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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Oct 23. 2024

토미카 덕후 탄생기 (1)

아들의 토미카에 빠져버린 아빠 이야기

1. 토미카 비긴즈


 언제부터였을까. 아이는 마트나 문구점에 갈 때마다 꼭 토미카 코너에 들른다. 수많은 자동차들 중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하나를 딱 집어든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며 오늘은 이걸로 하지,라는 의미의 눈빛을 보낸다. 너무 자주 사지 않기, 한 번에 많이 사지 않기, 안 사주더라도 떼쓰지 않기 등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으니 기꺼이 하나 사 준다. 이런 식으로 거의 2주에 하나 꼴로 새로운 토미카를 집에 들이는 중이다. 장난감을 너무 자주 사 주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개당 6,000원 내외의 가격이라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커피 한 잔 참고 아들 선물 한 개 사 주면 된다.


 ※ 토미카(トミカ, TOMICA) :  일본의 토미 사가 1970년부터 만든 다이캐스트(주물 공법) 자동차 모형 브랜드.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장난감이다. 각 모델마다 1~150번까지의 연번이 부여돼 있고, 이외에도 프리미엄, 언리미티드, 특별 한정판 등의 파생 모델도 있다.  





 아이를 키운 지 만 4년째.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우리 집은 사 왔거나 선물 받은 자동차투성이다. 종류도 다양하다. 토미카뿐 아니라 아이코닉스의 타요, 해외 직구한 디즈니 카 시리즈, 핫, 마조레, 마이스토, 기타 메이커 불명 제품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건 무슨 자동차 천국, 아니, 지옥 같다. 남자아이를 키우는 집은 으레 이런 건가. 역시나 남자아이를 키우는 동기 K에게 들어 보니 이게 어느 순간부터는 공룡이나 로봇으로 대체된다더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일. 토미카는 자동차 장난감을 사는 걸로 끝이 아니다. 단발성 소비로만 그치지 않는다. 이 자동차들을 넣을 주차장, 소방서 세트, 레이싱 트랙 등의 확장 유니버스도 구축할 수 있다. 물론 그 유니버스는 나의 지갑과 환치되는 것이다. 토미카 놈들... 아이들을 현혹해서 어른들의 지갑을 이렇게 털어가는구나.







2. 디즈니 콜라보 시리즈


 토미카는 대부분 일본 차들을 본떠 만들었다. 도요타, 혼다, 마쓰다, 닛산 같은 차들이다. 이외에도 람보르기니, 벤츠, 볼보 같은 유명한 메이커의 차들도 있다. 어째서인지 포르셰 토미카는 본 적 없는데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단종된 듯하다. 예전에는 박스터나 카레라 같은 토미카들이 있긴 했다. 단종된 포르셰는 중고 시장에서 적게는 3만 원, 많게는 수십 만 원을 호가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모델 외에 특이한 토미카들도 존재한다. 디즈니/픽사 영화 <카>에 등장하는 라이트닝 맥퀸을 비롯한 캐릭터들, <짱구는 못 말려>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웃집 토토로> 등의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차들, 슈퍼 마리오와 같은 게임들, 그리고 영화 <분노의 질주>에서 나온 희귀한 차들까지. 일종의 콜라보 제품으로 나온 토미카들이 있다.


 카의 주인공 '라이트닝 맥퀸'에 환장하는 아들이 이런 토미카들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카 시리즈 콜라보 제품들을 하나 둘 집어오다 보니 양손으로 꼽지 못할 수만큼이나 모였다. 아, 그리고 이 녀석들은 일반 토미카와는 다른 방식으로 연번이 부여된다. 숫자 앞에 'C-'가 붙는다.





 나처럼 아들을 키우고 있는 직장 동기 B 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들 녀석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에 대한 대화로까지 이어졌다. "요즘에는 디즈니 카 시리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내가 보여준 사진을 보면서 눈썰미 좋은 B 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토미카 아닌 게 섞여있는 것 같은데?" 과연 진성 덕후는 달랐다. 아주 '조금' 크기가 큰 것들은 토미카가 아니라 해외 직구했던 무명 메이커의 제품이다. 아마도 디즈니 기프트 숍에서 파는 오리지널이 아니라 중국산 짝퉁이었던 듯.


 대체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B 형의 아들 역시 토미카에 환장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많이 만져봐서 잘 알게 됐단다. 아이와 함께 매일같이 만지고 굴리고 던지고 하다 보니 본인도 토미카를 깊이 빠져들게 됐다고. 그래서 토미카가 아닌 녀석들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좋아해 본 사람은 이럴 수가 있구나. '인생도처유상수'라더니 과연 고수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다음번에는 <흑백요리사>처럼 눈을 안대로 가리고 손으로 더듬게 해 봐야겠다. 그때도 귀신 같이 토미카를 구분해 내려나.





