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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랭지배추 Aug 16. 2021

아트디렉터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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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무 전환기

2021년 8월 6일, pxd의 프로덕트 디자이너 직무에 합격했다. UIUX를 공부한 지 어언 6개월 만에 맺어진 결실이다. 취업 전체로 바라보면 1년 6개월 만에 이뤄낸 결과이기도 하다. 내가 이제 디자이너라니, 감사하다.


나는 UIUX를 업으로 삼기 전 광고업을 준비했었다. 대학교 4학년 때, 운 좋게 제일기획 아트디렉터 전환형 인턴에 합격했다. 3학년 겨울방학에 HS애드에서 인턴을 짧게 한 달 정도 하고, 광고 공모전 대상 등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다. 삼성그룹은 인턴들에게도 기업 연수를 보내준다. 3일간 용인에서 연수를 다녀왔고, 정장을 입고 삼성 목걸이를 건 내 모습에 한껏 뽕이 차올랐다.

이 때는 인생 모든 것이 잘 풀리는 것 같았다. 광고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었지만, 상은 많이 받으니까 내심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태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의 업무는 내가 공모전을 통해 해왔던 업무와 결이 달랐다. 


광고대행사 공모전은 특정 브랜드의 인지 확대, 소비자 행동 촉구를 위한 문제 해결 방법을 요구했다. 방법에는 제한이 없었고, 나는 어떻게든 해결만 하면 그게 광고라고 생각했다. 반면, 실제 업무는 달랐다. TVC를 위한 스토리텔링, 비주얼 아이디어, 카피라이팅이 주 업무가 되었다. 이런 훈련이 전혀 되어있지 않던 나는 회의를 거듭할수록 좌절했다.


필자가 은상을 받은 제일기획 아이디어 페스티벌


결국 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남긴 채 인턴을 끝마쳤다. 인턴이 끝난 뒤에도 타 광고 공모전 수상은 이어졌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게 광고가 맞는지 헷갈리기만 했다. 그리고 전환 면접이 다가왔다. 실무진 팀장님(CD님과 AE팀장님들)은 나의 강점 등을 물어봤다. 나는 내가 광고를 잘하기는 한지, 내 강점은 뭔지 혼란만 가득했다. 면접은 횡설수설로 마무리됐고 떨어졌다.


나는 내가 전통 광고에 대해 무지해서 떨어졌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KOBACO가 주최하는 광고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원명진 교수님과 허정석 ECD님에게 세 달간 광고를 배웠다. 두 구루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감이 잡힌 것 같았다. 교육을 이수한 뒤, 2020년 3월에 TBWA KOREA 아트디렉터 인턴에 지원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2020년 3월의 TBWA KOREA


제일기획에서 인턴을 할 때 보다 광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광고를 만드는 과정을 이해했고, 좋은 아이디어의 기준이 확실해졌다. TBWA KOREA는 실력 있는 광고대행사이니, 광고인으로서 커리어를 시작하기 좋은 곳이라고 판단했다. 자신만만했던 나는 광고를 겨우 습득했을 뿐이지, 터득하지는 못했다는 걸 간과했다. 스토리텔링을 위한 아이디어에는 광고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섬세한 관찰과 구체적인 사례, 이를 맥락과 목적에 맞게 녹여내는 능력, 듣는 이에게 100% 전달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나는 선배님들에게 아이디어를 열심히 설명했지만, 쉽게 납득하거나 이해하지 못했다. 다시 한번 성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당시 더한섬닷컴이라는 한섬의 온라인 플랫폼 광고 제작에 참여했다. 한섬의 고급 여성 의류를 구매할 수 있는 플랫폼이었는데, 인지도가 낮아 이를 끌어올릴 광고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나는 한섬이라는 브랜드도, 그걸 사는 사람들도 잘 몰랐다. 도저히 아이디에이션을 바로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광고주와 타깃에 대해 철저히 조사했다. 한섬이라는 기업 밑에는 어떤 브랜드들이 있는지, 각 브랜드는 어떤 상품을 주력으로 파는지, 그 상품을 사는 건 누구인지 조사했다. 그러자 핵심 상품과 타깃을 특정할 수 있었다. 타깃에 대해 다시 한번 파고들었다. 이들은 어떤 집단인지, 고급 여성 의류를 왜 사는지, 어떨 때 사는지, 무엇이 중요한지 등을 조사했다. 그리고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Feminism과 Body Positive가 가치 소비에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이를 인턴 동기들, 친구들, 선배님들에게 물어보며 확인했다. 어느 정도 확신을 얻은 나는, 이를 바탕으로 아이디에이션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전통적인 미를 부정하는 'Not just Pretty, But Handsome'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Handsome이 한섬의 영문 표기이기도 하고, '당당하게 아름다운'이라는 뜻을 갖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아이디어가 카피 선배님에 의해 발전되어 'I'm not Pretty, But I'm Handsome' 구조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는 광고주에게 팔려서 실제 광고로 제작되었다.


더한섬닷컴 디지털 광고


고객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근거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하여 실제 제작으로 이어지자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혼란스러워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과 실질적인 문제 해결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명확한 원인을 찾아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일을 가장 잘하고, 좋아한다. 광고 공모전에서 수상했던 아이디어들도 원인을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광고대행사 업무는 리서치가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으며, 인식을 바꾸는 것만으로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광고를 잘하기 위해 데스크 리서치를 한 것이 나에게 광고 외에 새로운 길이 있다는 걸 알게 해 줬다. 그동안 스토리텔링 중심으로 광고 아이디어를 고민해야 했던 내게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일은 어쩌면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몰라'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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