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차리려다가 뼈 얼 것 같아
어젯밤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나쁜 짓을 하다가 걸린 것처럼 깜짝 놀랐다. 새해부턴 게임을 안 하겠다고 다짐을 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곳을 보았다. 베란다였다. 눈보라에 창문이 흔들리고 있었다. 같은 소리를 들은 아빠는 바깥을 슬쩍 한 번 보더니 눈이 많이 오나 보네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아빠의 말을 듣고선 어쩐지 온몸이 아프더라고 말했다. 나는 인터넷으로 길 위에 꼼짝없이 갇힌 사람들과 미끄러지는 차들을 보면서 폭우나 폭설 같은 것은 역시 무섭다고 생각하면서도 SNS에 올라오는 눈사람과 눈오리들을 구경했다.
마지막으로 눈사람을 만든 것은 약 5년 전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20대 초반에 갔던 펜션을 다시 찾아갔다. 우리는 같은 수면양말을 신고, 고기를 구워 먹고, 보드게임을 하고, 드라마를 보았다. 그 밤 내내 눈이 내렸다. 가평의 겨울은 매서웠다. 12월 초였는데도 그랬다. 누군가 일어나 보라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바깥엔 발이 빠질 만큼 눈이 쌓여 있었다. 잠깐 쌓인 눈을 구경하고, 밥을 먹고,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우리를 역까지 데려다 줄 픽업 차량을 기다리며 다 같이 눈사람을 만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때 우리는 이런 여행을 또다시 오기 힘들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대부분 회사를 다녔고, 몇 명은 애인이 있었으며, 그다음 해에 한 명은 결혼을 했고 또 다른 한 명은 외국으로 떠났다.
그 이후에도 매년 눈이 왔지만 눈사람을 만들 일이 없었다. 나는 눈이 내린다고 해서 혼자 눈사람을 만들러 나갈 만큼 열정적이지 않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눈사람을 기분 좋게 구경하면서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