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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연 Feb 26. 2023

[소하연서평] #2. 책과 우연들

작가가 되어가는 김초엽을  발견하고 싶은 당신에게

이 글은 저의 뉴스레터 [소하연서평]의 본문을 옮긴 것입니다. 

본문 업로드는 레터 발송 이후 무작위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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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은 소설가 김초엽이 쓴 에세이, ⌜책과 우연들⌟입니다. 출판사 열림원이 만들었고 2022년 9월에 출간되었습니다.

김초엽을 읽어보셨나요? 저는 2019년에 출간된 김초엽의 첫 소설집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하 우빛속)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서점에서 처음 발견한 책은 거의 구입하지 않는데요. (표지의 아름다움만 믿고 사버린 뒤, 속 빈 강정 같은 퀄리티임을 알게 되고 알라딘에 팔아넘긴 적이 많았기 때문이죠). 유독 김초엽의 첫 소설집 만큼은 선뜻 사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첫 소설집은 (예외없이) 표지가 아름다웠고, 띠지에 실린 작가의 사진이 멋졌고, 여성과 SF라는 장르가 순풍을 타고 많은 독자들의 인기를 얻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라고 지금은 그렇게 추측해봅니다. (결국 사지는 않았습니다).

김초엽의 첫 소설집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19년 알라딘 올해의 책 중 하나로 선정되었고, 많은 작가들이 추천하고 또 많은 청소년들에게 권장되는 책이 되었습니다. 유명해지면 일단 시기부터 하고 보는 저는 '그래 얼마나 잘 쓰는지 보자' 하며 ⌜우빛속⌟의 책장을 펼쳤고 첫 소설을 다 읽어내자마자 심장을 부여잡고 말았습니다. 아니 이런 좋은 소설가가... 어디 있다가 나온거람. 하면서요.

김초엽의 소설은 아름다웠습니다.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은 아름다움을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라고 정의한 적이 있는데요. 김초엽의 소설은 딱 그런 종류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는 지인들에게 전부 김초엽의 ⌜우빛속⌟을 추천했습니다. 이 소설집이 담고 있는 인간과 우주에 대한 이야기, 고통과 용기에 대한 이야기가 그만큼 보편적으로 사람들에게 가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김초엽의 '위치'가 의문스러웠습니다. 한국문학에는 '순문학'이라는 장르가 문화자본권력의 중심에 가장 가까이 있습니다. 여러 논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순문학이 '무엇이 좋은 문학인지'를 말할 발언권을 먼저 갖는다는 것에는 동의하리라 조심스레 넘겨짚어 봅니다. 대형 문학출판사들이 승인하는 소설들, 각종 문학상들이 선정한 소설들이 보통 '순문학'이라고 규정됩니다. 순문학은 한국 사회와 정치, 인간 내면과 실존, 철학적 딜레마 등을 다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때 '순문학' 안에는 SF장르가 포함되지 않습니다. 순문학이 볼 때 SF는 특정한 플롯, 기법등을 반드시 포함해야 하고, 인간애 대한 진지한 실존적 고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장르문학인 것이죠.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구분선을 해체하는 여러 작가들의 노력 덕분에 이런 차별의식은 철폐되어가고 있지만 과거의 문학 잡지들에서는 국내 SF 작품들을 순문학만큼 자주 다루지 않았고 다루더라도 진지한 텍스트로서 비평하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비평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작품으로서의 미학적 권위가 온전히 형성될 수 없다는 뜻과 같습니다. (순문학과 비순문학에 대한 다른 복합적 논의들은 이 서평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므로 더 논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데뷔한 SF소설가들은 묵시적인 물음에 해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너의 소설은 순문학만큼 가치있는 것이냐? 동시에 SF 소설의 전통에게도 해명을 해야 합니다. 너의 소설은 SF의 계보에 놓여있느냐? 전자에 물음에 답하지 못하면 한국문학시장에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후자에 물음에 답하지 못하면  SF소설이라고 인정받지 못합니다. 

