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번째 글을 올리며
6년 전 어려운 관문(?)을 뚫고 브런치 작가가 된 이후로 지금 400번째 글을 쓰고 있다. 누에가 실을 뽑아내 듯 글을 술술 풀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에세이라는 게 솔직성의 고백이다 보니 어떨 땐 진실의 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거기에 문학적이라는 표현의 장벽도 넘기가 힘들어 끙끙대기 일쑤다. 하긴 누에도 고통 없이 실을 뽑지는 않을 것이다.
매일 글을 올리는 작가들에 비하면 나는 몹시 게으른 사람 축에 들지만 지난 시간 동안 브런치에 올린 작품들을 헤아려보니 얼추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올린 것 같다. 브런치가 아니었다면 그나마도 존재하지 않았을 내 삶의 조각들이다. 경제력과는 무관한 창작활동에 가끔은 회의를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 보니 통장에 쌓인 숫자를 보는 것보다도 더 뿌듯한 기분이 든다.
낡은 앨범을 뒤지듯 2019년 오월의 어느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브런치에 올린 첫 작품은 남편과 함께 떠난 프로방스 여행기였다. 우리 부부가 세운 은퇴 후 첫 번째 계획이 실행된 여행은 지금까지 나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은 계획대로만 되는 게 아니다. 계획이 엉키는 건 한 순간이다. '코로나'라는 신종 전염병이 우리의 발목을 묶고 사회를 마비시킬 줄 누가 알았을까, 학교는 무한 방학에 들어갔으며 5인이상 모임이 금지되어 모든 행사가 취소되고 급기야 사회적 거리 2미터라는 방어전선이 생겼다.
이런 중에도 글만은 자유롭게 누구든 만날 수 있어 나는 그 특별한 권리를 누리며 하루를 무사히 보내기 힘든 코시즌을 견뎌냈다.
코로나라는 괴물도 우리에게 남겨주고 떠난 것이 있다. 평범한 일상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마스크를 벗고 내 쉬는 들숨과 날숨이 얼마나 고마운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차 한잔 나누는 일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내 혈육과 친구, 이웃들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다. 코로나가 앗아간 3년 여 동안의 기나긴 공백을 메꾸기 위해 우린 더 열심히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사람의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코로나보다도 더 무서운 병이 남편을 쓰러뜨렸다.
오늘이 바로 1년이 되는 그날이다. 아직도 병원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은 다행히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
그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특별한 삶을 살면서도 글만은 멈추지 않았기에 지금 나는 400번째 글을 쓰고 있다.
401번째에는 어떤 글을 쓰게 될까? 평범한 하루의 이야기를 맛있게 버무린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희망일 뿐. 아무도 모른다.
다만
어떤 글이건 끊이지 않고 계속쓸 수있는 날들이 되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