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엿과 건빵

by 제이드

신당역의 환승구간은 유난히 길다. 5년 동안 거의 매일 그곳을 지나다니며 통학을 했다. 여러 상점들이 들어왔다 나가고, 광고판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에스컬레이터가 새것으로 교체되었다. 이런저런 변화 중에서도 유독 나의 눈길이 갔던 곳이 있다. 환승구간으로 통하는 계단 앞, 큰 기둥이 서있는 노점 공간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날씨가 추워지면 그곳에서 물건을 파는 노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계단 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그날 팔 물건들을 보자기 위에 펼쳐놓았다. 오늘은 어떤 할머니가 앉아 나물을, 다음 날은 또 다른 할머니가 와서 머리빗을 팔곤 했다. 서로 누가 언제 온다는 규칙이라도 정한 듯 하루에 딱 한 사람씩만 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자리에 호박엿을 파는 할아버지가 자주 오셨다. 할아버지는 허리가 구부정하게 휘고 머리는 하얗게 셌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한 주가 흘렀지만 그의 호박엿을 사가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엿을 싫어하니까, 사도 먹지 않을 텐데, 굳이 다른 이유로는 사지 않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고집을 부렸다. 당연하다는 듯, 그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고 스쳐가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신당역에서 내려, 환승을 하러 가는 인파의 흐름을 거스르며 겨우 무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먼발치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언뜻 보아도 그의 엿 자르는 솜씨는 보통이 아니었다. 빠르고 노련한 손놀림으로 엿을 끊어내는 모습에 '장인'이란 단어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일관된 자세와 표정에서는 고고함마저 느껴졌다. “호박엿 사세요” 같은 장사꾼의 흔한 말조차 하지 않았고, 오고가는 사람들을 올려다보며 눈을 맞추는 일도 없었다. 눈길을 주지 않는 건 바쁘게 지나쳐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곳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났다. 그 감정의 대상이 나인지 할아버지인지 다른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한겨울에 잘 팔릴만한 붕어빵, 호떡, 어묵을 팔아주셨으면, 하고 바랐다. 그랬다면 열 개든 스무 개든 사서 가족과 친구들과 나눠먹었을 텐데. 늘 그렇게 생각만 하고 말 뿐이었다.


얼마 뒤부터 호박엿 할아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그 기둥에는 이곳에서 물건을 팔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었다. 가끔 한 할머니가 그 경고문을 등으로 가린 채로 바닥에 앉아 2천 원짜리 건빵을 파셨다. 양손에 건빵 봉지를 두 개씩 들고 몰려오는 사람들을 향해 말없이 흔드셨다. 사람들은 기둥을 사이에 두고, 두 갈래로 나뉘어져 제 갈 길을 갈 뿐이었다.



‘도대체 요즘 시대에 누가 건빵을 사먹는단 말이야.’ 투정인지 원망인지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장면을 애써 외면하면서 서두르는 척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위쪽에서는 달콤한 ‘만쥬’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다른 때 같으면 반가웠을 그 냄새가 괜스레 미웠다.


해마다 디지털 플랫폼 이용한 기부는 늘어난다는데, 거리에서 파는 천원, 이천원짜리 물건을 사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물론 두 행위의 성격은 다르다. 전자는 확실한 기부고, 후자는 엄연한 거래다. 전자는 비대면으로, 후자는 대면으로 이뤄진다. 화면 건너 이름 모를 이에게 돈을 건네는 일은 부담이 덜하다. 중간다리를 자처한 플랫폼이 편의성, 익명성, 그리고 간접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반면 후자의 경우, 서로 눈을 맞추고 살을 맞대며 물물교환을 해야 한다. 요즘 추세에도 맞지 않는 ‘직접적 소통’이 동반된다. 주위 시선에 대한 의식과, 감정적 교류로 인한 불편과 귀찮음이 따르기도 한다.



나의 시선이 머무르는 시간은 단 1분이지만, 그들의 삶은 24시간이다. 나같은 사람들의 1분을 모두 합치면 그보다 더 큰 에너지가 만들어질지 모른다. 얼마 전 강남역에서 ‘껌 파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그 공간은 사람들의 추모편지와 국화꽃으로 뒤덮였다. 나도, 그들도, 서로가 그저 매일 무심히 지나치는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


모르는 이에게 직접 다가가 소통하고, 먼저 나서서 살가움과 따뜻함을 보이는 행동을 어쩌면 우리가 귀찮음과 불편함을 넘어 부끄럽다고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뒤늦게 후회하기 전에, 지나침 대신 마주침을 택해보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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