 나는 영화 <카>를 본 적 없지만 대강의 스토리는 아들의 그림책을 봐서 알고 있다. 요 파란색 51번 차가 '닥 허드슨'이라는 녀석인데 주인공인 '라이트닝 맥퀸'의 스승님이라고. 벽을 타고 가며 앞의 차를 제치는 자신만의 독특한 기술로 챔피언 자리에 오른 전설의 레이서라 했다. 영화는 안 봤지만 유튜브 영상과 토미카들 덕분에 이 녀석들의 이름도 많이 알게 됐다. 라이트닝 맥퀸, 크루즈 라미레즈, 잭슨 스톰, 메이터, 라몬, 루이, 귀도, 미스프리터 등등. 아이가 아직 티니핑의 세계에는 깊이 빠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외울 이름이 백여 개가 넘는다던데. 여자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이름 외우기에 골머리를 썩인다고 한다. 오늘날의 부모님들, 모두 파이팅입니다.





 "빨간색이 주인공이야?"

 어느 날 아들이 물었다. 빨간색 라이트닝 맥퀸의 모험기를 그림책과 유튜브 영상으로 계속 보면서 드는 생각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파워레인저나 후레쉬맨 등에서도 빨간 쫄쫄이가 대장 역할이고,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깔도 빨강이 첫 번째고, 뽀로로의 친구 에디가 만든 변신 자동차도 빨간색이고, 우리 차도 흔치 않은 새빨간 색이다. (예전 같으면 '빨갱이' 소리 들었겠지만) 역시 색 중의 색은 빨강이다. 이러다 보니 아이에게도 은연중에 빨간색이 최고, 주인공, 1등이라는 이미지가 남았나 보다. 반복 학습의 힘이 무섭다.





 콜라보 토미카뿐 아니라 그림책과 종이차와 스케치북까지. 아이의 라이트닝 맥퀸 사랑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아직 한참은 지켜볼 일이다. 참고로 B 형의 아이도 토미카를 어마무시하게 모았다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쳐다보지도 않게 됐다 한다. 뜨겁던 마음이 일순 차갑게 식어버린 것. 아이의 마음이란 이렇듯 알 수 없다.







3. 남자의 로망, 스포츠카


 남자의 로망 스포츠카, 라기에는 나는 스포츠카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아내가 더 좋아한다. 차가 빨라서 뭐 하나, 느려도 되니까 안전이 제일 중요하지. 나는 투박하게 생겼지만 튼튼한 SUV를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장난감은 다르다. 알록달록 고운 색에 멋진 디자인을 자랑하는 스포츠카 토미카는 보고만 있어도 왠지 모를 흥분이 일어난다. 어릴 적에 만화 <영광의 레이서(사이버포뮬러)>를 보며 '제로 영역'이나 '아스라다'를 외쳤던 소년들이라면 으레 그럴 것이다. 자기만의 미니카 하나 정도는 갖고 있었고, 방과 후에 문방구 앞 트랙에서 경주를 하고, 일반 모터의 속도로는 성에 안 차 '블랙 모터'로 갈아 끼우는 등의 튜닝까지 해 본, 지금은 아재가 된 그때 그 소년들은 공감할 터. 자동차야, 달려라 달려!





 "부릉부릉, 경주다 경주. 누가 1등 할 것 같아?" 아이는 틈만 나면 거실 소파 위에 스포츠카들을 올려놓고 경주 놀이를 한다. 양손에 하나씩 토미카를 잡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이런 걸 보면 영락없이 남자아인가 싶다. 다만 너무 경쟁에 몰두하거나 1등을 놓쳤다고 해서 크게 상심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나. 인생은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방향이 중요한 거라고. 하지만 수학 전공인 아내는 내 말을 듣고 있다 곧바로 반박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속도가 아니라 속력이지. 속도는 벡터라고. 방향이 있는 거야."


 아 진짜, 이래서 이과생들은 별로다. 그냥 문맥으로 이해해 주면 안 되나. 그걸 꼭 따지고 드냐.





 스포츠카 하면 역시 (혹자는 페라리라고도 하지만) 람보르기니다. 아이는 여러 색깔의 람보르기니 토미카를 갖고 있다. 그중에서도 주황색 우라칸은 두 개나 있다. 여느 때처럼 이마트에 갔던 날 토미카 코너에 들렀다. 이날 아이가 선택한 건 주황색 우라칸. "이거 우리 집에 있는 차잖아."라고 했더니 아이가 절대 아니라며 꼭 사겠다고 했다. "아니, 진짜 똑같은 거 있다니까." "아니야, 아니라고. 우리 집에 없어." "아이 참, 똑같은 걸 왜 사는 거야 또."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샀다. 집에 와서 뜯어보니 아무리 봐도 모양도 색깔도 똑같은 우라칸이다. "이거 봐라, 똑같잖아." 아이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이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퀴를 봐." "뭐라고, 바퀴?" 자세히 봤더니 집에 있던 건 바퀴 전체가 까맣고 새로 산 건 바퀴 안쪽에 금색 테가 둘러져 있다. 세상에나, 꼬마 녀석이 이렇게 눈썰미가 좋을 수가 있나.


 어른들은 아이는 어리니까 잘 모를 거야,라고 생각하는 때가 왕왕 있는데 그렇지만은 않다. 오늘도 아이에게서 하나 배운다.  





 아들이 스포츠카를 몇 개 더 샀으면 좋겠다. 이렇게라도 한번 만져보고 달려보자. 실제로는 타 볼 일이 없을 것 같으니까 장난감으로 대리만족이라도 해야겠다. 내 평생 람보르기니를 이렇게 많이 가져볼 일이 또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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