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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군 Sep 14. 2021

The Piano, 1993

소리가 존재한 적 없는, 존재할 수 없는, 그런 고요가 있다

주인공 에이다는 6살 이후로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녀의 소통 방식은 피아노에서 나오는 소리로 이루어진다. 그녀는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고요를 기묘한 자장가라 부르며 잠이 든다. 어쩌면 그녀는 아름답지 않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말을 하지 않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그러는데 사람들이 하는 말은 대부분 들을 가치가 없대요.

그녀의 딸 플로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게 사실일지도 모른다. 어린 에이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를 멈추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피아노를 치고 있을 때는 아무도 말을 걸지 않을 테고, 자신도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됐기에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소통 방식을 택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아내를 데려온 스튜어트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 마오리족과 별 다를 바 없다. 스튜어트는 베인스에게 80 에이커 땅의 대가로 에이다의 피아노를 넘긴다. 여기에 마음이 변할까 봐 레슨권도 함께 제공한다. 상의도 없이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 창구인 피아노를 넘긴 스튜어트에게 에이다는 화를 낸다. 이때 스튜어트는 이렇게 말하며 대화를 거절한다.


우린 가족이야. 당신도 희생을 해야 해!

에이다에게 '형식상' 남편이 된 스튜어트는 피아노가 아닌 방식으로 소통하려 해도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중에 베인스가 피아노를 돌려주었을 때 한 곡 연주해보라는 스튜어트의 말을 죄책감 없이 무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베인스는 에이다가 배에 싣고 가져온 피아노(너무 무거워서 스튜어트가 버려둔)를 마오리족에게 일 삯을 주고 스튜어트에게 땅을 팔아 해변에서 되찾아 온다. 그리고 조율까지 해놓는다. 레슨을 하러 온 에이다에게 자신은 듣기만 하겠다고 말하며 피아노를 기꺼이 내어준다. 물론 그의 목적은 피아노가 아니라 에이다였지만 적어도 그녀가 하는 말을 듣는다. 여기서 말은 피아노 연주와 그녀의 바디랭귀지 모두를 포함한다. 베인스는 글을 모르지만 말을 하지 않는 에이다와 소통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난 불행하오. 왜냐면 난 당신을 원하고, 당신에게 사로잡혀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소. 그래서 고통스럽소. 난 그리움으로 병들었소. 먹을 수도 잘 수도 없소. 그러니까 내게 아무런 감정 없이 온 거라면 가줘요. 나가시오. 가시오!

피아노를 볼모로 레슨을 하러 온 에이다를 만나더라도 결국 그녀는 스튜어트의 아내이기에 베인스는 피아노를 에이다에게 돌려주고 혼자가 된다. 하지만 피아노가 없는 베인스의 집에 에이다가 찾아온다. 그러나 그녀는 베인스를 바라볼 뿐 말이 없다. 피아노가 없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번엔 그의 말이 듣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베인스는 나가 달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뺨을 얻어맞는다.


뺨을 때리고 베인스를 안아주는 에이다. 자신을 아프게 한 베인스가 밉지만 그가 아픈 것은 또한 자신의 아픔으로 돌아온다. 이를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랑한다면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애증이 생기면 뺨을 때리고, 만지고 싶다면 솔직히 말하면 된다고 오늘도 영화를 통해 사랑을 배운다. 멜로 영화의 핵심은 연인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고 만나는 첫 장면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달려있다. 그래야 공감을 하고 영화 속 연인을 응원해주고 싶어 진다. 물론 영화 피아노는 잘 만든 멜로 영화지만 이 장면이 클라이맥스는 아니다. 


스튜어트가 에이다에게 고통을 주는 장면(에이다가 건넨 건 글로 표현한 사랑의 증표이고, 베인스는 글을 못 읽기에 이를 알아차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최악의 남자 스튜어트는 이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폭주한다)에서 우리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에이다 역시 똑같이 빗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이는 더 이상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의미이기에 우리와는 다르다. 마치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처럼 에이다는 피아노로 타인과 대화를 할 수 있었던 6살 이후 처음으로 그 능력을 잃고 만다. 그 허망함과 좌절감, 상실감, 고통이 느껴지기에 바다에 빠진 에이다가 거품이 되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피아노는 바다에 가라앉는다. 가라앉은 건 에이다였을까, 피아노였을까. 고요함 속에 그 답이 있다. 상대방의 말을 기다리는 그 찰나의 고요함의 아름다움을 아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감독&각본 제인 캠피온 / 배우 홀리 헌터, 하비 카이텔, 애나 패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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