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2월이 되면 집안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한다. 올해는 조금 일찍 서둘러 다용도실에 보관해 둔 트리를 꺼냈다. 지금껏 한해도 빠트리지 않고 트리에 불을 밝혔지만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지난해에는 트리를 세우고 싶은 의욕은 물론 그럴 여유조차 없이 마음 한 구석이 헛헛한 채로 연말을 보냈다.
주변에 반짝이는 트리의 불빛을 바라볼 때마다 모든 이들의 기쁘고 행복한 시간 속에 나만 초대받지 못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올해는 트리를 세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해마다 트리를 세우면서도 트리를 꾸밀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줄 지금껏 모르고 살았다.
트리에 매달 오너먼트를 정성껏 닦고 장신구들도 챙겼다. 지난번 내가 가진 소품들을 벼룩시장에서 정리할 때도 그동안 하나씩 모아 둔 크리스마스 장식품 만은 남겨두었었다.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오래된 크리스마스 소품은 20년 전에 딸과 함께 여행을 갔던 독일의 상점에서 산 아기 천사다. 해마다 이들을 꺼내면서 나는 그날의 날씨와 기분, 그날의 탄성까지 기억한다. 작은 소품 하나가 젊은 날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것. 이게 바로 크리스마스 마력이다.
언젠가 12월에 태국의 북쪽 치앙마이로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연말을 맞이한 이곳도 곳곳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되어 있었고 사람들의 표정은 들떠 있었다. 하지만 한 겨울의 크리스마스에 익숙한 내 눈에는 쇼핑센터나 상가 앞에 세워놓은 트리가 어색해 보였다. 눈송이를 표현하기 위해 솜뭉치를 군데군데 매달아 놓은 모습은 무더위에 지친 나를 더욱 덥게 만들었다. 말로만 듣던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그리 낭만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는 그 안에 크리스마스가 있기 때문이다. 바라만 봐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트리가 어울리는 곳은 창밖에 흰 눈이 소복이 쌓이는 겨울이어야 한다.
화분이 놓여있던 자리를 치우고 그곳에 트리를 세웠다. 늘 그렇지만 트리를 만들 때마다 나는 새로운 소망을 나무에 건다. 지난날들의 무사함에 감사하는 마음과 새로운 날들에 대한 희망을 기원하며 나만의 의식을 갖춘다.
올해의 트리는 예년에 비해 감사의 마음이 더 크게 담겼다. 지독한 병마와의 싸움에서 이겨내고 다시 건강을 되찾게 된 남편에 대한 감사와 어려움을 잘 견뎌내 준 가족에 대한 감사, 늘 용기 잃지 않도록 따뜻함을 전해준 동생과 오빠에게 드리는 감사등. 그동안 격려하고 위로해 준 모든 분들을 기억하며 하나하나 감사의 등불을 밝힌다.
마지막 등불 하나에 나의 소원을 얹는다.
한 해를 무탈하게 보내고 새해를 즐겁게 맞이할 수 있는 일이야 말로 최고의 행복이다. 이런 마음으로 해마다 트리를 만들 수 있게 해 달라는 기원을 했다.
특히 트리조차 세우지 못할 만큼 힘들었던 지난 한 해를 생각하면 행복의 범주안에 평안이 있는 게 아니라 평화로운 마음이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트리를 만든다는 건 밥을 짓는 엄마의 마음이다. 밥상에 오손도손 마주 앉은 식구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지듯 한 해를 마무리하며 평온한 마음으로 트리를 만들고 그걸 바라보는 가족들의 표정에서 나는 행복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