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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군 Oct 22. 2021

Eyes Wide Shut, 1999

가면 속에 숨겨진 당신의 욕망의 크기는 얼마인가?

주인공 빌 하포드는 뉴욕에 사는 잘 생기고 잘 나가는 남부러울 것 없는 의사이다. 그리고 그의 아내 앨리스는 파티에 나가면 남자들의 시선을 빼앗을 정도로 아름답다. 부부는 결혼 9년차에 귀여운 딸이 하나 있다. 카달로그에 실려도 될만큼 모범 아니, 이상적으로 보이는 부부이다. 영화는 모범답안 같은 부부 사이에 질문 하나를 던지며 금을 낸다.  


인간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남편 : 당신하고 춤 춘 남자는 누구야? 그는 뭘 원했어?
아내 : 뭘 원했냐고요? 그가 뭘 원했냐… 섹스요. 위층에서. 그리고 여기저기서.(웃음)
남편 : 내 아내와 하고 싶었다?
아내 : (웃음) 맞아요.
남편 : 이해 할 만해.
아내 : 이해 할 만하다고요?
남편 : 당신이 워낙 예쁘니까.
아내 : 잠깐만요. 내가 예쁘니까 나한테 말을 거는 남자들은 전부 나와 자기 위해 그런다는 말인가요?
남편 : 그렇게 간단한 얘긴 아냐.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남자들은 그렇잖아.
아내 : 그럼 당신도 그 모델들과 섹스를 하고 싶었겠네요.
남편 : 예외는 있어.
아내 : 당신은 왜 예외죠?
남편 : 내가 예외인 이유는 난 당신을 사랑하고 결혼을 했고 당신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야.
아내 :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 모델과 안 자는 이유가 오로지 나 때문이라고요?
남편 : 진정해, 자기는 지금 흥분했어.


마치 <다음 대화에서 아내가 화난 이유를 찾으시오.>라는 질문이 이어질 것만 같다. 영화 속에서 빌은 사람들을 안심시킬 때 자신의 의사면허증을 보여준다. 현대 사회에서 의사만큼 신원이 확실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다만 빌은 자신의 신원이 확실하기 때문에 본능마저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사실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도 아니다. 새로운 명칭이 필요하다. 어설프게 이름을 붙이면 ‘자기 본능 통제 가능성에 대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부부가 이 대화를 나누기 전 장면은 지글러라는 빌이 주치의로 있는 재력가의 크리스마스 파티다. 부부는 참석해서 잠시 따로 떨어지는데 빌은 모델 두 명과 앨리스는 헝가리인과의 성적 유혹에 휩싸인다. 물론 아무 일도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이유에 빌은 결혼을 했기 때문이라 대답하고, 앨리스도 결혼했기 때문이었다. 둘 다 같은 대답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앨리스는 헝가리인과의 대화에서 여자들이 결혼한 이유가 처녀성을 잃을 유일한 방법이자 정말로 원하는 남자들과 자유롭게 만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앨리스를 꼬시기 위한 방법이지만 앨리스는 헝가리인에게 다시 만날 수 없는 이유를 자신이 결혼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헤어진다. 앨리스는 헝가리인을 원하지 않았고, 남편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앨리스가 드라큘라를 연상시키는 헝가리인으로부터의 유혹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면 이제 빌의 차례다. 빌은 자신이 의사기 때문에 환자를 대하듯 본능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 하지만 본능과 몸과 자신을 구분할 수 있는 건 단어 뿐이다.

앨리스는 빌에게 암시를 건다. 여행지에서 눈길로 자신을 사로잡았던 젊은 장교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내내 빌의 머릿속에 젊은 장교와 섹스를 하는 아내의 이미지가 떠나질 않는다. 그때마다 빌은 여자를 찾는다. 창녀도 있었고, 자신을 사모하고 있었던 환자의 딸도 있었고, 난교 파티에도 찾아간다. 그러나 그 누구와도 섹스를 하지 못한다. 빌이 달아오르면 달아오를수록 그는 섹스를 할 수 없다. 어쩌면 꿈 또는 크리스마스의 악몽이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욕망은 진실이다. 꿈이든 현실이든 욕망이 가짜일 수는 없다. 빌은 욕망을 통제하지도 사로잡지도 해소하지도 못한다. 의사면허증으로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가능한 건 단 하나. 현대 사회의 결혼 제도하에서 그는 아내가 있고 아내와 잠자리를 갖는 건 가능하다.

아내가 젊은 장교와의 상상속에서의 섹스를 고백했을 때, 빌은 난교파티에 다녀온 걸 말하지 않는다. 같은 욕망이지만 하나는 꿈에서 이뤄졌고, 다른 하나는 현실이지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의사면허증으로는 갈 수 없는 난교파티(원래 출입 불가지만 친구를 통해 몰래 들어갔다가 쫓겨난다)에서 그는 현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아내에게 모든 것을 고백한다. 자신은 욕망에 지배당하고, 욕망 때문에 질투하고, 욕망으로부터 쫓겨났다고. 그에겐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앨리스는 그에게 지금 당장 급하게 해야할 일이 있다며 섹스를 하자고 제안한다. 아마 그는 곧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야생말처럼 길들여야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끝내 답을 주지는 않는다. 욕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쉽사리 들어갈 수 없는 숨겨진 난교파티일까? 꿈속에서만 가능한 판타지일까? 아님 현실에서 질끈 감은 눈을 떠야 찾을 수 있는 걸까?

  



 감독 스탠리 큐브릭 / 각본 스탠리 큐브릭, 프레데릭 라파엘 / 배우 톰 크루즈, 니콜 키드먼
작가의 이전글 Let Him Go,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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