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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Oct 31. 2023

그래도 삶은 흘러간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 후기

“그래서 어떻게 살라는 거지?” 영화가 끝나자마자 일행이 한 이야기였다. 그러게? 미야자키 하야오는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걸까?


이 영화는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선과 악에 대한 깊은 세계관을 담고 있는 데에 반해 세계관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혼자서 부족한 이야기를 눈치껏 해석하며 시청해야 했고 나는 이 부분이 꽤나 재미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가 가득하니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이 이후의 글은 읽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1. 주인공, 새엄마가 생기다


영화 극초반, 주인공은 화재사고로 엄마를 잃게 된다. 이후 주인공과 아빠는 이사를 가게 되는데, 그때 갑자기 새엄마가 등장한다. 기차역 앞으로 그들을 마중 나온 엄마를 많이 닮은 여자. 상당히 당혹스러운 전개이지만 생각해 보면 이것은 다분히 현실적인 상황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내가 제대로 이해하거나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생의 중요한 것들이 정해질 때가 있다. 주인공 앞에 갑자기 등장한 새엄마처럼.


주인공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지만 이상하게 주인공은 배제되어 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새엄마와 그녀의 뱃속에 있다는 동생. 이 상황은 주인공이 새엄마에 대해 ‘엄마를 닮았다’ 고 언급하며 더 부각된다. 주인공은 새엄마가 자신의 이모였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계속해서 엄마를 잃은 밤의 악몽을 꾸고, 엄마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엄마를 잃은 주인공에게 누구 하나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그의 마음이 괜찮은지 묻지 않는다. 주인공을 자극하는 것은 오직 정체를 알 수 없는 왜기러기뿐. 하지만 주인공은 떼를 쓰지도, 울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단지 계속해서 움직일 뿐이다.



2. 진짜로 나쁜 것은 무엇일까?


이 영화의 힐링 포인트는 중간에 등장하는 오라오라다. 오라오라는 물고기의 내장을 먹고 하늘을 나는 연료를 얻는데, 성숙한 오라오라는 하늘로 올라가 인간으로 태어난다(그래서인지 오라오라는 세포처럼 생겼다).


나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오라오라를 잡아먹는 펠리컨과 주인공이 맞닥뜨린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오라오라는 인간이 될 수 있는 생명체다. 즉, 희망, 탄생을 뜻한다. 이 영화에서는 ‘아기’를 잉태한 것은 당연히 보호해야 하는 것으로 묘사를 하는데, 그렇다면 오라오라는 이 영화에서 ‘절대 선’이 되고, 오라오라를 잡아먹는 펠리컨은 ‘절대 악’이 된다.


그러나 펠리컨들이 왜 오라오라를 먹게 되었는지 듣다 보면 정말 펠리컨이 ‘악’인지 의문이 생긴다. 오라오라를 먹지 않는 펠리컨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 밖에 없다.


펠리컨의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펠리컨이 죽자 묵묵히 그를 묻어줄 뿐이다. 펠리컨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또 나름의 이유로 죽었다.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것은 죽은 그를 묻어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는 누군가를 완전한 ‘악’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3. 엉망진창이어도 어쨌거나 인생은 계속 흘러간다


영화 끝에 주인공은 탑의 주인인 할이버지에게 새로운 탑의 주인이 되라는 제안을 받는다. 주인공은 새로운 주인이 되어 평화롭고 안전한 세상을 만들지 아니면 악의로 가득한 세상으로 돌아갈지 선택해야 한다. 주인공은 망설임 없이 다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그것이 가장 당연하다는 듯 영화에는 고민하는 장면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엄마가 주인공의 트라우마가 있는, ‘불의의 사고로 불에 타 죽는다’는 미래가 명확하게 존재하는 현재로 돌아간다는 선택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인공은 그저 그녀를 안아주는 것으로 그녀의 선택을 지지한다.


굉장히 뻔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이 뻔한 결말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은 상당히 크다. 우리가 살면서 이뤄내는 것들과 하는 일들은 의외로 허무한 결말일 때가 많다. 내가 굉장히 힘들게 했던 일도 사실 남이 보기에는 큰일이 아닐 수 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우리 모두의 끝은 ‘죽음’으로써 같아진다. 또 누군가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다. 그 이후로는 모두가 그렇듯 점점 잊혀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삶에서 펼쳐지는 것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수긍하고, 나아가는 것뿐이다.


어쨌거나 인생은 계속 흘러간다. 나는 이것이 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었던 전부였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평온하고 행복한 지상낙원은 없다. 불합리하고 악의가 가득하다 할지라도 지금 이곳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온몸과 마음을 다 해 이 고단한 인생을 살아내는 것 밖에는 없다.


완전한 선도, 완전한 악도 없다. 인생은 내가 이해할 수 없고 선택할 수 없는 일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시간은 흐르고, 우리가 절대 잊을 수 없으리라 여겼던 것들도 점차 잊힌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주인공의 엄마가 탑에서 있었던 일을 잊은 것처럼.


영화를 보고 나니 어쩌면 내 인생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내일도 해가 뜨고, 나는 부지런히 움직일 테니까. 이 글을 읽은 당신도 부지런히 인생을 즐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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