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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군 Dec 05. 2021

루스에게 생긴 일, 2017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남에게 닥친 일

세상은 평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원제는 <I Don't Feel at Home in This World Anymore>로 이 영화에는 평범한 주인공이 나온다. 루스는 간호조무사로 일을 하는 평범한 여자이다. 루스에게 벌어지는 일은 신호 대기 중에 매연을 내뿜는 트럭을 마주하거나, 근무하고 있는 병동에서 간호하고 있는 욕쟁이 할머니가 죽거나, 마트의 소량 계산대에서 카트 한가득 실은 물건을 계산하는 손님이 앞에서 길을 막거나, 우울한 기분을 풀러 들린 펍에서 읽고 있던 소설의 스포를 듣거나, 집 마당에 누군가 계속 경고 문구를 무시하고 개똥을 치우지 않고 도망가는 일 등이다. 사소한 일들만 생기는 사람들을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평범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루스는 어느 날 집에 도둑이 들어 노트북과 할머니가 남긴 은 식기, 복용하고 있는 약(클로나제팜과 렉사프로로 불안 장애나 우울증에 처방되는 약)을 도둑 맞는다. 경찰은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못한 루스의 잘못으로 생긴 일이라 치부한다. 도둑맞은 물건을 찾으면 연락을 주겠다는 말은 이 사건이 평범한 사건이라는 뜻이다. 결국 루스는 도둑맞은 물건을 직접 찾기 위해 나선다. 노트북의 위치 찾기를 이용해 노트북을 훔친 범인의 위치를 알아내고, 마당을 통해 침입한 도둑의 경로를 찾아 족적흔까지 발견해 석고를 부어 증거를 확보한다. 그리고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차량 번호를 조회해 소유주가 누군지까지 밝혀낸다. 그러나 그런 루스에게 경찰은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와서 방해하지 말고 잠자코 있으라고 말한다.


왜 저를 안 도와주려고 하는 거죠? 그게 형사님 일 아닌가요?
난 할 일을 하고 있소. 지금 내 직장에 와서 내가 하는 일이 뭔지 묻네요. 문 활짝 열어놨다가 불량배가 활개 치고 다녔다고 지금 자기밖에 안 보입니까? 철 좀 들어요. 누구는 집 앞에서 두들겨 맞고 의식불명이에요. 그쪽 은 식기 세트보다 세상은 더 넓고 다들 더 큰 문제를 겪고 있소.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요. …실은 나 이혼합니다.

그렇다. 세상에는 사소한 일을 겪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사소한 일의 기준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


넌 이제 더는 아들이 없어.

이 영화의 장르에는 스릴러도 포함된다. 자기 물건을 되찾으려는 루스와 강도들 간의 분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정확히는 경찰들이 막고 있는 범죄 세계와 그 속으로 들어가려는 루스의 대결 구도라고 할 수 있다. 경찰들은 범죄 사건을 다루는 건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말하며 루스에게 그냥 평범하게 살라고 밀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범죄 사건은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어난다. 이 아이러니가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를 만들어 낸다. 막 새롭거나 액션이 영화적으로 화려하지 않은 영화가 노릴 수 있는 틈새를 공략한 것이다. 어리숙해 보이는 강도들은 공포라는 장르까지 선보인다.


루스의 물건을 훔친 3인조 강도들은 훔친 물건을 팔아 총을 구입한다. 영화 속에서 헬기가 나오면 폭발해야 하고, 총이 나오면 발사 되어야 하는 것이 영화의 법칙이다. 헬기는 우스갯소리지만, 이 영화는 총에 한해서 안톤 체호프의 이른바 총 이론(1막에서 총이 나왔다면 3막에선 발사되어야 한다. 쏘지 않을 거면 아예 삭제해야 한다)을 충실히 따른다. 경찰이 언급했던 범죄 세계를 잠시 살펴보자. 3인조 강도 중 한 명인 크리스티안은 부잣집에서 태어나 약 때문에 엉망으로 살아가고 있는 청년이다. 교도소에서 만난 남자를 아버지처럼 여기며 3인조로 뭉쳐 강도 짓을 꾸민다. 그 대상은 변호사이자 부자이자 크리스티안의 생부인 루맥이다. 구입한 총을 들고 집으로 쳐들어가기 직전, 루스가 자신들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걸 수상하게 여겨 작전을 멈춘다. 그리고 루스의 집에 다시 찾아가 겁을 주려던 찰나 루스에게 한 방 얻어맞고 도망치다 차에 치여 사망하고 만다. 3인조에서 2인조가 된 강도들은 경찰에 신고하려는 루스를 납치해 강도 짓에 끌어들인다. 루스는 어쩔 수 없이 총알 없는 총을 들고 루맥의 집에 쳐들어간다. 강도들한테 제압당한 루맥이 자기 아들이 어디 있냐고 묻자 이때 이렇게 대답한다.


 이제 더는 아들이 없어.


감독은 평범한 사람 루스와 어리숙한 강도들을 데리고 영리하게 사건을 만들고 장르적 공포를 선사한다. 인상 깊은 대사다.


우리는 놀랍도록 다른 사람의 인생에 신경 쓰지 않는다.

루스에게 세상은 엉망진창이고, 각자 닥친 일을 처리하는 데에 너무 바쁘다. 루스의 하소연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오죽하면 친구 딸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도둑맞은 하소연을 늘어놓았겠는가. 그나마 자신의 집 마당에 똥을 버리지 말라고 화를 냈던 토니가 루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친구가 거의 없는 토니 역시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루스가 경찰이 도와주지 않아 아무것도 못 하고 있을 때 토니가 노트북을 찾으러 같이 가 준다.

우리는 각자 각별히 신경 쓰는 물건이나 사람, 동물 등 대상이 있다. 그런데 만약 그 신경 쓰는 대상을 누군가 무시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불쾌하거나 분노하거나 불편할 것이다. 루스에게 도둑맞았던 은 식기가 그 ’대상’이었다. 은 식기는 루스를 예뻐했던 할머니가 선물해 준 것이다. 루스의 물건을 훔쳤던 크리스티안은 아버지의 관심이 그 ’대상’이었다. 아버지의 무관심이 그를 엇나가게 만들고 자신의 아버지를 대상으로 강도 짓을 벌이게 했던 것이다. 루스를 평범한 사람 취급했던 경찰은 자신의 이혼이 그 ‘대상’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가장 중요하고, 이와 동시에 벌어진 남에게 닥친 일들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아 한다.

루스는 이 상황은 너무나 불편하다. 하지만 태어났다는 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움직여야만 한다. 움직여야 살아갈 수 있다. 루스는 영화 중반에 이르러 자신에게 벌어진 불편한 일에 가장 관심을 두고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다.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선 루스는 그간 참아왔던 불편한 일들에 대해 한마디씩 하기 시작한다. 큰 변화를 주지 못하더라도 루스에게 생긴 일엔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루스에게 생긴 일은 우리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이때 우리가 대응해야 하는 방식에 대해 영화는 루스를 통해 힌트를 준다. 물론 총이 없다면 발사되지 않는 게 좋다.


감독/각본 : 메이컨 블레어 / 배우 : 멜라니 린스키, 일라이저 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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