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의 증상과 도움된 것들(1)
"저 산후우울증일까요?"
맘카페에서 이런 제목의 글을 보면 짠해진다. 워낙 자주 보이는 제목이라, 자주 짠해진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연들이 얼마나 다양한지.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기를 안고 같이 엉엉 울었다는 사연, 6개월째 독박육아하며 너덜너덜해진 손목을 주무르다 통곡했다는 사연, 아기 안고 베란다 밖을 내려다보다 뛰어내리고 싶었다는 사연, 샤워하다 벽을 내리치며 “왜 여자만 젖을 줘야 하냐고!!”라며 울분을 터뜨렸다는 사연…
나만 애 키우는 게 버거운 것 같아 속상하고,
나만 세상과 동떨어져 '애 키우는 여자'가 된 것 같아 우울하고,
과연 이 시기가 언제 끝날지, 끝난다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있을지 막막한 감정.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 없는 '신생맘'은 없으리라 감히, 확신한다. 임신과 출산, 육아로 겪는 변화는 그만큼 크고, 얼마만큼은 외롭기 때문에.
나에게도 ‘아, 이게 산후우울증인가?’라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지내던 출산 일주일 뒤 무렵이었다.
젖몸살로 가슴은 아프고, 모자동실 때마다 애는 울고, 새벽에 한두 번씩 유축하느라 잠은 못 자고, 그 와중에 코로나로 조리원 외부 출입이 금지돼 본의 아닌 '자가격리'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필요한 물건 갖다 준다고 잠시 찾아온 일단대디. 다가오는 주말에 뭐 할 건지, 일단대디의 이야기를 듣던 중 기분이 점점 울적해졌다.
'나에게도 저런 일상이 있었는데. 지금 나는 몸도 띵띵 붓고 조리원에서 주는 못 생긴 파자마 입은 채 홀로 아기와 씨름하고 있네.'
그러다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한 번 터진 눈물은 금방 멈추지 않았다. 반갑게 만나 대화하던 일단대디는 너무 놀라 어쩔 줄 몰라했다. 나도 내 눈물과 갑작스러운 우울감이 당혹스러웠다. 그 뒤로도 이따금 별 이유 없이 우울감이 찾아오곤 했다.
얼마간은 호르몬 변화 탓, 얼마간은 상황 탓이라는 산후우울증. 어떤 조사에선 우리나라 출산 여성 10명 중 4명이 산후우울증을 겪었다고 하고, 어떤 조사에선 10명 중 무려 9명이 산후우울증을 겪었다고도 한다.
조사마다 이 정도로 차이가 큰 까닭은 산후우울증에 대한 정보도, 지원도 부족한 탓이 클 것이다.
맘카페에 수두룩한 이 질문 "저 산후우울증일까요?"엔 얼마나 많은 혼자만의 망설임이 있었을까. 애 낳고 이 정도 힘든 건 견뎌야 하는 거 아닐지, 나만 너무 유난 떠는 건 아닐지, 남편을 비롯해 다른 가족의 반응은 어떨지 등등.
우울증 치료의 첫 시작은 '우울증은 질병이고, 치료를 받으면 나아진다'는 태도라 한다. 산후우울증이라고 다르진 않을 것이다. 가족의 지원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가장 가까이에서 산모를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은 물론 아기 아빠다.
임신과 출산을 곁에서 충실히 함께해왔다면 이 경험이 아내의 몸과 마음, 생활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임을 알 수밖에 없다. 그러니 출산한 아내가 몸은 물론 마음도 잘 회복하고 있는지 자주 들여다봐주면 좋을 텐데.
맘카페의 "저 산후우울증일까요?" 글 다수엔 공감과 이해를 못 하는 남편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만약 '나 산후우울증일까?'라는 질문을 남편에게 털어놓고 위로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산후조리원에서 후드득 눈물을 쏟은 날, 나는 일단대디에게 "나 약간 산후우울증인가 봐"라 말했다. 더 자주 통화하고, 미처 말하지 못한 건 글로 적어 공유했다. 특히 가장 우울해지곤 했던 새벽 유축 시간에 일단대디가 적은 편지를 읽으며 큰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산후우울증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다. 하지만 치료 이전에 정서적 지지가 먼저다. 내가 산후우울증을 가볍게 앓고 지나올 수 있었던 건 일단대디의 지지 덕이었다. 먼저 출산을 경험한 친구들이 평소보다 더 자주 연락 주고 응원해준 것도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임신과 출산, 육아는 결국 내가, 내 몸으로 겪어낼 수밖에 없는 일이고 그래서 외로워지기 쉽다. 특히 세계 제일의 저출생 국가인 이곳에선 더욱더.
사회 전반에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좀 더 긍정적이고 따스한 시선이 많아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산후우울증을 가볍게 앓고 가뿐히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 산후우울증의 증상과 도움된 것들(2)에선 제가 실제로 도움받은 생활 속 실천들에 대해 정리해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