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 - 마스터 클래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는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와서 연주하는 것뿐만 아니라 매년 Verbier Academy라고 세계 각지에서 영뮤지션들을 선발해서 코칭과 네트워킹, 그리고 공연할기회들을 준다. 여기 뽑힌 영뮤지션들은 나이만 어릴 뿐이지 이미 경력이 화려한 사람들이 많다.
페스티벌동안에 Verbier Academy에 뽑힌 학생들은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한다. 말 그대로 마스터, 음악거장들이 청중들 앞에서 직접 코칭을 하는데 일반 관객도 선착순으로 가서 무료로 참관할 수 있다. 마스터 클래스를 들어가면 마치 내가 다시 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각 나라 학생들의 스타일 그리고 선생님의 티칭방식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새로운 젊은 아티스트들을 발견하는 기쁨도 있으며 또한 그들의 수업을 참관하면서 같이 배우는 즐거움도 크다.
내가 느끼기에 미국에서 온 학생들은 연주 테크닉이 정말 대단한다. 확실히 무대 경험도 많고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온 거라서 그런지 이미 프로페셔널한 아티스트 같은 인상을 받는다. 유럽에서 온 학생들은 아무래도 클래식 뮤직의 본고장에서 자라고 교육받아서 그런지 작곡가와 곡에 대한 이해가 자연스럽게 높은 것 같았다. 한국에서도 학생들이 많이 온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마스터 클래스에서 마주치지 못했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 초대받은 학생들은 이미 테크닉은 훌륭하기에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좀 더 높은 차원의 것을 가르치는 듯했다. 어떤 식으로 음악을 대해야 하는지, 관중들에게 감정을 어떻게 전할 것인지, 어떤 마인드셋으로 연주를 해야 되는지, 보다 철학적인 얘기를 학생들과 나눈다. 이렇게 어떤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의 얘기를 옆에서 보고 들으면 실로 겸손해진다. 그들의 가르침은 굳이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실 삶의 전반에 다 적용되는 조언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가 청강한 마스터 클래스도 역시나 그랬다.
올해는 아침 11시 콘서트 전에 한번, 그리고 오후에 한번, 총 두 번 마스터 클래스에 들어갔다.
특히 오후에 참관한 Gabor Takacs-Nagy (가보르 타카치 나지 -67세의 헝가리안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 베르비에 페스티벌 뮤직 디렉터)가 진행한 Piano Quartet (피아노 4중주) 마스터 클래스 때 그가 학생들에게 나눴던 이야기들이 아직도 몇 가지가 기억이 난다. 수업 옆자리에 앉으신 70대쯤 보이시는 분이 노트와 펜을 들고 수업 내용을 적는 것을 보고 자극받아 이번에는 나도 수업 내용을 하나씩 다 받아 적었는데 나중에 보니 곱씹어볼 만한 명언들이 많았다.
가보르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 기억에 남은 몇 가지를 쓰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Don’t be materalistic. Be honest and real.” - 요즘 학생들은 실수 안 하고 너무나 테크니컬리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에 너무 집중되어 있어. 사실 대부분의 청중들은 연주자가 음정을 잘못짚던지 활방향이 다르던지 하는 거에는 관심이 없고 알지도 못해. 청중들이 원하는 것은 음악을 통해 연주자의 감정을 같이 느끼는 거고 그러니깐 자가자신에게 솔직해야 하고 진정성 있게 연주해야 돼.
그리고는 “Think about sharing the music with others. You don’t need to prove yourself nor show your ego by playing the music. And, listen to others” - 음악을 하는 목적은 다른 사람들과 음악을 함께 즐기고 나누기 위해서지 네가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네가 더 잘났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게 아니야. 그리니 다른 연주자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같이 음악을 만들어야 돼.
그러니 “Take more risks, no need to be perfect. We were told to be dangerous because that’s how you bring out your creativity.” 좀 더 리스크 테이킹을 하면서 대담하게 연주할 필요가 있어. ‘라떼는’ 오히려 좀 더 위험하게? 연주하라고 배웠어. 그래야지 더 창의적일 수 있었다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
이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음악 수업을 가장한 인생 수업을 듣고 있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분야에서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 사람의 진정성, 진심을 느꼈을 때다. 그리고 특히 한 분야에서 탑을 찍은 사람들이 자신의 에고(ego)를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겸손하고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경청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일 때 더욱 더 그사람이 커보인다.
라이언 홀리데이가 쓴 ‘에고라는 적’이라는 책에서는 에고는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믿는 건강하지 못한 믿음이라고 정의한다. 에고를 뺐을때 남은 것이 진짜 자신의 모습이고 능력이며, 에고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겸손과 노력으로 얻어진 자신감뿐이라고 했다.
여기에 온 학생들은 분명히 다들 사회적으로 이미 어느 정도 성공궤도에 오른 사람들일 것이며 자신들의 실력은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르보 선생님께서는 에고라는 덫을 벗어나 더 큰 뮤지션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시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자신이 오랜 시간 존경받는 뮤지션으로 활동하면서 실력만큼이나 더 중요하게 깨달은 것들을 말이다.
사회적으로 소위 성공하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 그중 특히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많이 받는 분들이 말하는 조언들은 하나같이 “겸손 그리고 끝없는 노력과 도전”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듯하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학생들의 열정과 에너지, 그리고 더 좋은 아티스트로서 자랄 수 있도록 삶의 지혜를 나누신 가르보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나의 삶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겸손하지 못한 데에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또한 거장의 삶과 음악에 대한 철학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었던 그런 마스터 클래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