 그윈플렌의 분노는 그대로 분노였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선율과 압도하는 배우들의 연기와 가창에 너무나도 좋은 뮤지컬 한 편을 본것, 그 외의 내 안에서 느껴지는 분노는 적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 것이다. 데아도, 그윈플렌도 너무나 착하게 컸고 세상의 적폐에 대해 꼬집을만큼 머리가 찼다. 그렇게 본다면 정말 대단한 건 우르수스가 아닐까 싶다. 그 환경에서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되는 아이들을 남자 혼자의 힘으로 그만큼 키워냈으니...


영화 조커

하지만, 영화 조커의 웃음은 조금 달랐다. 그의 웃음 뒤에는 언제나 분노와 좌절이 서려 있으며, 영화를 보는 내내 작금의 현실을 뒤돌아 보게 하였다. 심지어 모두가 웃는 가운데 홀로 웃음기를 지우는 아서의 모습을 보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심한 이질감을 느꼈다. 악당의 생성이라는 소재도 그러하지만, 그 개연성을 맞춰감에 있어서, 너무나도 현실적인 연출감각, 연기가 서두에 말한것과 같은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하게 했으며, 이러한 소재의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약간의 두려움이 생겼다. 하지만, 조커의 배경에는 웃는남자의 거대한 스토리가 녹아있음을 부인할 수 없듯이, 그 배경에서 있어서 만큼은 웃는남자의 그것이 훨씬 선배(?)라고 말해도 무리는 없겠다. 하지만 영화 조커의 영상과 대사와 그 음울함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슬픔 대결
뮤지컬 웃는남자의 음악 vs 영화 조커의 음악


영화 조커에는 모던타임즈의 노래 'smile', 'Slap That Bass'같은 곡,또 프랭크 시나트라의 'Send in the Clowns(어릿광대를 불러주오), 프랭크 시나트라의 That's Life(그것이 인생) 등의 음악이 영화에 어떤 의미와 결부되어 쓰였지만, 작품 전체를 감싸는 현악기의 굵고 묵직하고 암울한 느낌은힐더 구드나도티르(Hildur Guonadottir) 음악이 크게 좌우했다고 하겠다. 그녀는 첼리스트이기도 해서 아마도 첼로의 선율을 많이 포함시킨것 같다. "슬픔을 표현하기에 이보다도 좋은 악기가 있을까?" 영화 내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반면에 뮤지컬 웃는남자는 액터 뮤지션의 바이올린 선율과 연기가 극을 이끌어간다. 바이올린은 매우 재치가 있다. 어떤 때는 손님들을 이끄는 유쾌한 장면에도 어울리고, 어떤 때는 심해의 깊은 어둠에 빠지는 슬픔과도 너무 잘 어울렸다. 두 작품의 현악기의 향연이 많은 사람들께 오랜동안 기억될 것만 같다.




요즘은 선택하는 삶보다 선택되어지는 삶이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설마 그동안의 내 웃음도 웃음지은 것이 아니라, 웃음지어진 것인 아닌가? 많은 것을 돌이켜 보게 되는 하루다.

못 다한 이야기는 방송에서 만나요~

http://www.podbbang.com/ch/13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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