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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issa Aug 26. 2023

컬럼비아대 MBA 불합격이 가져다준 행운

나에게 맞는 길은 따로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MBA를 준비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준비해야 할 것에 비해 시간이 부족했고 촉박했다.


그 당시 내가 원했던 학교는 단 한 곳뿐이었다. 뉴욕에 위치한 Columbia University였다. 유엔본부가 위치한 뉴욕으로 학교를 가면 왠지 기회가 생길 거 같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만약에 유엔을 못 들어가도 금융의 도시 뉴욕에서 나를 뽑아줄 회사 하나 정도는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컬럼비아를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MBA를 가기 위해선 우선 GMAT 점수가 필요했고 높으면 높을수록 좋았다.  MBA 동기지원 에세이 쓰는 건 기본이고 두 사람으로부터 추천서가 필요했다.  그리고 학교별 MBA Information Session도 참석해서 입학담당자에게 눈도장을 받기 위해 스몰토크 겸 은근한 자기 자랑도 해야 했다. 또 학교마다 Alumni (졸업생)들이 주최하는 MBA networking event 에도 가서 인맥도 쌓아야 했다. 특히 이런 네트워킹 이벤트들에서 입학담당자들이나 졸업생들한테 잘 보이면 그들이 거기 온 학생들의 이름을 따로 메모해 뒀다가 입학지원서를  제출했을 때 더 더 눈여겨본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향적인 성격의 나는 네트워킹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가서 나름의 노력을 했다.


이 모든 준비 중 사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바로 GMAT 공부였다. 지원기간이 얼마 안 남았기에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공부는 누가 더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앉아있냐의 싸움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았다. 공부에 왕도는 없었고 책상 앞에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중에는 회사 끝나고 집에 와서 저녁 먹고 3시간 공부 그리고 취침. 주말에는 동네 도서관에서 아침부터 문 닫기 전까지 죽치고 살았다.


몸은 피곤했고 머리는 GMAT 공부로 가득 찼지만 마음만은 즐거웠다. ‘꿈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그 식상한 말이 나에게는 더 뜻깊게 다가왔다. 내 꿈에 한걸음 가깝게 가기 위해 무엇이라도 노력한다고 생각하니 이 시간이 헛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물론 회사 사람들이 ‘집에 무슨일 있냐,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냐’하고 자주 물어보긴 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고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GMAT점수는 크게 나오지 않았다.


안전하게 콜럼비아 MBA에 들어가려면 GMAT 점수가 700은 돼야 한다고 했는데 내 점수는 660 근처에서 머물렀다. 지원 날짜는 다가오고 더 이상 지체할 수없어서 준비한 서류들로 어플라이를 했다. 지원하면서도 이게 정말 맞는 길인가 자꾸 의심이 들었다. 합격할 가능성이 그다지 높은 것도 아니었지만, 합격해도 2년 과정의 MBA는 학비만 일 년의 거의 십만불 , 총합 이십만불이였다. MBA를 이 금액을 들여서 물가 높은 뉴욕에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사실 걱정이 앞섰다.


두 달 후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레터가 날아왔다.


“We regret to inform you that ….. “


슬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속 시원했고 덤덤했다. 너무너무 가고 싶어도 기회가 올까 말까인데 나는 생각보다 간절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


이게 길이 아닌가 보다 생각하고 다시 변화를 줄 방법을 모색해 보았다.



불합격 통지를 받은 한 달 후, 우연히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University of Geneva에서 하는  International Organizations MBA (IO-MBA) 라는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혹은 지금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MBA였다. 1년짜리 프로그램이었고 가격도 컬럼비아대의 절반이었다. (제네바 물가가 뉴욕만큼 비싸다는 것은 오기 전에 알았다…) 지원날짜를 보니 아직 시간이 좀 있었고 GMAT도 500만 받으면 된다고 나와있었다. 이미 다른 에세이나 추천서는 준비가 돼있는 상태였기에 딱히 더 준비할 것은 없었다.


하나 걸리는 건 유럽에 있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대학이라는 것, MBA는 네임밸류가 중요한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학교에서의 MBA 라니..

나는 그 당시만 해도 세계를 이끄는 건 미국, 무조건 큰 물로 가야 된다고 생각해서 유럽은 옵션에도 없었다. 나에게 유럽은 그냥 올드하고 고리타분하다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국제기구에 특화된 MBA 이고, 제네바에 유엔뿐 아니라 WHO, WMO, WIPO, ITC, UNHCR, WTO 등등 온갖 국제기구들이 모여있으니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지원서를 넣었다.


지원한지 얼마 안되서 소정의 장학금과 함께 입학통지서를 받았다.


단 한 번도 고려해보지 않은 곳, 스위스에서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MBA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서 생각하면 컬럼비아가 안된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큰 행운이었다. 만약 컬럼비아에 합격했으면 나는 2020년에 졸업을 했을 것이고, 2020년 그해는 코비드로 인해전세계가 빗장을 걸어잠구고 모든것이 사실상 정지상태였다. 이미 일하던 사람들도 줄줄이 해고당했고  많은 사람들이 뉴욕을 떠났다. 혼란한 시기 탓에 그해 졸업한 학생들은 직장 잡기가 배로 힘들었다고 한다. 내가 2억에 가까운 학자금 대출과 직장 없이 졸업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이 철렁한다.


심지어 2020년 코비드를 기점으로 나에게 기회를 줬던 University of Geneva International Organiztaion MBA 프로그램도 운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내 다음 학번 동기들은 코비드 탓에 수업도 온라인으로 들어야 했고 졸업 후에는 제대로된 기회도 못가져보고 대부분 다들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나에게 맞는 길은 따로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라는 말이 더욱 더 절실히 와닿았다. 성실히 꿈을 쫓는 자에게는 삶이 더 나은 곳으로, 그리고 자신이 상상도 못했던 곳으로 알아서 인도해 준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확신 했다.


이젠 나의 모교가 된 University of Gene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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