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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연 Feb 26. 2023

[소하연서평] #1. 배움의 발견

교육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한 당신에게


이 글은 저의 뉴스레터 [소하연서평]의 본문을 옮긴 것입니다. 

본문 업로드는 레터 발송 이후 무작위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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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은 미국의 역사학자 타라 웨스트오버가 쓰고 김희정 역자가 옮긴 에세이, ⌜배움의 발견⌟입니다. 출판사 열린책들이 만들었고 2020년 5월에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 타라의 가족은 미국 아이다호 주의 아름다운 산, '벅스피크'에서 살아갑니다. 타라는 16살이 될 때까지 학교에 가지 못합니다. 타라의 아버지가 사악한 미국정부로부터 그녀를 지키려했기 때문인데요. (어리둥절). 극단적인 모르몬교 근본주의에 빠져있는 타라의 아버지는 정부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는 정부요원이 자기 가족을 죽이러 올 것이며 학교는 악마같은 사회주의를 주입하는 세뇌시설이고, 병원은 몸의 자연스러운 순환을 방해하고 기형을 일으키는 사이비 집단이라 믿습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병원에도 가지 못하게 합니다.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분통이 터지는 장면이 한두군데가 아닙니다. 아버지는 망상에 허덕이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가족들을 위험에 빠뜨립니다. 여성혐오적인 사고를 자식들에게 주입시키고(창녀처럼 입지마라), 손씻기와 같은 기본적인 위생, 승차했을 때 안전벨트를 매야 한다는 상식적인 안전감각을 무시(안전벨트는 겁쟁이들이나 매는 것이지)하여 가족들을 크게 다치게 만들거나 치명적인 상황에 방치합니다. ⌜배움의 발견⌟에는 타라의 가족들이 수차례 다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루크 오빠는 다리에 불이 붙어 화상을 입고, 숀 오빠는 폐철 처리장 크레인에서 추락하고, 타라 역시 아버지가 던진 폐철에 맞아 중상을 입을 뻔합니다. 아버지 본인도 얼굴을 포함한 전신에 화상을 입습니다. 모든 사고가 일어나고 나서 병원에 가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대부분은 약초 의학(?)을 할 줄 아는 어머니가 가족들을 치료합니다. 타라는 아버지가 가르친대로 심판의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자급자족을 위해 잼을 만들고, 아버지와 함께 폐철처리장에서 일합니다. 평생을 벅스피크에서 보낼거라 믿던 타라가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 계기는 두 명의 오빠였습니다. 


셋째 오빠 타일러가 선언합니다. "대학에 갈 계획이에요." 아버지는 대학이 바보나 사기꾼들이나 가는 곳이라며 타일러를 만류(및 조롱)하지만 타일러는 소심하면서도 강단있게 자기 소망을 밀고 나갑니다. 


타일러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와 싸우고 집을 나가버린) 둘째 오빠 숀이 다시 집에 돌아옵니다. 숀은 마초적이지만 정이 많은 오빠입니다. 타라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말 타기를 가르쳐주거나, 일을 함께 하며 장난을 치고 노는 등 타라에게 아버지, 어머니와는 다른 든든함을 주는 보호자가 됩니다. 


그러나 숀은 선하고 좋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보다도 훨씬 폭력적인 가부장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숀은 자신의 (한참 어린) 여자친구를 무식하다며 '물고기 눈깔'이라 비하하고, 마치 노예를 부리듯 심부름을 시킵니다. 숀이 여자친구에게 대하는 태도가 불편했던 타라는 숀에게 장난치듯 '너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는 식으로 지적했고, 숀은 타라를 잡아 넘어뜨려 바닥으로 누릅니다. 숀은 타라가 자신에게 '반항'하는 것을 참지 못해 타라의 사생활에 일일이 간섭하고 폭행을 저지릅니다. 그러다 밤이 되면 울며 사과하러 찾아옵니다. 


타라는 친절하고 장난끼 많은 숀 오빠와 욕하고 폭행을 저지르고, 울고 사과하는 숀 오빠의 모습 사이에서 혼란을 겪습니다. 무엇이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던 타라는 어느날 집에 잠깐 들른 타일러가 숀이 타라를 폭행하는 것을 목격하자, 이 폭력이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합니다. 타일러는 타라에게 묻죠.



"집을 떠날 생각은 없니?"


"떠나서 어디로 가게?"


"학교."



타라는 자신이 대학에 가지 못할 거라 생각하지만 타일러는 끈질기게 타라를 설득하며 말합니다.


"집 바깥의 세상은 넓어, 타라. 아버지가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을 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시작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일 거야."


타일러의 말과 숀, 아버지의 폭력에 의문을 품게 된 타라는 결국 대학에 들어갈 준비를 하게 됩니다. 타라는 공부를 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의심합니다. 시험을 준비하는 타라에게 모든 것들은 새로웠습니다. 시험장에 들어간 타라는 처음보는 작은 종이를 보며 시험관에게 이게 뭐냐고 묻고, 시험관은 'OMR카드'라고 답합니다. 


" 이게 왜 되지? " 라는 기묘한 성취들이 하나하나 모이기 시작합니다. 타라는 시험에 통과해 브리검 영 대학교에 들어가고 기숙사에서 머무르며 사람들과 어울리게 됩니다. 물론 '바깥 세상'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룸메이트들은 손을 씻지 않는 타라를 불결하게 보았고, 장발장과 나폴레옹 중 누가 실존 인물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타라는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공부해야 했습니다. 


놀라운 일은 연이어 일어납니다. 브리검 영 대학교의 케리 박사가 타라에게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가지 않겠냐고 제안하고 타라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합격합니다. 교환학생으로 지내는 동안 타라는 케임브리지의 역사학 교수 조나단 스타인버그와 만나 그와 함께 공부합니다. 


