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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랭지배추 Jan 09. 2022

아트디렉터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2/3)

나의 직무 전환기

나는 명확한 원인을 찾아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일을 가장 잘하고, 좋아한다. 광고 공모전에서 수상했던 아이디어들도 원인을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광고대행사 업무는 리서치가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으며, 인식을 바꾸는 것만으로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광고를 잘하기 위해 데스크 리서치를 한 것이 나에게 광고 외에 새로운 길이 있다는 걸 알게 해 줬다. 그동안 스토리텔링 중심으로 광고 아이디어를 고민해야 했던 내게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일은 어쩌면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몰라'

아트디렉터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1/3) 중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지 1년 6개월만의 깨달음이었다. 그럼 광고 관련 스펙만 줄줄이 쌓아온 내가 택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은 뭘까? 대학교 3학년 때 줄곧 성적이 좋았던 UI/UX 분야가 떠올랐다. 하지만 UI/UX 분야에서는 어떤 스펙도,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이 분야로 성공(*당시에는 성공=취업)할 수 있을지 막연했다.


그러다 2020년 9월 제일기획에서 UI/UX 디자인 분야 신입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읽었다. 제일기획은 광고대행사이고, 인턴 경험(비록 전환면접에서 나를 떨어뜨리긴 했지만)도 있었다. 그리고 최근까지 아트디렉터를 준비했기에, 다양한 광고 수상 경험이 UI/UX 직무를 지원함에도 불구하고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회사였다.

 

2020년 하반기 제일기획 채용공고


그렇게 한 번 더 제일기획을 준비했다. 내가 UI/UX 분야에 부족한 걸 알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다. 절대적인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침마다 UI나 UX 관련 칼럼을 읽었다. 유튜브를 보며 Adobe XD를 공부했고 포트폴리오를 조금씩 다듬었다. 그렇게 서류 전형을 통과하고, 하루에 1-2시간씩 쪽잠을 자며 과제 전형을 마쳤다. 초심자의 행운이 통한걸까? 과제전형을 통과하고 마지막 면접을 앞두게 됐다.


면접을 위해 제일기획 본사에 도착했고, 오랜만에 오니 왜인지 모를 반가움과 씁쓸함이 교차했다. 로비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인턴 동기 몇 명을 봤지만 차마 아는 척은 못했다. 오늘 잘되면 다시 또 보겠지 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말을 잘하는데, 다른 직무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AE 해볼 생각 없어요?"

임원 면접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무슨 의도지? 직무에 대한 로얄티를 묻는걸까? 아니면 직무 전환을 정말 염두하고 말하는걸까? 나는 직무에 대한 로얄티 검증이라고 판단했고, 나는 다른 직무말고 UI/UX 일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또 떨어졌다.


후일담이긴 하지만 제일기획에 있는 친구가 말하길, 정말 직무를 변경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고 했다. UI/UX 직무로 뽑은 신입을 디지털 AE로 배치하거나, UX writer로 뽑은 직무를 다른 디지털 직무로 발령내는 경우가 심심치 않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냥 AE한다고 할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다. '내가 원하는 직무가 아니어도 대기업인데 어때?' 스스로 물었다. '그래도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뭔가를 그리고, 만들어내는게 좋은 것 같아.' '기획도 좋긴한데, 기획도 하고 그리기도 하고 또 만들고 싶어.'


저 포도는 신 포도일거라고자기위로 하는 것 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도 사실이긴 하다. 또, UI/UX 디자이너로 만들어낸 작업물이 실무진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면접에서도 칭찬받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무 수확이 없었던 건 아닌 것 같다. 쩝. 한 시즌 더 취준해야지..! 이런 생각을 갖고 2021년 상반기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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