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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호에 맞는 Apr 19. 2020

2. 이직하려면 베어 그릴스가 되어라

적응력과 생존력을 키우자

아니?! 선배도 이직하고 싶으세요?


퇴사와 이직을 고민하던 어느 날, 우연히 평소 친했던 선배에게 이 고민을 털어놓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선배의 조언이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 조언 덕분에 아직 난 푸른 행성에 남아 있고 적응도 잘 하고 있다.


난 선배에게 ‘회사에 적응이 안 된다, 문돌이가 있을 곳이 아닌 거 같다, 떠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경솔하게 회사 사람에게 속마음을 비춘 것 같기는 하지만, 그때는 힘든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아야 살 것 같아 모두 털어놓았다.


그런데 내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던 선배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 다른 조언을 해주셔 깜짝 놀랐다. 난 당연히 ‘그래도 잘 적응해 봐야지,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우리 회사보다 좋은 곳 많지 않아, 이직하면 다를 것 같지? 다 똑같아’와 같은 뻔한 조언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선배는 ‘이직 고민 중요하지, 이직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로 조언을 시작했다. 


이직은 뭐 쉬운 줄 아니? 그리고 나도 준비 중이야 ㅋㅋ  


회사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람 중 한 명이었던 선배의 이런 대답은 웃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웠다. 아직 임원 진급이 가능한 연차가 아니어서 그렇지 많은 사람들이 선배의 임원 진급을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로 인정받고 있었고 회사 일을 집에서도 고민할 정도로 회사에 애정이 있는 선배였는데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니.. 난 그런 선배가 왜 이직을 생각하는지, 또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해 질문을 퍼부었다. 그러자 선배는 오히려 내게 이렇게 물었다.  


면접관이 너한테 푸른 행성에서 뭘 했고, 뭘 배웠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래?


선배는 이 질문이 이직할 때도, 그리고 MBA를 준비할 때도 받을 질문이라고 했다. 그때 자신 있게 팀에서 한 일이 아닌 ‘제가 한 일은 000이구요, 전 000을 배웠어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격하지, 팀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만 나열해서는 경력직으로 이직은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적어도 몸담았던 산업에 대해서는 지식도 술술 말할 수 있고 그에 대한 자신만의 인사이트도 가지고 있어야 명문 MBA나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할 수 있는데 내가 그 정도 수준이 되는지 물었다. 이 질문들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있어야 지금보다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이 가능하기 때문에 선배 역시 제대로 답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했다. 


내가 취업 멘토링을 할 때 멘티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것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활동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효과적으로 어필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였다. 그런데 정작 멘토였던 나는 내가 하는 활동(회사)도 열심히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거기서 뭔가 배울 생각도, 노력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취업 멘토라고 학생들에게 강의를 했던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스스로 생각해보니, 난 지금 있는 곳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적응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력조차 포기해 버렸다. 어차피 옮길 생각이라면 열심히 해서 무엇하나라는 생각으로 지금 있는 산업과 회사에 대해 공부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상태로 면접관 앞에 서서 앞서 선배가 했던 질문들을 받으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자신감 넘쳤던 취준생 때와는 달리 오히려 직장인이 된 지금, 더 작아진 스스로를 느꼈다.




선배도 경영학과인데 여기서 어떻게 적응했어요?


난 선배에게 내가 푸른 행성에 가장 적응되지 않는 것이 기술 이야기가 너무 많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과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써먹을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솔직히 문돌이 행성 출신들은 이곳에 설 자리가 별로 없는 것 같아 정착하기보다는 빨리 뜨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배는 또 한 번 내 흐리멍텅했던 내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 주었다.


고작 4년 배운 걸로 40년을 우려먹을 거라 생각한 거야?

어렵고 낯선 기술? 보다보면 적응돼~


선배는 자기 역시 경영학과를 나왔고 MBA도 다녀왔는데, 아직도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푸른 행성에 적응하기 위해, 더 나아가서는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기 위해 40살을 넘긴 지금도 기술을 계속 공부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고작 학사 4년 한 걸로 평생 써먹는 지식을 얻는다는 것이 말이 되냐. 거기서 더 공부하고 발전하지 않으면 지금 있는 네 위치가 네가 갈 수 있는 제일 높은 곳이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지금도 내 마음속에 깊이 박혀 있다. 또 '기술 어렵지, 근데 보다보면 또 얼추 이해가 된다? 모르면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되지!'라고 하셨다.  


그랬다. 난 고작 학사 4년 배운 걸로 더 배울 것이 없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새로운 것을 머리에 입력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설령 그 새로운 것이 생전 처음 보는 낯선 환경과 기술이라고 할지라도 입력하는 노력이라도 했다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은 이해했을 텐데 전혀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 내가 모르는 것을 오픈하며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있었다.


거기에 전공이었던 경영학은? 이미 완성되었다는 착각의 틀 안에 갇혀 더 공부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책도 거의 읽지 않았고 회사원의 기본 스킬인 워드, 파워포인트, 엑셀도 학생 때 배웠던 것들 이상으로는 배울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난 대학교를 졸업하는 시점에 멈춰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성공적인 이직을 꿈꿨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탐구하고 적응해야지. 가만히 있으면 죽어.


그리고 더 좋은 회사는 더 생존력 있는 사람을 원해



베어 그릴스가 되어라


그 날 이후, 난 성공적인 이직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커리어를 위해 낯선 푸른 행성을 탐험하고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이 넓은 우주 어디를 가던 내 자리 하나는 만들 수 있도록, 어떤 상황에도 적응하고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치 탐험가 베어 그릴스처럼 어떤 환경에 떨어져도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으로 생존할 수 있는 사람, 어떤 산업이나 회사를 가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럼 사람 말이다. 늘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회사는 적응력이 강한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지식과 요령을 가진 사람을 원한다. 마치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생존 스킬과 경험을 통해 생존하는 베어 그릴스처럼 말이다. 


난 낯선 행성을 탐험하는 모험가야. 문돌이라고 생존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  




이 일은 벌써 몇 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내 머릿속에 깊이 남을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자 계기였다. 이 일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생존과 적응 마인드'였다. 그 날 이후, 모르는 기술 이야기가 나오면 ‘아아~ 또 새로운 것이 나타났구나’ 하며 관찰하고 분석해 대략적으로라도 어떤 건지 파악하는 마인드를 가질 수 있었고 간혹 등장하는 경영학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갖고 있던 경영학 스킬들을 사용해 무사히 해쳐나갈 수 있었다. 또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면 자연스럽게 책과 자료를 찾아봐 지식과 스킬을 늘리는 것이 습관화 되었다. 어디서든 생존할 수 있는 마인드를 장착하게 된 것이었다.


아직도 푸른 행성은 문돌이인 내게 낯설고 어려운 환경이지만 ‘난 베어 그릴스다~’하는 마인드를 갖은 뒤로는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더 커져 회사 스트레스가 많이 줄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직이나 MBA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다만 이곳에서 뽑아 먹을 수 있는 모든 지식과 경험을 뽑아 먹고 내 적응력과 생존력에 자신이 있을 때, 내 우주선에 연료가 충분하다고 생각될 때까지는 여기서 최선은 다해 적응하고 생존할 것이다. 그 다음은? 아직 미정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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