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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Jul 03. 2022

남해일기 4주 차

210705-210708  정성스러운 작별인사

이 프로젝트가 끝나고 반년 뒤 다시 남해를 찾았을 때 석이 4주간 있었다고 말하는 내 말을 3주로 정정해주었다. 하지만 이것 봐. 나 4주 있었당께.



7월 5일 월요일

 훈이 바쁜 와중에 아침 일찍부터 병원에 데려다줬다. 새벽부터 비가 엄청 내려서 그런지 어두컴컴하니 몸이 축 처졌다. 오늘따라 병원에는 환자가 무척 많았다. 깁스를 풀고 잠시 진료대기 의자에 앉아있는데 사람들이 내 발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왜 다쳤는지 물어보시거나 사골국 끓이는 법을 알려주셨다. 한숨을 푹 쉬시고는 내 발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분도 계셨다. 드라마에 나오는 '시골 보건소' 장면에서 볼 수 있는 클리셰가 그대로 내 눈앞에 펼쳐져서 신기하고 즐거웠다. 훈이 잠시 병원 근처로 다른 업무를 보러 가서, 그냥 비를 맞으며 약국으로 갔다. 병원이랑 가까우니 그냥 후딱 가려고 밖으로 나온 건데 지나가던 모든 행인들이 감사하게도 전부 후다닥 달려오셔서 도와주셨다. 우산을 몇 겹이나 썼는지 모르겠다.

 미뤄졌던 네트워크 파티를 열었다. 청소, 음식 준비, 테이블 세팅까지 다들 분주히 움직였다. 나는 늦게 합류하여 친구들이 준비해준 식재료를 친구들이 다 차려준 식탁에서 칼질만 조금 하면 되었는데, 그 와중에 손가락을 베어버렸다. 그마저도 못하고 쫓겨났다. 시무룩해진 나에게 훈이 유성매직을 쥐어주며 테이블에 웰컴 낙서를 하게 해 주었다. 파티는 생각보다 짧게 진행됐다. 처음에 얼렁뚱땅 정해진 자리 그대로 끝까지 이어졌다. 나는 팜프라 대표님과 함께 했다. 직원과 대표가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법인까지 운영한다는 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삶과 일을 구분할 줄 아는 팜프라 구성원들이 멋졌다. 평소에 자주 이런 사례들을 직접 마주하고 만났더라면 올해 초 해산한 협동조합을 계속 잘 운영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았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파티가 어영부영 끝나고 있었다. 살러들이 아쉬운지 좁은 현관에 모여 긴 작별인사를 했다.   



7월 6일 화요일

 느지막이 일어나서는 방 짝꿍들에게 "재밌는 일 할 사람?"하고 물었다. 재밌는 일이라는 건 내 머리를 감겨주는 것이다. 점점 뻔뻔해지는 내 모습이 조금 웃기다. 류가 화장실 세면대와 부엌 싱크대를 오가며 여러 시뮬레이션 테스트를 했다. 결국 발견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내 머리를 감겨주었다. 나는 화장실 문턱에 눕고 류는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우당탕탕 머리 감는 시간을 가졌다. 혹시나 물이 튈까 조심히 조물거리는 류.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도 내 걱정을 먼저 하는 류에게 매우 매우 고마웠다. 나중에 문이 우리를 찍은 영상을 보여줬는데, 류는 내 머리를 감겨주는 8분 내내 웃으며 말을 걸어줬다. 대충 눈치채고 있었지만 천사가 틀림없다.

 나의 조기 퇴소일을 결정했다. 나 때문에 귀찮은 업무가 늘어날 텐데도 내 건강만 생각하라고 말해주는 운영진 훈, 석에게 너무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오늘 마침 전체총회여서 날짜를 확정 짓자마자 살러들에게 바로 공유할 수 있었다. 총회가 끝나자마자 훌쩍이며 나를 둘러싼 친구들. 민망한 마음에 툴툴거리며 별 거 아닌 척했지만 다들 너무 귀엽고 찡하고 감동이었다.



7월 7일 수요일

 오전에는 프로젝트 면담이 있었다. 운영진 둘 다 내 방까지 올라와줬는데, 원추리방 특유의 정신 사나운 분위기 때문에 면담시간이 몇 배로 오래 걸렸다. 급기야는 훈과 석이 노트북을 펼치는 각도로 투닥거리며 끝이 났다. 이 유치한 싸움도 곧 그리워질 것 같다. 어제부터 현과 씨가 좋은 곳에 데려다준다고 해서 따라나섰다. '아난테'라는 큰 리조트가 운영하는 서점으로 갔다. 매우 넓고 책이 많았지만 큐레이팅이 마음에 안 들었다. 먹구름은 개의하지 않고 근사한 풍경을 바라보며 늦은 점심을 먹었다. 현과 씨의 따뜻한 배려와 사랑 덕분에 정말 행복했다. 앞으로의 날들이 약속되었으니 찬찬히 은혜 한 끗까지 전부 갚아나가고 싶다.

