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아시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를 통해 본 사랑의 의미
'소수자 그리고 성(性)'이라는 주제로「오아시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2003)라는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다른 숱한 영화들처럼 두 영화 모두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라는 점에선 평범하지만, 주인공 외에 주변 인물들이 주인공 두 사람의 사랑을 평범한 사랑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영화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오아시스」에서 공주는 중증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장애인이고, 종두는 기술도 경제적 능력도 없는 갓 출소한 전과자이다. 공주는 공주가 없는 장애인 임대아파트에 아내와 둘이 살고 있는 친오빠와 떨어져 옆 집 이웃의 도움을 받으며 지낸다. 옆 집 이웃들은 공주의 친오빠로부터 돈도 받지만 가끔 공주의 집에 들어가 황당한 일을 벌이기도 한다. 감옥에서 갓 출소한 종두는 마땅한 직업 없이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며 온 가족의 미움을 산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에서 조제는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으로 할머니와 단 둘이 같이 살면서 할머니의 강력한 보호 아래 사회와 다소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다. 츠네오는 평범한 대학생으로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다. 우연히 조제를 만나 만남을 이어간다.
(스포일러 주의!)
공주와 종두의 첫 만남은 비록 종두의 불순한 의도로 시작되었지만 공주는 종두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되고 종두는 쉽게 알아듣기 힘든 공주의 말을 이해해가면서 만남을 이어가고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도 공주를 데려가는 등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공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하지만 종두의 가족은 둘의 만남을 사랑으로 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영화 후반부에서 공주와 종두의 성관계 장면을 보게 된 공주의 가족 역시 둘의 관계를 부적절하다고 단숨에 결론지어버린다.
둘의 사랑을 여느 두 사람의 사랑과 다르게 보는 기준은 무엇인가. 영화 속에서 공주와 종두가 속한 사회는 뇌성마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성관계를 강간으로 보았다. 뇌성마비 장애인의 성욕은 물론 뇌성마비 장애인에게 가지는 성욕 역시 비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했다. 그 사회의 정치인, 법률가 아니면 의사와 같은 권력자들 중 그 누구도 그들의 사랑을 공식적으로 비판하거나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그 사회의 규범은 사회에 속해 있는 다수의 배타적 사고를 합리화했다.
경찰서에 간 공주와 종두는 항변할 기회도 제대로 얻지 못했다. 그 둘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에서부터 낯선 존재인 경찰들까지 공주와 종두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보려고 하지 않았고, 사회의 규범이라는 영역 밖에 일들은 무조건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 되어 버렸다. 특히나 이미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 종두에게 대화보단 비난의 화살이 향하는 게 더욱 마땅한 일이 되었고, 공주의 친오빠는 자신의 여동생이 강간을 당했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합의금을 받아내려고 한다.
조제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존재인 할머니지만 조제에게 장애인답게 살 것을 강요하였다. 할머니에게 장애인답다는 것은 장애인은 비장애인과는 사랑할 수 없고 많은 사람들에 눈에 띄는 곳에 가지 않는 것을 의미했고 조제는 할머니의 뜻을 적극적으로 거스르려고 하지 않는다. 반면에 츠네오는 달랐다. 츠네오에게 조제는 호감의 대상이었고 그녀가 가진 장애는 조제의 여러 모습 중 하나였을 뿐이다. 담백한 이별 뒤에 오열하는 츠네오의 모습은 오랜 여운을 남겼다. 특히 이별 뒤 혼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누비고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 조제를 통해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건 장애를 가진 어떤 이의 사랑이 아니라 그저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이별하며 성장하는 청춘의 사랑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오아시스」가 장애인을 영화의 소재로 다루면서 외국 영화나 최근에 개봉된 영화들에 비해 장애 문제를 거칠게 다루고 강간 행위를 다소 미화한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개봉 당시 국내 영화계에서 자주 다뤄지지 않았던 장애인이라는 캐릭터를 스크린을 통해 전면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장애인에 대한 기존의 담론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게 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할리우드 영화가 대부분의 주인공을 백인으로 묘사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미디어에서 장애인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 또한 차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장애인을 미디어에서 재현할 때, 장애인을 장애인이 가진 어떠한 특성을 부각하기 위한 소재로서 전형화된 모습으로 다룰 것이 아니라 츠네오가 조제를 있는 그대로 보았던 것처럼 편견 없는 시선으로 재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