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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Ho Lee Sep 04. 2024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 제2편

(지구의 땅 끝 우수아이)



(배낭여행 3일 차)

언제 : 2023년 3월 07일 화요일

장소 : 지구의 땅끝 우수아이아 & 엘 칼라파테


▶이동경로◀

- 05:30~06:40 우수아이야 해안길 산책

- 07:30 호텔조식

- 08:30 택시로 호텔 출발

- 09:00 우수아이아 지구 땅끝 우체국(휘텔문도) 도착

- 11:45 알라쿠시 방문자 센터

※ 산행 거리 : 8.21km 산행시간 2:30 소요

- AR1865 우수아이아 15:50발

- 엘 칼라파테 17:10착



(우수 아이야 트래킹 개념도)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탓에

길고 긴 비행의 여독이 숙면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웬일일까?

그도 나도 새벽 3시에 그만 저절로 눈이 떠진 채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그냥 불 킬 까요~?"

"편한 대로 하세요."

한동안 멀뚱멀뚱...

그러다 우리 둘은 어스름한 달빛이 내려 비친 새벽 산책을 나서기로 했다.

호텔을 나서자 도로 건너편의 조형물이 보랏빛 불을 밝히고 있다.

밤새 커튼 사이로 얼핏 비치던 불빛이다.

그곳을 스쳐지나 우린 해안가로 내려섰다.



지구의 끝자락 땅끝에 자리한

우수아이야는 아주 작은 소읍 정도의 규모다.

전날 찾아들 땐 볼품없다 실망하던 석민씨의 입에서 순간 탄성이 터졌다.

그만큼 지구의 끝자락 우수아이야는 어제 낮에 본 풍경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낮과 저녁 무렵 그리고 오늘 아침 새벽녘의 느낌이 어쩜 이리 다른지?

석민 씨나 나나 이 소읍의 풍광을 보는 느낌은 같나 보다.

낮의 모습은 마치 화장을 지운 여인이라 한다면 지금 새벽의 풍경은 한껏 물이 오른 요염한 여인이다.

세상을 여행하며 난 이런 느낌을 강하게 그리고 인상 깊게 느낀 적이 있었는데

마치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를 만난 것 같았던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가 그랬다.

그때의 밤 풍경은 이보다 더 화려했지만 왠지 천박했고 낮의 모습은 화장은 지운 창녀의 모습였다면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우수아이는 오래전 시골 내 고향 촌동네의 촌스럼이라 할까?

그에 비해 밤과 새벽의 풍경은 청초함과 요염함이 함께한 갓 시집을 온 새색시의 풍광이다.



우린 이 풍광 하나만으로도 예정에 없던 이곳까지 찾아든 값어치는 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아주 참 잘 왔다며 탁월한 선택였음을 자화자찬했다.

청초함과 요염함을 품은 시가지를 뒤로 밀어내며 걷는 동안 그래서 우린 매번 뒤를 돌아보며 걸었다.



우수아이의 해안가를 걷는 내내 공기는 청정했고 싸늘했다.

그래 그런가?

도심의 풍광은 점점 더 밝아져 와도 저 멀리 보이는 설산만큼이나 깔끔했다.



얼마 후...

우린 좀 더 걷고 싶었던 한 움큼의 미련을 그곳에 남겨 놓은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좀 더 기다려 일출도 보고 싶었지만 조식 후 호텔에 부탁해 놓은 약속된 시간에 택시를 타야 했기 때문였다.

도착한 호텔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끝내자 우린 배낭을 꾸려

프런트에 맡긴 후 서브 배낭에 간식만을 넣은 채 택시에 올라 남미의 첫 일정에 든다.




석민 씨가 그간 수많은 나날들을 인터넷 항해 끝에

고르고 골라 선택한 우수아이의 속살을 파고들던 그곳엔 그러나

공원 관리소가 있었고 미처 몰랐던 거금의 입장권을 구입해야 했기에 그는 다소 당황스러워했다.

그러나 이런 일쯤이야 비일비재한 배낭여행의 또 다른 묘미 아니던가?



얼마 후...

계획된 하이킹의 들머리에 택시가 도착했다.

우리가 내리자마자 이른 아침 비글해협의 풍광은 먼 길을 찾아 준 우릴 반갑게 맞아준다.

여긴 지구의 땅끝에 자리한 우체국(휘델문도)인데 우수아이야의 관광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막상 와서 보니 그깟 입장권은 하나도 아깝지 않을 풍광이다.



그래 그런지 이른 시간임에도 우체국 건물 안엔 수많은 관광객들이

마음에 든 엽서를 골라 사연을 적어 직접 우체국장에게 접수를 시키고 있다.

여행지에서 느낀 자신의 감정과 사연이 엽서에 담겨 연인 또는 자신이 먼~훗날 받아 본다면?

아마도 느낌은 새로울 것 같다.

여행지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60대 중년의 메마른 감정선이 촉촉해질 만큼

이곳 해안가의 풍광은 훌륭했지만 늙은이의 귀차니즘까진 굴복시키지 못했다.

흐이구~!!!

하여 우린 휘델문도의 우체국장과 기념사진만 남기는 것으로 우체국과 이별 후 본격적인 하이킹에 든다.



해안가 산책로는 우체국 건물 우측으로 열려있다.



우체국 주변엔 수많은 관광객들이 추억 담기에 분주하다.



그들을 뒤로 보낸 순간

아휴~!

한순간에 세상과 단절된 우리 단둘만이 청정한 숲 속을 거닐고 있다.