 센터 마당에 도착해 캠핑 의자에 풀썩 앉았는데 현과 씨가 센터 벽 앞에서 킬킬 웃었다. 둘 사이를 비집고 들여다보니 세상에, 나였다! 내 얼굴이 11개나 들어간 포스터가 센터 여기저기에 붙어있었다. 알고 보니 살러들이 내가 외출한 사이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현과 씨는 나를 멀리 데려가라는 미션을 받고 나와 시간을 보내줬다. 가랜드처럼 빼곡히 달려있는 포스터를 따라 살러방으로 들어가니 잔치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바깥에서 사 온 음식과 직접 만든 음식으로 식탁이 가득했다. 그걸로 모자라 석이 사천까지 가서 사 왔다는 비건 케이크, 홉이 밤새 편집했다는 영상과 영상편지, 정성 가득한 롤링페이퍼와 내 놀아줘 쿠폰 패러디까지... 선물만 나열하는데도 또 눈물이 찔끔 난다. 이렇게나 근사한 작별인사를 감히 받아도 되는지 마음이 벅찼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쪼개 정성 가득한 이별을 선물하는 살러들을 보니, 이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멋지고 튼튼한 관계를 맺어왔을지 알 것 같았다.

 저녁에는 현이 서울서 챙겨 왔다는 폭죽으로 불꽃놀이를 했다. 금방 꺼질 불꽃에도 의미를 부여해주고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늦은 밤 내 방으로 사월과 아보, 홉이 찾아왔다. 룸메들까지 여섯 이서 끝없이 수다 떨었다. 떠나는 내 앞이라 그런지 묵혀둔 이야깃거리들은 쉽게 꺼내졌다.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결국 자정을 훌쩍 넘겼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아보, 홉, 류, 문과 해가 뜰 때까지 (새벽에만 할 수 있는) 푸르스름한 이야기까지 나눴다. 우리끼리 위로하고 응원하면서 알차게 밤을 새웠다. 불쑥불쑥 따끈따끈한 마음을 선물해준 살러들에게 감사함이 밀려왔다.          



7월 8일 목요일

 떠나는 날이다. 긴장했는지 해 뜨는 걸 보고 잠이 들었음에도 늦지 않은 오전에 눈을 떴다. 한이 줄 것이 있다며 방에 와서는 직접 만든 향수를 선물해줬다. 체험할 때부터 내게 줄 생각으로 조향 했다고 한다. 정말 스윗한 사람. 일어나자마자 1층에 내려가 있었다. 오고 가는 살러들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말도 괜히 한마디 더 걸었다. 외출하는 친구들과는 아쉬움 뚝뚝 묻어나는 포옹까지 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다. 결국 "너 아직까지도 여기 있냐"는 말을 듣고야 말았다. 여전히 1층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홉에게 전화가 왔다. 입을 떼기도 전에 홉이 다급하게 "갔어?"라고 물었다. 누가 봐도 방금 잠에서 깬 칼칼한 목소리였다. 일어나자마자 내게 인사도 못했을까 봐 걱정했다는 홉이 매우 귀여웠다.

 늦은 오후,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려고 인천에서 쉬지 않고 달려온 고마운 친구 산이 도착했다. 아침부터 호들갑을 떨었던 덕분에 막상 갈 때가 되어서는 아주 담담하게 인사 나눌 수 있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걸쭉하지 않은 이별이었다. 나는 굉장히 차분하고 평온한 작별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산이 대가족 집에서 귀하게 키운 딸을 뺏어서 나온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했다. 눈길이 닿았을 곳곳에 아직도 내 얼굴이 가득한 포스터가 달려있었다. 남해를 벗어나면서 지난 시간들을 되새겼다. 산과 바다 모두를 품은 섬의 아름다운 조각들도 생각났지만 역시나 살러들의 얼굴들이 먼저 떠올랐다. 석, 훈, 문, 근, 한, 씨, 류, 금, 사월, 현, 홉, 중, 아보. 그리고 장장 10시간의 운전으로 고생한 산까지. 나에게 남해는 이 친구들 그 자체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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