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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issa Aug 01. 2023

스위스 알프스에 울려 퍼지는 클래식 음악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 (Verbier Festival) 30주년 갈라

여행의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나의 여행은 주로 직접 보고 싶었던 뮤지션의 연주회를 보러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바이올린니스트 김봄소리나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피아노 공연일정을 확인해 만약 파리에서 공연이 있으면 연주 보는 김에 그 동네를 구경하는 걸로 여행 일정을 짠다.


그런데 이런 유명한 탑 아티스트들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심지어 그분들이 같이 챔버뮤직을 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종일 공연을 볼수도 있다. 유명 뮤지션들을 길 가다가도 볼수있고 혹은 레스토랑에서 마주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 바로 클래식컬 뮤직 페스티벌이다. 나 같은 아마추어 뮤지션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기쁜 휴가및 여행이 있을까 싶다.


세계 3대 클래식컬 뮤직 페스티벌이라고 하면 흔히 이 세 개를 들 수 있다.


1. 영국 런던 BBC Proms - 아직 못 감

2. 오스트리아 Salzburg Festival - 2013년에 다녀옴

3. 스위스 Lucern Festival - 아직 못 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0년 전인 2013년에 갔다 왔다. 모차르트의 마을, 잘츠부르크에서 수백 번도 넘게 본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온 장소를 실제로 봤을 때의 감동이란 실제로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거기서 Zubin Mehta가 지휘한 Verdi의 ’Falstaff’ 오페라를 Haus Fur Mozart (모차르트하우스)에서 본 기억은 아직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오페라도 훌륭했지만 우아한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고 오신 멋진 노부부들도 같이 생각이 난다. 작곡가와 아티스트에게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는 건 기본, 이 순간을 아름답고 멋지게 즐기기 위해 한껏 멋을 내고 나온 분들 말이다.


왼쪽은 2013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발 티켓, 오른쪽은 콘서트에 오신 멋지게 차려입으신 관객


세계 3대 클래식컬 뮤직 페스티벌은 아니지만 나의 마음속 넘버원은 단연코 베르비에 페스티벌 (Verbier Festival)이다. 알프스 산맥으로 둘러쌓여진 마을에서의 클래식 음악이라니 생각만 해도 설렜다. 스위스에 오기로 결정됐을 때 가장 기대됐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처음 공연을 갔던 건 코비드가 한창인 2021년이며 그리고 2023년 올해가 두 번째 해이다.


30주년을 맞은 이번 연도 베르비에 페스티벌은 더욱더 특별했다. 몇 년 전에 공연을 본 이후 매년 초에 집으로 프로그램 브로셔가 배달 온다. 이번 30주년 페스티벌은 지금 클래식계를 주름잡고 있는 난다 긴다 하는 뮤지션들이 총출동! 정말 라인업이 어마어마했다. 카푸송 형제부터, 유자왕, 조성진, 주빈메타 (이분은 87세이신데도 활동하시는 게 대단하시다), 다닐 트리로노브,  미샤 마에스키, 재닌 얀셴, 죠슈아 벨,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등등 아주 경력이 많으신 분들부터 젊은 아티스트까지 다양했다.


브로셔와 달력을 양옆에 놓고 형광펜으로 하이라이트를 하고 동그라미, 엑스를 해가면서 우선 내가 가고 싶은 공연을 정했다. 그리고 회사 스케줄을 확인하고, 호텔 가격과 예약 가능한지를 확인하고 나서 이번 해에 갈 공연을 정했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산속에 텐트라도 지어놓고 페스티벌 내내 있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타이트한 예산과 휴가일수를 고려해 이번 해에는 딱 두 공연만 표를 예매했다.


1. 30주년 갈라콘서트

2. 조성진의 피아노 콘서트


갈라 티켓은 스위스 고물가를 고려해 엄청 비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괜찮았다. 200프랑 아님 100프랑 딱 두 좌석, 이 가격에 슈퍼스타들을 다 볼 수 있다니 그걸 생각하면 스위스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콘서트가 아닐까 싶었다. 티켓팅 시작하자마자 구매했기 망정이지 조금만 어물쩡했어도 못 구했을 뻔했다. 표를 살 때는 아직 갈라 프로그램이 나오기 전이라서 어떤 음악을 어떤 식으로 이 톱클래스 연주자들이 같이 연주할까 너무나 궁금했는데 역시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이상이었다. 바흐부터 크리스 하젤이라는 현대작곡가까지 다양한 레파투아였다.  



