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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Oct 27. 2019

축사

축사 관리인 부부

국민학교 사오 학년쯤이었을까? 가끔 새벽에 아버지와 함께 달렸다. 학교 운동장을 두어 바퀴 돈 후에 축사에 들렀다. 축사에는 젖소 몇 마리를 포함해 여러 종류의 가축들이 있었다. 칠면조, 거위, 토끼, 돼지, 황소, 염소, 닭 등등. 그중 나는 거위가 무서웠다. 거위는 사람 인기척이 나면 어김없이 우리 철조망 쪽으로 달려와 커다란 소리로 꽥꽥거렸다. 어쩌다 철조망 근처로 너무 다가갔다가는 커다란 부리에 쪼이기도 했다. 


아직 동트기 전부터 축사 관리인 숙소는 부산했다. 우리가 운동을 끝내고 도착할 시간쯤이면 이미 가마솥에서 갖 짜낸 우유가 끓고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관리인 부부가 건네주는 따뜻한(실은 좀 뜨거웠다) 우유에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 뒤 호호 불어가며 마셨다. 우리가 돌아갈 때 관리인 부인은 커다란 대두병에 따끈한 우유를 가득 담아 주었다. 집에 도착할 때는 병 모가지 언저리에 한 치 가량 두터운 버터층이 생겨 있었다. 간혹 집에서 기르던 진돗개 '마리'가 우리와 함께 달리곤 했다. 관리인 부부에게 아이가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들은 늘 부지런했고 아버지에게 잘했다. 암퇘지가 분만을 하는 날이면 아버지는 관리인 부부와 함께 새끼를 받았다. 어느 날인가는 해질 녘에 운동장 가에서 암소가 송아지를 낳는 장면을 본 적도 있다. 어미소는 선 채로 새끼를 낳았다. 관리인이 어미소 곁에서 안절부절못하면서 지켜보았다. 


어느 틈엔가 대학교는 교외에 실험목장을 마련하고 가축들을 옮겼다. 축사가 헐리고 여학생 기숙사가 들어섰다. 관리인 부부는 실험목장으로 따라 들어갔고 더 이상 뜨거운 우유를 맛보지 못했다. 부부는 이제 적어도 일흔을 넘겼을 것이다. 혹은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우리를 따라나서던 진돗개 '마리'는 어느 날 새벽 우리를 따라나서다가 택시에 치여 죽었다. 그 후로 어머니는 한동안 개를 키우지 않았다. 부부는 어쩌다가 대학교 축사 관리인이 되어 축사 곁의 관리사에서 살게 되었을까? 궁금한 것이 자꾸 생기는데 미처 아버지에게 물어보지 못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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