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야 Sep 28. 2022

공동체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학교폭력

 학교폭력은 중앙집권적인 위계 관계와 폐쇄적인 예방기관, 차별적인 제도로 인해 발생한다. 이는 모두 사회 속 잘못된 구조에서 사회화된 학교문화로 견고해졌다. 사회에서 해결되지 않는 여러 갈등들, 소통의 부재와 폭력이 대물림되어 학교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청소년들의 관계가 폭력으로 이어지는 원인은 권위주의와 집단주의 문화 때문이다. '권위주의'는 자신보다 지위가 낮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가혹하게 반응하고 공격적으로 지배하려고 하는 성향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무비판적 복종하는 성향 또는 폭력에 침묵과 동조로 묵인하는 것 또한 권위주의를 기반으로 나타난다. 권위주의는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집단에서 많이 발견된다. 집단주의는 집단 내 구성원을 서로 연결시키고 협동하게 함으로 유대를 강화한다. 잘못 사용될 경우 개개인을 억압한다. 자아를 비독립적인 집단의 일부로 여기고 개인의 권리를 집단의 규범에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공동체와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는 인식은 그로 인해 생겨난 오해다. 공동체 내 ‘다수’에 속한 구성원들은 나름대로의 서열을 정하고 자신들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기득권층이 된 구성원은 자신의 무리에 속하지 않는 사람을 무시하고 낮잡아 본다. 그렇게 권력을 이용한 권위주의가 생겨나고 악순환이 이어진다. 


 우리 사회는 권력 관계 속 굴복과 지배를 학습해 문화를 지배했고, 청소년들은 이러한 문화를 그대로 사회화하여 답습했다. 이러한 관계에서의 소통은 제한적이고 한정적이다. 청소년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남아 있어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압박을 갖게 된다. 하지만 집단의 체제가 뒤틀리는 순간 모든 관계 역시 무너지기 쉽다. 집단 내 청소년들은 자존심을 권력, 즉 존재가치로 여기며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검열한다.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자존심 상할 만한 또는 놀림거리가 될 만한 고민은 서로에게 나누지 못한다. 솔직한 소통이 불가능해지며 그들의 관계 속에서는 권력만 남게 된다. 결국 사람과의 관계를 수직적으로 구분하도록 학습되어진 것이다.     


 국가가 내놓은 학교폭력 대책 제도는 교사의 물리적 힘을 강화하는 방식, ‘문제학생’을 ‘챙겨주는’ 학생에게 스펙을 줌으로써 입시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 등 기존의 권위주의를 답습하는 방식이 동원된다. 학교폭력 피해학생은 대부분 주변 어른이나 학교에 도움을 청하지 못한 채로 방치된다. 학교폭력 피해자에게 가장 많이 강조하는 기존 예방 제도는 학교폭력위원회(이하 학폭위)다. 현재 학폭위는 전문성과 조사권이 없을 뿐더러 의결 기준으로 잡는 기조는 지나치게 엄벌주의다. 대부분의 학교폭력 사건은 당사자들끼리 화해를 하거나 기관을 통해 교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경우가 많음에도 학생들의 참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건의 맥락과 관계를 다 짚기보다는 선입견에 입각하여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 사회적으로 공적인 문제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국가가 많이 홍보하는 학교폭력 예방 방식은 '위클래스'라는 기관이다. 전문상담사가 학교에 상주하며 학생들의 고민을 상담하는 상담교실이다. 학생들의 상담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나 상담교사의 업무량에는 한계가 있어 그 수요를 채우기 어렵다고 한다. 지나친 허용적 태도를 가지는 등 상담교사마다 역량이나 전문성의 차이가 영향을 많이 미친다는 문제점도 있다. 상담내용을 어디까지 비밀로 보장하냐는 문제에도 항상 부딪힌다. 학생을 위한 정보 공유가 그 사유라면 상담내용을 발설하는 행위가 정당화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학교폭력 예방 대책이라고 언급되는 기존 제도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학생들이 무엇을 경험하고 있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외면한다. 학교폭력을 철저하게 개인 간에 일어난 싸움으로 치부하고, 사건을 대할 때 관계나 집단의 관점에서는 보지 않는 점이 많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각각 분리된 개인으로서 기록하고 각기 다른 조치를 고안한다. 학생들을 보호하겠다는 정책도 학생들 간의 연대나 교류를 모두 끊어놓는 방식이다. 학교폭력예방대책은 결국 학생들은 더 통제하기 쉬운, 더 나약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더 이상 학교폭력에 대해 한 번에 해결하려 하거나 통제하고 억눌러서 규제하는 대책을 내새워서는 안 된다. 그래서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아닌 전체 시민들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 현재 사회 속에서 답습되어진 잘못된 학교문화를 해결하려면 교육공동체 모두의 적극 참여와 실천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공통된 과제에 대한 인식 확대와 관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성숙한 시민의식의 향상과 그 맥을 같이 해야만 성공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안전과 완전을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