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것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은 힘들다.
몇 년에 한 번씩 인생이 안정기에 접어들 쯤이면 슬금슬금 삐져나오는 변화를 갈망하는 욕망을 느낀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누리고 있는데도 그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지고 평범한 일상이 더 이상 나에게 평범이 아니라 지루함으로 다가온다. 가만히 있어도 후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불안하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나를 자극시키고 영감을 주는 새로운 목표를 잡고 그 목표에 집중해서 달리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도전병이라고 부르겠다. 무언가를 한번 성취해 본 사람들이 느끼는 그 희열, 그 희열 직전에 오는 절망감, 그렇지만 다시 일어나는 과정에서 전보다 더 단단해져 가는 걸 느끼는 과정. 그래서 또다시 변화를 찾고 도전하는 것, 이 과정의 반복이다. 이 병은 약도 없다.
변화라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떤 변화는 오히려 변화하기 전의 상황이 더 좋았으며 나의 선택에 대해 후회를 하게 되는 적도 있고 하지만 또 어떤 변화는 나를 새로운 길, 더 다양한 삶으로 이끌어준다. 내가 택한 이번 변화는 결국에는 좋은 변화였다.
2016년 감독관으로 토론토에서 캐나다의 금융기관들을 감사하던 그때. 회사에서 탑퍼포머로 인정도 받고 연봉도 드디어 six figure을 찍었고 5시면 칼퇴근하고 취미활동을 하면서 일과 삶의 발란스가 잘 맞던 그때. 바로 그때 내 안에서 또 도전병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었다.
일도 더 이상 재미가 없어졌고,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 떨고 레스토랑 가는 것도 의미 없게 느껴졌으며, 내가 좋아하던 쇼핑도 재미가 없었고, 열정적으로 했던 오케스트라와 챔버뮤직 활동도 내가 너무 신선놀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이 한번 들기 시작하면 정말 걷잡을 수가 없다. 주변 환경을 탓하게 되고 나에게 기회를 준 토론토라는 도시가 “여기서 그냥 나랑 살자” 하면서 나의 발목을 잡는 거 같았다. 그리고 미친 듯이 발버둥을 치게 된다.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여기까지 온 것도 잘 살고 있는 거라고 나 자신을 달래 봤지만 자꾸만 나는 불편했다. 더 새로운 것을 보고 싶었고 경험하고 싶었다.
그 당시 아무리 유엔이라는 기관에 어플라이를 해도 깜깜무소식,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해봐도 답이 안 나왔다. 그러다 우연히 기회를 찾았다. 회계사들을 개발도상국에 위치한 비영리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을 말이다. 바로 그 단체에 연락해 2016년 12월 말에 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Cambodian Living Arts라는 기관으로 한 달간 ’Finance Consultant’라는 이름으로 봉사를 하러 갔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오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내가 찾아서 갖고 와야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가본 나라에서 그 나라 사람들이랑 일하고 부딪히고 그 나라 문화를 배워가면서 나는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캄보디아에 대해서는 앙코르 와트 밖에 몰랐던 나는 왜 지금 캄보디아 평균나이가 30살인지, 그 뒷 배경에는 크메르 루주 사태라는 끔찍한 일이 있다는 걸 알게됬다. 가끔 그때 박물관에서 보았던 어린아이들의 해골들이 생각나면 지금도 마음이 무겁다.
그리고 다시 토론토로 돌아오면 무엇이든 변화를 꾀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길은 이미 석사학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다시 학생이 되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나에게는 불편한것이 편했고 편한것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MBA준비를 시작했다.
최근에 김형석 교수님께서 쓰신 ’백 년을 살아보니‘ 책을 보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나에게 주어진 재능과 가능성을 유감없이 달성한 사람은 행복하며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주어진 유능성과 가능성을 다 발휘하지 못한 사람은 성공했다고 인정할 수가 없다. 60의 유능성을 타고난 사람이 65나 70의 결실을 거두었다면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90의 가능성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70의 결과에 머물렀다면 실패한 사람이다. 밖에서 볼 때는 같은 70이지만 그 자신의 삶의 가치를 따진다면 성공과 실패는 달라지는 법이다. 그래서 정성 들여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실패가 없으나 게으른 사람에게는 성공이 없는 법이다. “
이것이야 말로 성공에 대한 정의가 아닌가 싶다.자신의 유능성과 결실의 숫자를 아는 것은 오직 자신 밖에 없기에 자신에게 솔직하고 때론 냉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면에서 정성 들여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난 2023년 지금은 그토록 원하던 유엔에 들어와서 신임도 받고 살기 좋은 스위스에서 유럽생활을 온전히 즐기고 있다. 하지만 언제 또 돋질지 모르는 도전병, 그리고 그것을 택했을 때 어떤 변화가 올지 사실 설레면서 두렵기도 하다. 가끔씩은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사람들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