공연날,

고도 1500미터에 위치한 베르비에는 내가 도착했을 때 벌써 기온이 10도로 쌀쌀했고 비까지 왔다. 원래 갈라 때 입으려고 가운(gown)까지는 아니지만 포멀한 드레스하나 준비했는데 아쉽게도 그건 추운 날씨로 옷장에 고이 모셔두고 나왔다. 대신 스카프부터 재킷까지 따뜻한 옷을 잔뜩 챙겨 왔다. 갈라가 펼쳐질 Salle des combins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입장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가 왔다 안 왔다 해서 날씨는 조금 어두웠지만 사람들의 들뜬 모습과 기대감에 가득 찬 표정들이 공연장 안팎을 가득 매웠다.

공연장 밖의 풍경 - 날씨는 어둡지만 사람들 얼굴은 밝다.

갈라는 총 세파트로 꾸며졌다.


첫 파트는 Serguei Rachmaninoff (라흐마니노프)의 10 Preludes op. 23을 10명의 각각 다른 피아니스트가 치는 것으로 무대를 열었다. 두대의 피아노를 무대에 셋업 해놓고 한 연주자가 끝나면 바로 그다음 연주자가 다른 피아노에서 치기 시작했다. 원래 조성진이 8번째 프렐루드를 연주하기로 되어있었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하면서 Lucas Debargue (프렌치 피아니스트)가 대신 연주했다. 10명의 각기 다른 연주를 듣고 난 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연주는 첫 스타트를 끊은 Alexandre Kantorow (프렌치 피아니스트, 2019년 차이코프스키 콩쿨 우승자)와 끝에서 두 번째,  No. 9  Presto를 연주한 역시 명불허전 Daniil Trifonov (러시아 피아니스트,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쿨 우승자)이였다. 피날레, 마지막 No. 10은 Yuja Wang이 장식했다. 이것은 여담이지만 유자왕이 연주할 때 왼쪽 손목에 번쩍거리는 롤렉스 시계가 정말 눈에 띄었다. 그 무거운걸 차고 아무렇지않게 연주하다니 역시 톱클래스다. 참고로 롤렉스는 30주년 베르비에 페스티벌 메인 파트너이다.

왼쪽은 갈라 프로그램, 오른쪽은 갈라에 참여했던 세계적인 연주자들

두 번째 파트는 시트코베츠스키가 편곡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Variations Goldberg, transcription D. Sitkovetsky)을 현악기와 피아노, 정말 다양한 챔버 조합으로 음악이 흘렀다. 내가 갈라 콘서트를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파트였다. 그 많고 많은 클래식음악 중 내가 단 한곡만 평생 들을 수 있다면 단연코 글렌 굴드가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일 것이다. 하나의 주제가 여러 개로 표현된 곡임에도 질서 있게 나에게 다가오고 무엇인가 내면을 정화시켜 주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첫 스타트는 피아노로 시작했고 변주곡 중 몇 번째 파트인지 는 기억이 안 나지만 Capucon 형제가 둘이 연주한 부분이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입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연주를 조지아 (나라) 출신 9살짜리 피아니스트 신동 Tsotne Zedginidze가 연주했는데 완벽한 엔딩이었다. The cherry on top로 표현하기엔 부족하고 더블 아님 트리플체리 온 탑이라고 해야 할까 싶다.


세 번째 파트는 Verbier Festival Chamber Orchestra가 함께한  Rossini의 Duo des chats, Camille Saint-Saens의  Carnaval des animaux Valaisans, Chris Hazell 이 편곡한 Medley de 5 chansons populaires, Johann Strauss II의. Polka hongroise op. 332, 마지막으로 Leonard Berstein의 Overture de Candide으로 꾸며졌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고양이 울음소리만으로 부르는 로시니의 고양이 이중창은 너무나 신선했다. 베르비에가 위치한 스위스 발레지방의 내용으로 커스토마이즈 해서 꾸민 생상의 카니발도 완벽했다.


두 번의 인터미션이 있었는데 잠시 자리에서 나가 기지개도 켜고, 와인도 한잔 하고, 산공기도 마시고 돌아오니 머리도 정화되고 다시 집중하고 감상할 수 있었다.

왼쪽은 인터미션에 서둘러 나가서 산 로제, 오른쪽은 공연장 밖에 직곡가 이름을 딴 야외 까페들, 그 뒤로 산이 보인다.

4시간짜리의 30주년 갈라 콘서트는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분위기와 연주, 음악에 취해 정말 뭐에 홀린 듯이 빠져들었고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도 다른 세상에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이 정도로 즐거움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큰 이유는 뮤지션들의 열정적인 에너지와 그들이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에 관객들도 더 빠져든 게 아닌가 싶다. 클래식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수많은 공연을 보았지만 이번 베르비에 30주년 갈라콘서트는 오랫동안 기억될 거 같다. 십 년 후 40주년 갈라 콘서트 때는 어떤 새로운 뮤지션들이 나타나서 이끌지 또 어떤 조합으로 어떤 음악을 선사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왼쪽은 생상의 카니발 협주곡이 끝난 후 오른쪽은 마지막 곡 연주가 끝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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