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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군자 Jul 16. 2018

오만함, 우리는 타인에게 가닿을 수 있는 존재인가?

그래픽 노블 02. 아스테리오스 폴립


그래픽 노블이 뭐예요?라고 묻는 사람들을 위해 한마디로 정리된 문구가 있다면 ‘미려한 그래픽과 소설의 깊이를 가진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게 있어서 아스테리오스 폴립은 바로 그 정의에 명확히 들어맞는 작품이다. 


출처: 그래픽 노블 <아스테리오스 폴립>


우선 시각적으로 아스테리오스 폴립은 ‘만화책’ 하면 떠오르는 말풍선과 칸의 기존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인물마다 다른 말풍선과 font를 사용하는 등 기존 형식을 자유롭게 가지고 노는 자유분방한 연출을 보여준다. 그래픽적으로는 비유와 상징을 위해 의도된 선, 색, 그리고 형태를 적용하는 점이 두드러진다. 덕분에 작가의 의도 아래 기획된 수준 높은 그래픽을 보는 재미가 있다. 


학생들의 대사가 제각기 다른 말풍선 형태, Font로 표현되었다. 유심히 보면 모든 등장인물이 고유한 말풍선과 글씨체를 갖고 있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개별성을 시각적으로 


한편 이야기로서 아스테리오스 폴립은 인간이 스스로는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며, 그런 인간이 관계에 있어서 얼마나 미숙할 수밖에 없는지 다룬다. 이를 위해 작가가 구축한 캐릭터의 직업, 가정환경 등이 매우 설득력이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사람에 대한 작가 데이비드 마추켈리의 통찰력과 관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아래의 상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아스테리오스 폴립에서는 등장인물들의 개별성이 강조된다. 개별적 인간들은 모두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결국 영원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이 이야기를 위해 작가는 개성적이고 설득력 있는 캐릭터들을 만들어낸다. 주인공인 아스테리오스 폴립이라는 캐릭터의 몇 가지 설정은 해당 주제를 잘 담고 있다. 


출처: 그래픽 노블 <아스테리오스 폴립>


 첫 번째 설정은 아스테리오스의 태어나지 못한 쌍둥이 형제이다. 그는 끊임없이 형의 그림자를 만나면서, 자신이 완전치 못한 존재라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죽은 쌍둥이 이그나지오의 모습으로 말을 거는 인물은 사실상 아스테리오스의 또 다른 내면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자신의 내면을 이그나지오로  형상화했을 뿐이다. 자각하지 못하는 다른 존재와 함께 살고 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다. 타인의 겉을 아무리 잘 관찰해도 그를 전부 알 수 없는데, 타인이 숨기고 있는-혹은 자기도 인지하지 못한-면모를 가지고 있다면 그를 완전히 아는 건 더욱 불가능할 것이다. 


실재하는 건물이 아닌 이상 속의 건축을 논하는 직업 '페이퍼 아키텍트'는 아스테리오스라는 인물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출처: 그래픽 노블 <아스테리오스 폴립>


두 번째 설정은 단 한 번도 실재하는 건축물을 만들어낸 적 없는, 말과 글로만 건축을 해온 개념 건축가라는 그의 직업이다. 그가 평생을 바쳐온 건축의 세계는 그의 머릿속에만 있다. 그는 누군가가 머물고, 살 수 있는 실재하는 건축을 단 한 번도 지어본 적이 없다. 그가 타인과 가져온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타인을 이해하는 데 있어도 그는 자신의 세계에 갇혀있었다. 하나의 작품을 아스테리오스가 해석하는 장면에서 하나에게 비쳤던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장면은 그의 주관적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하나의 말을 진심으로 듣지 않아왔던 것, 하나가 자신은 이해받지 못한다 느낀 것들은 이런 태도의 연장선일 것이다. 


어릴 적 오빠들에 밀려 관심을 받지 못한 하나는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하며 때로는 자신에게조차 무례한 아스테리오스와 사랑에 빠진다.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익숙해서 자신의 욕구를 주장하지조차 못했던 하나는 안쓰러운 존재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매우 현실적이어서 더 슬프다. 

              

출처: 그래픽 노블 <아스테리오스 폴립>


이런 연출 / 이미지가 좋아
하나와 아스테리오스 폴립의 첫 만남.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한 세계로 합쳐지는 사랑의 장면이 아름답게 시각화되었다. 한 명은 선으로 양감을 구현하고 한 명은 골조로 표현하고 대비 색을 사용했다. 다른 두 가지 표현 양식이 섞이면서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존재에서 하나의 존재가 되는 모습을 그린다. 

근데 이런 건..?
아스테리오스 폴립 같은 사람이 과연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두가 말도 안 된다고 했던 그 일이 정말 일어났다. 두 번째 읽을 때는 너무 멋진 비유이자 미처 몰랐던 복선의 회수 장면이어서 충격적이지만, 처음 읽을 때는 너무 급작스러워서 장르가 파괴되는 느낌의 충격이었다. 하지만, 분명 멋진 장면이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호기심을 느끼고 있고, 단 한 권의 책으로 그래픽 노블이란 장르의 매력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단연 이 책을 추천한다. 다양한 상징과 이미지를 읽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고, 인간의 본질 -사랑받고 싶은 욕망, 오만함 등-에 대해 깊이 사색할 기회도 주는 작품이다.





아스테리오스 폴립

글/그림: 데이비드 마추 켈리
원제: ASTERIOS POLYP
미메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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