스타인버그는 타라에게 무엇을 연구하고 싶은지 묻습니다. 타라는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기술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 소망은 타라가 전혀 다른 역사를 함께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들은 역사와 자신이 직접 목격한 역사가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그 의문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역사를 이해하는 길로 통하는 문을 지키는 위대한 문지기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무지와 편견을 해결했는지를 알아야만 했다."


타라는 한 편의 에세이(소논문)를 씁니다. 타라는 어떤 혹평을 들을지 기다리며 스타인버그 교수를 봅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 에세이가 자신이 30년간 케임브리지에서 가르치면서 본 가장 훌륭한 에세이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스타인버그는 타라에게 케임브리지 대학원을 권유합니다. 타라는 대학원에 갈 돈이 없다고 말하지만, 스타인버그는 타라를 전액 장학금으로 합격시킵니다.


타라가 대학에서 친구를 사귀고, 애인을 만들고, 공부를 하고,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합격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진학할 동안 웨스트오버 가문, 벅스피크의 집안 사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늘 그렇듯 고집불통이고, 어머니는 타라에게 정신적 지지를 보내주지만 무력하고, 숀은 폭력적이고 리처드와 루크, 오드리는 크고 작은 폭력에 노출되고 있었습니다. 타라는 점점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지만 정작 벅스피크로 돌아왔을 때 스스로가 16살이던 시절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합니다. 인류의 역사로 이루어진 바깥 세상과, 아버지의 역사로 만들어진 벅스피크 이 두 공간 사이에서 타라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됩니다. 과연 타라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




⌜배움의 발견⌟은 소위 '사이비' 집안에서 자란 타라가 학교에 가게 되어 '교육'을 받아 새 사람이 되는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가 이 책을 교육받지 못한 여성의 성장기, 케임브리지라는 세계적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성공담으로 소개한 것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한국은 교육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죠. 아무리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태어났더라도 공부만 잘하면 계급 상승이 가능하다는 '교육 신화'가 여전히 유효하니까요.


그러나 ⌜배움의 발견⌟은 사이다스러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물론 ⌜배움의 발견⌟에는 쾌감이 있습니다. 보물같은 재능을 모르고 살아오던 사람이 우연한 계기로 재능을 꽃피우는 드라마 속 천재(예능 ⌜운동뚱⌟의 김민경, 영화 ⌜어거스트 러쉬⌟의 어거스트)에게서 흔히 발견하게 되는 쾌감입니다. 소개만 들으면, 자연스럽게 이 이야기는 재능있는 자식(피해자)의 앞길을 막는 몰상식한 부모(가해자)의 구도로 읽힙니다. 천재, 영웅이 미리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건 악당, 억제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면 편하니까요. 하지만 ⌜배움의 발견⌟은 가해자 부모, 피해자 자식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사이비'를 '교육'으로 퇴마하는 서사, 뻔뻔하고 무식한 부모를 똑똑하고 이성적인 자식이 '참교육'하는 서사를 기대한다면 ⌜배움의 발견⌟을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배움의 발견⌟은 '헷갈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타라가 대학에 들어갈 결심을 하게 된 이유, 교육을 받고자 한 이유는 헷갈림에 있습니다. ⌜배움의 발견⌟은 아버지의 언어로 직조된 견고한 종교적 세계관을 부수고 나간 타일러 오빠에게서 느낀 헷갈림. 친절하면서도 폭력적인 숀 오빠에게서 느낀 헷갈림, 억압적이면서도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나의 세상과 바깥 세상의 불일치,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과 알아보는 사람 사이에서 헷갈리는 타라의 자아상들이 어떻게 중심을 잡고 지금까지 만들어져왔는지를 기록한 일지입니다. 


타라의 헷갈림은 문장의 형식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만약 이 책이 타라의 실제 이야기라는 배경지식을 알지 못한 채 읽기 시작한다면 이 책의 장르가 소설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타라는 줄곧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고, 가족들에 대해 판단하기를 주저합니다. 책에서 서술된 내용에 따르면 타라의 아버지는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아동학대이고 숀은 폭행에 살인미수까지 해당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아버지와 숀이 어떻게 사랑했고 또 위해주었는지도 타라는 자세히 씁니다. 사랑과 학대, 교육과 야만, 성장과 배신이 무 자르듯 나누어지지 않는다고 타라는 말하는 듯 합니다. (물론 그의 가족들이 저지른 폭력에 대한 차후의 논의는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타라의 신중하고 단단한,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문장에 반했습니다. 타라가 자신의 고향, 가족들을 그저 끔찍한 곳, 나쁜 사람들이라고 규정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거든요. 타라가 마지막에 발견해낸 자신만의 진실(책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은 이러한 태도로 자신의 내면과 가족들, 바깥 세상을 관찰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배움의 발견⌟을 끝까지 읽고 나면 교육은 아주 힘이 세지만 또 무력해보이기도 합니다. 교육은 분명 타라를 바꾸었지만 가족들의 문제까지 해결해주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가끔씩 교육이 만능이라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지금 마주하는 문제들은 교육만 잘 이루어지면 해결되는 게 아닐까 하고요. 하지만 교육은 고작 나 하나만 바꿀 수 있을 뿐입니다. 교육을 통해서 바보같은 과거가 없던 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타라의 셋째 오빠 타일러가 말한 것처럼 아버지, 혹은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하지 않고 미약하고 불완전한 나의 언어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타라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역사를 써내기로 결심했던 것처럼요.




타라의 다음 책을 기대하게 된 하연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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