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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issa Aug 07. 2023

유럽의 바캉스 - 연차 6주면 충분할까요?

7월과 8월은 잠시 비우고 가는 시간  


하루에 수십 통씩 오던 이메일이 갑자기 눈에 띌 만큼 줄으면 바로 바캉스 시즌이 다가왔다는 신호다.


“저는 xx까지 휴가니깐 연락이 안 될 겁니다. 갔다 와서 답장하겠습니다”라는 자동답장 이메일이 점점 늘고 오피스도 고요해진다. 가뜩이나 일주일에 삼일 가능한 재택근무로 회사 동료들 얼굴 보려면 따로 약속을 잡고 만나야 되는데 7월 8월에는 회사를 가도 하루에 한두 사람 얼굴을 볼까 말 까다.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되는 6월 말부터 회사의 사람들이 한두 명씩 안 보이기 시작하고 7월과 8월은 죽은 듯이 조용하며 8월 말부터 다시 회사는 원래 모습을 서서히 되찾는다. 그리고 다시 12월 크리스마스 전후를 시작해 하나둘씩 사라진다. 그리고 또 3-4월 부활절 앞뒤로 회사가 조용하다.  


그렇다. 7월, 8월, 부활절 기간,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냥 상태유지만 할 뿐이다. 그래도 돌아간다.  


이런 휴가가 가능한 이유는 바로 충분한 연차휴가 (Annual Leave)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정공휴일까지 포함하면 거의 2개월은 잠시 일에서 멀어질 수 있다.


내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유엔도 연차만 6주(30일)이다. 캐나다에서 일할 때는 휴가가 3주였고 (법정 휴가는 최소 2주) 그때는 일주일만 더 많아도 좋겠다 했는데 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나 보다. 지금은  6주인데도 불구하고 매번 휴가가 모잘란다. 6주가 긴 것 같지만 사실 유엔 직원들은 다들 모국을 떠나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휴가 때 모국에 가서 가족들 만나고, 행정처리 할 것들을 하고 돌아오면 정작 다른 나라를 여행할 휴가는 얼마 남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스위스의 법정 연차 휴가는 4주이다. 옆나라 프랑스는 5주 (역시 이런 면에서는 독보적이다- 미니멈 5주라서 대부분 경력이 꽤 있는 사람들은 6-7주이다), 독일은 4주, 대부분 유럽에 있는 나라들은 4주는 보장해 주는 것 같다.  


2012년에 스위스는 법정 휴가를 4주에서 6주로 늘리는 것을 국민투표로 부친적이 있다. 놀랍게도 찬성표보다 반대표가 더 많이 나와서 무산됐다. 기업들과 나라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말이다. 회사 주인의 수가 일하는 노동자수보다 훨씬 더 적을 텐데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참 신기했다.

농담조로 스위스 친구가 말한다. “Switzerland is all about economy. Always economy first!”.  

사실  스위스는 코로나가 들끓을 시기에도 비즈니스를 위해 유럽에서 유일하게 스키장을 오픈하고 관광객을 받아들인 나라이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관광객이 없어서 그해 겨울 사람 없는 스키장에서 전세 낸 것처럼 스키를 원 없이 탔지만 말이다.


내가 일하는 유엔 오피스에서의 보이는 전경 - 앞에보이는 건물은 최근에 완공된 오픈스페이스식의 유엔 오피스

이번에 나는 크로아티아로 바캉스를 이주동안 떠난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출발해 이태리 베로나를 지나서 크로아티아 스필리트까지 차로 가는 로드트립이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베니스를 들렸다 다시 제네바로 온다. 엄청난 운전거리이지만 그래도 차로 다니면 가는 길에 이곳저곳 구석구석 방문할 수 있고 그 나라의 일상적인 면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이번해는 유엔 내에서 기관도 옮겼고 적응하느라 바쁜 2023년 전반기를 보냈기에 정말로 긴 바캉스가 필요했다.


로랑스 드빌레르의 책 ‘모든 삶은 흐른다’에서 바캉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바캉스’라는 용어는 라틴어 ’ 바카레‘에서 나왔다. 바카레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 ‘비어 있는 상태’, ‘자유로운 상태’를 뜻한다… 바캉스를 제대로 즐기려면 철저히 혼자여야 한다. 주변을 비우고, 요청, 부탁, 질문에서도 벗어나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인 네고티움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유인 오티움이 바캉스의 개념이 되어야 한다. 모든 분주함과 성과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바캉스다. “ 


예전에는 휴가 가서도 회사이메일에 답장을 꼬박꼬박 하고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휴가도 즐기고 회사에서 인정을 받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휴가에서 돌아오면 또 다른 휴가가 필요했다. 이번 휴가 때는 회사 랩탑도 집에 두고 가고 회사 이메일 체크도 안 하고 정말 온전히 휴가를 즐기려고 한다.


이번에는 로랑스가 그의 책에서 말한 바캉스 -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유, 비생산적인 것에 몰두하며 영혼과 정신을 높이 갈고닦는 시간 - 독서와 철학, 명상, 친구들과의 대화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바캉스를 채우려고 한다. 여기에 플러스 좋은 음식과 와인을 곁들어서 말이다.


바캉스동안에 채울 건 채우고 비울건 비워서 마음 안에 여유라는 공간을 넓히고 돌아오면 8월 말부터는 2023년 후반기를 다시 좋은 것으로 채울 준비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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