어쩜 이렇게나 좋을 수 있는지?

그나 나나 인파의 번잡함이 싫었던 건 같았나 보다.

지금부턴 들려오는 건 오로지 파도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새소리뿐...



산책길은 비글해협을 따라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어느 게 하늘빛이고 어느 게 바닷빛 인지 구분이 안된다.

그야말로 이건 순전히 비현실적인 풍광이다.

해안을 따라 이어진 들쑥날쑥의 산책길은



하늘빛을 그대로 담은 블루빛의 해안가로 이어지는데



걸을수록 마음은 차분해지고 정결해져

매일매일 이 길을 걷는다면 아마도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 않을까란 생각마저 든다.




이 길을 걸으며 내면의 나를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을 우리 경험한다.



지금껏 우린 꿈속의 길을 걸었고

그림 속의 길을 걸어 들어와 지금 이 자리에서 물멍을 때린다.



아~!

좋다.

힘들어도 정말로 와 볼만은 한 곳이다.

여긴 어린이 노약자 누구든 힘들지 않고 걸을 수 있어 좋은 곳이다.


석민 씨는 여기 말고도 우수아이야엔 더 좋은 산책로가 여러 곳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하루쯤 더 머물고 싶단 생각이 왈칵 든다.

그러나 어쩌겠나?

우린 곧 오후 항공편으로 지구의 끝자락을 떠나야만 된다.



야금야금 줄어드는 코스만큼 서운함은 커 가는데

흐이구~!!!

키 큰 석민 씨는 설령설령 걸어도 걸음은 무자비하게 빠르다.

그래서 매번 열심히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그럴 수 없었다.

예약한 택시와의 약속시간이 임박했기에....



길 잃을 염려는 애초부터 없었던 일방향의 산책로는



알라쿠시 방문자 센터로 우릴 이끈다.

그런데...

해안가 숲 속길을 벗어나자 갑자기 거센 바람이 인다.

한순간에 매세운 바람을 맞고 나니 우리 둘은 정신이 번쩍 든다.

오우~~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태평양을 넘어온 강풍인가?

아나 떡이다...

훗날 우린 수 천년 바람이 만들어 놓았다는

파타고니아에서 맞았던 바람에 비하면 이건 완전 껌 수준밖에 안 된 바람였다.



훈훈했던 날씨에 돌연 날벼락처럼 맞았던 세찬바람은 체감온도를 한겨울로 바꾼다.

우린 종종걸음으로 알라쿠시 방문자 센터로 급하게 피신했다.



훈훈함에 아늑한 방문자 센터엔 이 땅의 역사를 소개한 전시물이 있었다.



그중 내 눈길이 머문 곳...




태초부터 척박한 이 땅에서 삶을 이어 갔을 원주민들을 소개한 사진이다.

외주인들의 침입으로 한순간에 멸종된 원주민들이라 왠지 안쓰럽고 안타까워 내 시선이 오래 머문다.

이 사진 한 장이 예나 지금이나 정의는 강자의 논리에 지배되는 사회임을 말해 주는 것 같아 순간 씁쓸해진다.




하이킹을 끝내고 나자 점심시간인데 식사 시간도 장소도 애매하다.

그래서 우린 그다지 배고픔을 느낄 수 없어

이곳에서 간단하게 커피와 빵으로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그런 후엔 약속된 시간보다 미리 와 대기하고 있던

택시 기사와 만나 우수아이야의 번화한 시내에 내려 산책과 쇼핑을 하며 숙소로 향했다.



숙소까지 걷는 동안 우린 정겨운 우수아이의 풍경을 마음속에 담아둔다.



그리고 이곳....

여긴 우수아이의 랜드마크라 하여 일부러 찾아와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숙소에서 짐을 찾아든 우린 곧장 택시로

공항으로 이동하여 AR1865편 항공으로 엘 칼라파테를 향했다.





엘 칼라파테 도착 후엔 택시로 이동해 예약된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린 저녁식사를 위해 시내로 향했다.



뭘 먹나?

스페인어로 갈겨쓴 메뉴만 수 십 가지인 음식주문은 그간 살아온 내 삶의 여정만큼 힘든 과제다.

그때마다 구원자 석민 씨가 내 식성대로 알아서 아주 잘 시켜준다.



지금껏 우린 빵만 먹었으니 고단백을 섭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석민 씨의 논리엔 실패 확률 제로인 스테이크라

반박할 여지가 없는데 사실 맛도 영양도 내 입맛엔 딱~이라 아주 고마울 뿐...




배를 불린 후 우린 곧장 시내 관광에 나섰다.

그런데...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 순간 내 몸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걱정이다.

함께 걷던 석민 씨가 내 안색을 보더니 얼른 숙소로 발길을 옮긴다.

사실 이번 여정중 이날이 내겐 최악의 컨디션였다.

지금껏 살아오며 영양제나 건강 보조식품은 모르고 살았는데

여길 오면서 생전 처음으로 나는 관절 염증에 효과가 좋다는 MSM을 구입해 왔다.

이날밤엔 응급약으로 가저온 종합 감기약과 MSM을 함께 복용했다.

다행히 약발이 잘 들었던지 다음날부터 컨디션이 되살아나 별 무리 없이 일정을

소화해 낼 수 있었는데 함께한 석민 씨에겐 정말 미안하고 감사했다.

이날부턴가?

혹여 내가 감기를 옮긴 것처럼 석민 씨가

가끔 기침을 했는데 그때마다 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음을 그는 아는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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