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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랭지배추 Jan 09. 2022

아트디렉터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3/3)

나의 직무 전환기

"말을 잘하는데, 다른 직무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AE 해볼 생각 없어요?"

후일담이긴 하지만 제일기획에 있는 친구가 말하길, 정말 직무를 변경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고 했다. UI/UX 직무로 뽑은 신입을 디지털 AE로 배치하거나, UX writer로 뽑은 직무를 다른 디지털 직무로 발령 내는 경우가 심심치 않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냥 AE한다고 할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나는 뭔가를 그리고, 만들어내는 게 좋은 것 같아.', '기획도 좋긴 한데, 기획도 하고 그리기도 하고 또 만들고 싶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힘을 내서 2021년 상반기 준비를 시작했다.

아트디렉터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2/3) 중


2021년의 나는 조금 지쳤었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취업 준비 기간과 직무 급 우회전(?)으로 초조하고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불안감이 들 때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책을 읽었다. 이런 생활을 계속 하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UI/UX 스터디원 모집합니다!

이 무렵 나는 취업 유튜버들의 조언에 따라 스터디를 만들고, 그들의 스터디 노하우를 적용해서 스터디를 운영해 나갔다. 매주 1-2회씩 만나서 시사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의 자소서를 피드백했다. 또 포트폴리오에 대해서도 피드백을 하고, 면접이 잡힌 스터디원이 있으면 면접 연습도 진행했다. 처음 운영해보는 스터디여서 삐걱대는 부분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목표 설정과 지키기가 그랬다. 처음에는 모두 같은 목표를 정해서 학원처럼 일률적으로 하려고 했지만, 서로 지원하는 기업이 다르고 강점도 달랐기 때문에 이내 곧 비효율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자율적으로 운영했더니, 스터디가 느슨해졌다. 결국 Confluence 내에 각자의 목표를 매 스터디마다 기록하고, 다음 스터디에서 확인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강력한(?) 벌금과 함께.


스터디 운영 방식을 조금씩 개선하다보니 균형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2021년 1월에 시작했던 것이, 어느덧 내가 취업한 8월을 넘어 그 이후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필자는 스터디를 쉬고(?) 있으며, 다른 스터디원들은 취업/이직을 위해 여전히 스터디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스터디 운영을 통해 취준 기간에 규칙과 목표를 만들고, 느슨해지지 않게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렇게 해서 2021년 상반기는 지난 시즌보다 훨씬 많은 기업에 면접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중 한 곳이 현대오토에버였다.


현대오토에버는 다른 기업보다 조금 더 간절한 마음이 컸는데, 이전에 한 번 합격했지만 내 실수로 면접을 못봐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다. 당시 현대차 계열사 3사가 합병하며 다시 한 번 UI/UX 디자이너를 채용했고, 면접까지 가게되었다. 두 번째 지원이라 그런지 나 혼자 왜인지 모를 친근감(?)이 들었다.


지원동기는 저번에도 지원했으니까 패스할게요

두 번째 지원인걸 먼저 알아보고, 훈훈한(?) 분위기에서 편하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다른 기업보다 더 결과가 기대됐다. 하지만 나보다 더 뛰어난 지원자들이 많았던 걸까, 이번에도 탈락하고 말았다. 당시 다른 기업들 면접에서도 탈락 소식을 연이어 접해서 오토에버에 거는 기대가 더 컸다. 쓰린 마음을 붙잡고 있다가 결국 허탈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 남은 기업도 얼마 없는데,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대로 그만할까'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스스로에게 놀랐다. 내가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하며,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외국에 있는 여자친구의 위로를 받으며 혼자 밥을 먹으러 갔다. 밥을 먹고 돌아오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그만 다리에서 크게 미끄러지고 말았다. 팔 다리에 피가 철철나는데, 아프지도 않고 그냥 허탈했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붉게 물든 팔 다리를 끌고 절뚝 거리며 집으로 갔다. 지금도 잘 잊히지 않는 영화같은 순간이다. (그때의 흉터가 팔에 아직도 남아있는데, 볼 때 마다 취업 준비하던 생각이 나서 찡하다.)


아무튼 이 날, 집에서 샤워를 하며 각오를 다졌다. '나는 반드시 취업할 거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라고. 당시 스터디원 한 명이 pxd 채용과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때 '나도 지원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pxd는 UI/UX 디자인을 공부하다보면 최소 한 번은 마주하게 되는, UX분야에서 긴 역사를 갖고 있는 UX 컨설팅 에이전시이다.


pxd 공식 홈페이지 - jobs 메뉴


취업 전 나는 pxd가 엄청 학구적이고, HCI를 전공하거나 석사는 되어야 받아줄 것 같은 회사일지 모른다는 막연한 선입견을 갖고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물러설 곳이 없었고, 떨어지면 마는거지 생각하며 지원했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 최종 면접을 보게 됐다. 그런데 면접중 유독 면접관 한 분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계셨다. 나는 또 떨어졌겠구나 생각했고, 기왕 떨어진 거 뭐가 맘에 안드는지 뭐가 좋은지나 물어보자 싶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없냐는 질문에 나는


제가 한 대답중에 뭐가 제일 좋았나요?

라고 물었고, 불만 가득한 표정의 B 면접관님은 "없었어요." 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A 면접관님이 오늘 면접을 스스로 복기하고, 잘한 점과 못한 점이 무엇이였는지 말해달라고 했다.


나는 "제가 광고에서 UI/UX로 직무를 전환한 점, 대기업을 계속 지원하며 느낀 점, 내가 다양한 광고 공모전에서 꾸준히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점 등이 A 면접관님께 좋은 답변으로 작용했다고 느꼈습니다. 반면, B 면접관님에게는 직무 전환의 사유나 pxd에 대한 로얄티 검증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답했다. 떨어졌다고 생각하며 그냥 후련하게, 면접을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는 감사 인사를 전하며 면접을 마쳤다.


노트북을 덮고, "하.. 나 이제 뭐하지.." 싶은 생각이 들어 우울한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축 쳐져있는 아들을 위해 시간을 내준 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고,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던 중 합격 문자가 왔다. 너무 놀랐다. 어머니에게 합격 문자를 보여줬다. 그리고 바로 여자친구에게 합격 소식을 전하고, 아버지에게도 전화했다.


나중에 B면접관님과 밥을 먹으면서 그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당시 B면접관님은 오전에 클라이언트한테 시달려서 엄청나게 피곤한 상태였다고 한다. 면접중 내 답변을 몇 번 들어보니 마음에 들어서 "얘 뽑아야지." 생각하고 별 생각없이 있었는데, 내가 혼자 급발진(?)해서 세상 푸념을 했더니 그제서야 '내가 표정이 안좋았구나' 생각하고 웃겼다고 하셨다. (완전 어이없다 -_-)


아무튼 이렇게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를 준비했던 나는 UX 컨설팅 에이전시의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됐다. 여담이지만 최근 첫 번째 프로젝트도 무사히 끝마쳤다. 지금 5개월 정도 프로덕트 디자이너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직무로 전환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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