SF 문학상에서 대상과 가작을 받고 데뷔했으며 순문학 작가들로부터 추천사를 받은 김초엽은 이 두 가지 물음을 성공적으로 답변해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김초엽은 이 두 가지 물음에 기꺼이 답하고 싶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 막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소설가의 입장에서 순문학과 SF문학을 둘러싼 이 질문들이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


저는 ⌜책과 우연들⌟을 당시 김초엽의 곤란을 아주 유연하고 씩씩하게 풀어낸 과정이 담긴 에세이로 읽었습니다. 규정 안에 갇힌 말들은 옹졸해보입니다. 흑이냐 백이냐, 이분법의 틀로 바라볼 때 세세한 목소리들이 배제되기 마련이니까요. 이 에세이에는 SF소설을 쓰는 소설가로서, 본격적으로 쓰기에 발을 들여놓은 신참 작가로서의 알찬 여정이 옮겨져 있습니다.

이 에세이에서 김초엽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자주 고백합니다. 서문에서부터 김초엽은 고등학교 3학년 때 토이스토리 3를 극장판에서 보고 훌쩍거리며 집에 돌아간 기억을 꺼내놓습니다.  

그때의 기분만큼은 기억한다.  무언가가 너무 좋아서 이런 것을 만들고 싶다는 갈망이 뭉게뭉게 생겨나던 순간을. 어떤 이야기와 사랑에 빠질 때의 그 기분, 그것을 재현사고 싶다는 바람이 나의 '쓰고 싶다'는 마음 중심에 있다.  p.9


너는 SF 작갸냐, 순문학 작가냐, 물음에 답하기 전에 김초엽은 '이런 것',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작가라는 대답을 먼저 내어놓습니다. 동시에 김초엽은 SF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흐리려 하지 않습니다.

김초엽은 첫 장 ['결국 인간 이야기'라는 말]에서 자신의 소설에 대해 '결국 인간 이야기'라는 '칭찬'에 대해 겸손히 받아들이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소설은 인간에 관한 이야기일까? 그러면 SF소설도 마찬가지로 '결국은 인간 이야기'로 수렴되는 것일까? 

(...) SF는 인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그 사실을 무척 좋아한다. 개별 작품마다 인간에 치우치거나 비인간에 치우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SF에서 비인간 존재들-자연, 우주, 행성, 테크놀로지, 동물, 식물, 외계 생물-은 인간만큼이나 중요하다. 나는 이 행성의 꽤 많은 사람이 비인간 존재들에게 마음을 뺏기고 만다는 사실을, 또 그들 중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일부가 SF를 읽고 쓴다는 사실을 좋아한다.  p.23-27


SF문학 역시 '인간 이야기'라는 규정은 SF문학을 순문학의 한 갈래로 포섭하려는 의도를 가진 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김초엽은 첫 책을 낸 이후부터 "순문학 같다"는 '칭찬'을 자주 들어온 작가였습니다. 그 칭찬의 앞뒤 맥락이 무엇인지 잘 알고있는 김초엽으로서는 그 말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를 아주 많이 고민해왔으리라 생각합니다. ⌜책과 우연들⌟에서 김초엽은 바깥에서 자신을 규정하려는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정의를 해나갑니다. 그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예의와 존중은 놓치지 않습니다. 

 또 이 에세이는 작가가 되기 위한 있는 그대로의 좌충우돌을 말하기도 합니다. 김원영 작가와 함께 쓴 인문사회과학서 ⌜사이보그가 되다⌟를 집필할 때 어떻게 어려웠고 또 헤쳐나왔는지를, 덜컥 데뷔를 해버린 뒤 빈약한 자신의 밑천을 어떻게 채워넣을 것인지, 작가로서의 독서는 어떻게 달라야하나 고민하는 등, 비단 작가라는 직업의 특수성으로만 읽히지 않고 직업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모든 초년생들의 고됨으로 읽히기도 했습니다. 

이 에세이를 읽고 나서 저는 김초엽 작가를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김초엽은 예의바르면서도 할 말은 하는 영리하고 강단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더 잘 쓰고 싶은 욕심과 좋아하는 것을 듬뿍 좋아하기를 드러내기 두려워하지 않는 멋진 사람으로도 보입니다. 쓰는 사람으로서의 김초엽이 궁금한 사람도, 바깥의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의지를 엿보고 싶은 사람도, 나의 일을 제대로 시작해볼 때의 어려움을 위로받고 싶은 사람도 모두  ⌜책과 우연들⌟을 재밌게 읽으시리라 조심스레 예상해봅니다. 이만 줄여요. 다음 주에 뵈어요.


성장하는 사람의 일지가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는 걸 알아버린

 하연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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