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부터인가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집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천편일률적인 직사각형 모양의 지붕이 없는 아파트가 그려지고 있다 우리 집 창문도 아닌데 옆집 윗집 아랫집 창문이 바둑판처럼 그려진 아파트 1동 전체가 우리 집으로 그려진다 기성세대에 익숙한 예전의 아담하지만 마당도 있고 마당에 뛰어노는 개도, 나무도
등목 하던 수돗가도, 제각각인 대문 모양도, 마당 위에 노니는 나비도, 대문 옆에 떡하니 붙은 명패도 1층과 2층의 모양이 세모이기도 네모이기도 하며 그 가족만의 정체성이 느껴질 수 있는 집, 그런 그림 집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아파트 화단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도,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이름 모를 곤충도, 나무 사이에서 짖어대는 이름 모를 새들도, 아이들에게 그리고 어른들에게도 그냥 아파트를 꾸며주는 관리사무소의
장식물에 지나지 않은 듯 나랑은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나 또한 그렇게 무심코 지나치며 무의식적으로 살아왔다
나 역시 나는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이 꿈꾸듯 도시 탈출을 감행해왔다 코로나 19 여파로 더더욱이 각광받는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만끽하게 해 주겠다는 거창한 포부로 캠핑을 오랫동안 해왔었다 한 달에 1~2회 정도는 수십 킬로에 달하는 캠핑장비를 이고 지고 하며 2시간 넘게 사투를 벌여 짐을 싸고 차에 싣고 나면 기진맥진한 상태로 후회한다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지?'이런 후회를 수년째 반복해 왔다 땀범벅이 되어서는 놀러 갈 생각에 한창 들떠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들에게 소리친다 "야! 아빠 고생하고 있는 거 안 보여?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얌전히 좀 있어!" "아빠 엄마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너희들 가서 맘껏 놀라고 하는 거잖아! 그러니 말 좀 잘 들어! 안 그러면 다음부터 캠핑 안 간다?"라며 갖은 폼을 잡고서는 끝끝내 협박을 한다 우리 아이들은 5학년, 2학년 남자아이들이다 속으로 뭐라고 생각했었을지 이 글을 쓰다 보니 정리가 된다 부끄럽다... 이런 아이들을 향한 짜증과 갖은 폼은 캠핑장에 가서도 캠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반복이 된다 그리곤 집에 돌아오면 하는 말 '야~ 역시 집이 최고다!' 이 역시 불편하지만 익숙하게 반복되는 일상이다
이 짓도 나이 드니 힘에 부치는지 그러다가 전원주택을 꿈꾸기 시작했다 적은 초기 비용으로도 구매할 수 있는
주말에 이용할 수 있는 세컨드(소형) 주택이다 경기도 연천 한탄강을 끼고 70평 정도면 6천만 원에 땅을 매입해서
조립식 소형 주택을 올리면 대략 1억에서~1억 5천만 원이면 가능하다 나 같은 월급쟁이에게는 큰돈이지만 이래저래 지금 아파트는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마지막 선물로 빼앗기듯 줘버리고 와이프랑 알콩달콩 살 노후 전원주택으로 삼는다면 괜찮다는 자위를 하며 말이다 실행에 옮기고자 주말이면 강화도며 연천이며 주변에 땅도 보려 다녔다 근데 막상 투자를 하려니 여러모로 따지게 된다 '지금 5학년인 첫째가 주말에도 학원에 다녀야 할 나이가 되면 어쩌지?'부터 시작해서 '차라리 그 돈을 시골 땅에 박아 놓을 봐야에 어디 빌라라도 전세 끼고 투자해야 하는 거 아냐? '캠핑한다고 장비에 그동안 들인 돈은, 자주 못 갈 수도 있는데 그럼 지금 캠핑 종종 가는 게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나은 거 아닌가?' 등등 갖은 핑계거리가 생겨나더라니... 나란 인간은 생각만 요란하고 뚝심은 없는 편인가 보다
그렇게 현실에 타협에 갈 무렵 우리 둘째의 그림 한 장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비슷비슷한 저 바둑판 모양의 시멘트 덩어리 집이라도 그 속에 사는 집들의 모습은 저마다 분명 다 다를 것이다. 비록 이웃집과 관계를 맺고 살지는 못하지만 그 가족들만의 이야기가 분명 넘쳐날 것이다 우리 집도 분명 그러할진데 뭣이 다른지 묻는 다면 선뜻 대답 못한다 평소에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파트 역시 물성적인 구조적 특징일 뿐이다 획일적이긴 하지만 공간마다 꾸며지는 이야기는 그 집에 살아가는 가족의 취향이 고스란히 녹여지게 되고 세월의 흔적이 반영되는 것이다 드넓은 자연이 더 해지지 않았을 뿐 내가 꿈꾸던 전원주택과 뭣이 다를까?
지금 상황에서 전원 생활을 하겠다고 전원주택을 구매하게 된다면 주말에 하루 이틀씩 들러 고기 구워 먹고 술 마시고 잠만 자고 오던 캠핑장의 전형적 모습과 뭣이 다를까? 주말에만 잠깐 들리는 집 가족의 손때가 고스란히 전해지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오히려 세컨드 주택의 전원주택의 전원생활이 아파트보다 더 획일적인 모습일 것이다' 또 자위하며...
최근의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 집의 역할과 의미는 더욱 커지고 있다 주말에 어쩌다 하루 이틀이 아닌 오도 가도 못하는 온 가족이 하루 종일 살 비비며 붙어 있는 공간. 그래서 잦은 다툼도, 몰랐던 상대방의 취향도 알게 되는, 가족끼리는 어찌 보면 신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된 상황에서 이제는 투자 관점에서만 바라보던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전 세계 유례없는 대한민국 아파트 공화국은 적어도 내 생애에서는 바뀌지 않을 구조적 문제 아닌가... 이를 극복하고 '슬기로운 아파트 생활'을 이제 시작하려 한다
'전원주택이 아닌 아파트에서의 전원생활을...'
뭔 개념 없는 소리냐고 하실 분들도 있을지 모른다 적어도 집을 바꿀 수 없는 상황이니 정확히는 아파트 생활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바꿔보려 한다 누구부터? 나부터...
그럼, 아파트에서의 전원생활 뭐부터 하여야 할까? 베란다를 미니정원으로 공사할까? 아니면, 전원주택 느낌이 물씬 나는 인테리어 공사? 참고로, 본 프로젝트의 본질은 아파트 생활에 대한 관점의 변화이다 돈으로 해결하는 물성적인 구조적 변화를 추구하 것이 본질이 아님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